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예레미야 9:23-24 — 자랑할 것은 무엇인가
예레미야 9:23-24는 자랑의 기준을 다시 세운다. 합당한 자랑은 인자와 정의와 공의로 특징지어지는 여호와를 아는 것뿐이다.
본문
-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Thus saith Jehovah, Let not the wise man glory in his wisdom, neither let the mighty man glory in his might, let not the rich man glory in his riches;
-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but let him that glorieth glory in this, that he hath understanding, and knoweth me, that I am Jehovah who exerciseth lovingkindness, justice,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saith Jehovah.
이 본문의 의미
이 두 절은 대조의 짝을 이룬다. 23절은 세 가지 평행적 금령을 내린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용사는 용맹을, 부자는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세 행에 걸쳐 반복되는 '자랑하다'(히브리어 התלל)는 이 셋을 하나로 묶어, 궁극적인 자신감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되는 범주로 규정한다. 지혜로운 자, 전사, 부자는 고대 세계에서 자족의 세 가지 원천 — 지성과 힘과 소유 — 을 대표하며, 각각 자랑의 근거로 삼기에 부적합하다.
24절은 대안을 제시한다. 대조의 접속사 '오직 그러나'가 전환을 알린다. 정당한 자랑은 '이것'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뿐이다. 여호와를 아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도덕적·관계적 실재로 자리매김된다. 본문은 여호와를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땅에서' 행하시는 바에 근거하여 정의하신다. '인자'(חסד), '정의'(משפט), '의'(צדקה) — 이 세 속성은 질서 있는 사회적 삶으로 표현되는 언약적 신의를 나타낸다. 마지막 구절 '이 일을 기뻐하노라'는 이 속성들이 인간의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기술임을 규정한다.
두 절을 함께 읽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과 언약적 성품을 실천하는 것이 불가분임을 주장한다. 지혜와 권력과 재물에 자랑하는 것은 은사와 은사를 주시는 분을 분리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은사를 주시는 분 자체가 인자와 정의와 의로 규정되기 때문에, 그분을 참되이 아는 것은 곧 그 속성들을 따르는 삶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 단락은 단순히 교만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 세상에서 정의로운 행실을 낳는 앎의 방향으로 자랑을 회전시킨다.
배경
23-24절은 한 선지자의 슬픔(9:1-2)과 기만과 배신과 우상숭배에 대한 고발(9:3-9)로 시작하는 심판 선고의 한복판에 놓인다. 직전 절(9:20-22)에서는 여인들에게 임재하는 재난을 곡하게 하되, 죽음이 창문과 궁전에 침입하고 죽은 자들이 밭거름처럼 매장되지 못한 채 내버려진다고 묘사한다. 이 국가적 재난의 맥락에서 자랑 금지 명령은 추상적 도덕 교훈이 아니다. 정치적 권력, 사회적 안정, 심지어 정상적인 장례까지 잃어버린 백성에게 평소 자신감의 근거가 전부 무너지는 상황에 주어진 말씀이다.
바로 뒤 9:25-26절에서 주제는 이스라엘과 열방을 함께 다루며, '할례는 행하였으나 할례받지 못한 자들' — 겉표지만 남아 있고 내면이 비어 있는 자들 — 을 징벌한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문학적 배치는 9:23-24절의 논쟁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정죄되는 자랑은 단순한 개인적 악덕이 아니라, 언약의 표지가 곧 충분하다는 공동체적 환각을 반영한다. '땅에서' 인자와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여호와를 아는 것으로 자랑하라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선지자적으로 다시 정의하는 말씀이다.
자주 묻는 질문
왜 예레미야는 지혜로운 자, 용사, 부자라는 세 부류를 특별히 지적하는가?
이 셋 — 지혜와 권력과 재물 — 은 구약 세계에서 인간 자족의 주요 원천, 즉 지성과 힘과 소유를 대표한다. 이 셋을 함께 거론함으로써 본문은 여호와 곁에 자신감의 근거로 자리 잡기 쉬운 인간의 자원을 통째로 지목한다. 히브리어 평행법(지혜/지혜, 힘/힘, 재물/재물)에서 이 셋은 세 가지 별개의 악덕이 아니라 한 범주로 묶인 잘못된 신뢰로 다뤄진다.
예레미야 9:24에서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절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명철하다'(히브리어 어근 בין, 분별하다)와 짝지워지고, 바로 뒤에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바 — '인자와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것' — 로 규정된다.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을 참되이 아는 것은 그의 성품을 세상에서 바라보고 자기 삶을 이에 맞추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하나님을 알면서도 편벽과 불의를 행하는 것은 실상 그를 모르는 것이며, 이는 바로 앞 절들에서 백성이 그를 알기를 거절한 것이 기만과 배신과 연결되는 주제(9:3-6)와 맞물린다.
바로 다음 본문(9:25-26)은 자랑 금지 명령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25-26절은 그 말씀을 열방과 이스라엘에 함께 적용하며, 내면의 실재 없이 겉의 언약 표지(육체적 할례)만 가졌다는 이유로 그것이 무의미함을 선언한다. 9:23-24절 바로 뒤에 놓임으로써, 정죄되는 자랑은 단순한 개인적 교만이 아니라 외적 지위에 의존하는 공동체적 믿음이 드러난다. 인자와 정의와 공의로 행하시는 여호와를 아는 것으로 자랑하라는 말씀은, 외적 표지가 가리키도록 의도된 참된 내면의 실재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