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하박국 1:13 — 하나님의 순결함과 악의 문제
하박국은 하나님의 눈은 악을 보시기엔 너무 순결하심을 고백하면서도, 왜 하나님이 궤휼을 행하는 자들을 바라보시며 의로운 자를 삼키는 악인 앞에서 잠잠히 계시는지 묻는다.
본문
- 13.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Thou that art of purer eyes than to behold evil, and that canst not look on perverseness, wherefore lookest thou upon them that deal treacherously, and holdest thy peace when the wicked swalloweth up the man that is more righteous than he;
이 본문의 의미
하박국 1:13은 날카로운 병치(竝置) 위에 세워져 있다.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을 고백한다. 곧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실 정도로 눈이 정결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이 배제하는 바를 진술한 것이다. 히브리어 '더 정결한 눈'은 도덕적 깨끗함을 뜻하는 זָכָ사에서 온 말이며, '악을 보시다'와 '패역을 보시다'는 산문적 리듬으로 같은 금기를 두 번 반복한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이 그것에 무관심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절의 후반부는 그 고백을 호소로 전환한다. 하나님의 눈이 악을 보시기에 너무 순결하시다면, '어찌하여 궤휼을 행하는 자들을 바라보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히 계시나이까.' '바라보시나이까'라는 동사는 앞의 '보시다'를 그대로 받아 반복하며, '잠잠히 계시나이까'는 흔히 '침묵하다'로 옮겨지는 חָרֵשׁ이다. 하박국은 하나님을 하나의 논리적 문제로 몰아간다. 곧, 악을 보지 못하실 하나님이 그 악을 태연히 보고 계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이라는 표현은 '의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더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박국이 유다가 죄 없음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그 학대자(갈대아인)가 더 악하며, 그 도덕적 격차가 문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할 뿐이다.
따라서 이 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거룩함 안에서 느끼는 당혹을 표현한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순결함을 정히 침묵이 참기 어려운 이유로 본다.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무관심하셨다면 수수께끼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수수께끼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박국이 하나님께서 의를 신경 쓰신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런데도 덜 의로운 쪽이 더 의로운 쪽을 삼키는 현실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1:13은 이 장의 신학적 중심축이다.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교리(12–13a상)가 바로 하나님의 세계에서 관찰되는 현실(13b)과 충돌하며, 이어지는 14–17절의 긴 호소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배경
하박국 1장은 폭력이 응답받지 못한다는 선지자의 탄원으로 시작한다(2–4절). 하나님은 그 답으로, 예상치 못한 심판의 도구로 갈대아인을 세우신다고 선언하신다(5–11절). 이것은 선지자에게 놀라움이다. 12절에서 하박국은 하나님의 영원한 거룩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갈대아인을 심판을 위해 '정하셨다'고 받아들인다. 13절은 그 고백 직후의 질문이다. 방금 '나의 거룩한 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한 바로 뒤, 하박국은 더 나아가 묻는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스스로도 불의한 나라를 도구로 삼거나 허용하시면서, 상대적으로 더 의로운 자들을 삼키는 그 앞에서 어떻게 침묵하실 수 있는가? 이어지는 절들(14–17절)은 두 번째 이미지를 전개한다 — 갈대아인을 사람을 부리는 힘 없는 물고기처럼 끌어올리는 어부로 묘사한다. 그러나 호소의 신학적 토대는 이미 1:13에 놓여 있다.
자주 묻는 질문
하박국은 이 절에서 하나님이 악을 보지 못하신다고 부인하고 있는가?
아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본성이 악과 양립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 곧 하나님의 눈은 그것을 기꺼이 보시기에 '너무 순결하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지(全知)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묻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토록 거룩하시다면, 어찌하여 궤휼을 행하는 자들을 보시며 더 의로운 자를 삼키는 악인 앞에서 잠잠히 계시느냐는 물음이다.
이 절은 왜 '의로운'이 아니라 '더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가?
하박국은 유다가 죄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의로운'이라는 비교급을 씀으로써 자기 백성도 죄가 없지는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억압하는 갈대아인이 더 악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양쪽 사이의 도덕적 격차가야말로 하나님의 침묵이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는 이유이며, 이것이 14–17절에 이어지는 선지자의 계속되는 호소의 토대가 된다.
이 절은 1장 전체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13절은 이 장의 신학적 중심축이다. 2–4절은 선지자의 호소이고, 5–11절은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갈대아인의 세움)을 기록하며, 12절은 하박국의 짧은 신학적 고백(하나님의 영원한 거룩함)이다. 13절은 그 고백을 관찰된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하고, 14–17절은 그 호소를 무자비한 어부 같은 민족의 이미지로 확장한다. 책은 여기서 긴장을 해소하지 않는다. 해소는 하박국이 뒤에서 고백하는 신뢰의 선언들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