본문 연구
요한3서 9-11절 — 디오드레베와 선을 본받으라는 명령
장로는 가이오에게 디오드레베의 독선적이고 적대적인 행위를 경고하며, 악이 아닌 선한 것을 본받을 것을 명령한다.
본문
- 9.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I wrote somewhat unto the church: but Diotrephes, who loveth to have the preeminence among them, receiveth us not.
- 10.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Therefore, if I come, I will bring to remembrance his works which he doeth, prating against us with wicked words: and not content therewith, neither doth he himself receive the brethren, and them that would he forbiddeth and casteth them out of the church.
- 11.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Beloved, imitate not that which is evil, but that which is good. He that doeth good is of God: he that doeth evil hath not seen God.
이 본문의 의미
9-10절은 하나의 고발을 이룬다. 장로는 이미 교회에게 여행 중인 선교사들을 영접할 것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6-8절에서 가이오를 칭찬한 내용과 대비된다). 그러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헬라어 philoproteuō, '먼저가 되고자 즐기는') 디오드레베는 이 형제들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장로는 자신이 직접 가면 디오드레베의 행위를 기억해 내리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 즉 우리를 향한 악한 말로의 비방, 형제들을 자기 자신이 맞아들이지 않는 것, 그런 일을 하려는 자들을 금하고 교회에서 내쫓는 것까지. 이 목록은 말(중상)에서 행위(거절)로, 그리고 집행(제명)으로 진행한다.
11절에서는 특정 인물에서 '사랑하는 자'라 불린 가이오에게 내려지는 보편적 명령으로 전환된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장로는 이것을 신학적 시험으로 근거한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ἐκ τοῦ θεοῦ),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θεὸν οὐχ ἑωρακέναι). 두 구절은 단순한 행위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드러낸다. 선을 행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속해 있음을 표시하고,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지 못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봄'이라는 표현은 구약의 신적 현현 언어(예를 들어 보고 사는 것)를 연상시키지만, 여기서는 관계적 진술로 기능한다.
이 단락을 함께 읽으면, 구체적 갈등(디오드레베의 행위)에서 범주의 원리(선과 악의 구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낸다)로 이동한다. 장로는 단순히 한 개인을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례를 가이오를 가르치는 데 사용한다. 환대 혹은 그 거절은 누가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를 드러내는 가시적 시험대가 된다.
배경
이 서신은 '장로'가 가이오에게 보내는 짧은 개인적 편지로서, 그의 진리 안의 신실한 행보와 여행 중인 형제들에 대한 환대를 칭찬한다(1-8절). 그 따뜻한 칭찬 안에 9-11절은 날카로운 대조를 도입한다. 가이오가 맞아들이는 바로 그 자리에 디오레베는 저항한다. 갈등의 핵심은 '이름을 위하여 나아갔고 이방인들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아니한'(7절) 형제들, 즉 복음 사역을 장로가 독자들로 하여금 함께 하기를 부르는('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들', 8절) 선교사들의 영접 문제이다.
경고 직후에 장로는 '모든 사람의 증언과 진리 자체의 증언을 받은'(12절) 데메드리우를 칭찬하며, 직접 만나볼 것을 기대하는 말로 마무리한다. 따라서 책 전체는 9-11절 단위를 두 긍정적 예(가이오와 데메드리우)와 악 대신 선을 선택하라는 명시적 권면으로 둘러싸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디오드레베는 누구인가?
서신은 그를 단지 교회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로만 소개한다. 그는 장로의 대표자들을 맞아들이지 않았고, 악한 말로 장로를 비방했으며, 자기 자신이 형제들을 환대하지 않았고, 환대하려는 자들을 교회에서 내�았다. 본문은 이 행위 이상의 일체적 세부 정보를 주지 않는다.
9-10절과 11절의 관계는 무엇인가?
처음 두 절은 악을 본받지 말아야 할 구체적 사례—디오드레베의 행위—를 제시하고, 11절은 일반 교훈을 이끌어낸다. 악이 아닌 선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 자임을 보여준다. 구체적 사례가 보편적 명령의 토대가 된다.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는 말은 디오드레베가 문자적으로 하나님을 결코 보지 못했음을 뜻하는가?
이 서신의 언어 안에서 이 표현은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한 관계적 진술로 기능한다. 곧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이 표현은 하나님을 보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구약의 언어를 연상시키지만, 여기서는 시각적 사건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의 영적 상태를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