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누가복음 15:7 — 회개하는 죄인으로 인한 하늘의 기쁨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통해 회개하는 한 죄인에 대한 하늘의 기쁨이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아흔아홉에 대한 기쁨보다 더 크다고 예수께서 선언하신 말씀이다.
본문
-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I say unto you, that even so there shall be joy in heaven over one sinner that repenteth, more than over ninety and nine righteous persons, who need no repentance.
이 본문의 의미
누가복음 15:7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4–6절)를 마무리하는 적용이다. 예수께서는 한 마리를 되찾은 목자가 기�하는 모습에서 천국의 선언으로 옮겨 가신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하늘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대비는 양적인 셈법(여기서는 적게, 저기서는 많이)이 아니라 성격의 대비다. 잃었던 자가 회복될 때 발생하는 기쁨은 한 번도 잃어버린 적 없는 자에게는 생길 수 없는 종류의 기쁨이다.
'회개할 것 없는'이라는 구절은 아흔아홉을 죄 없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로 규정한다. 앞서 예수께 들으러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함께 먹는다'고 불평한 이들(2절)이며, 바로 스스로는 이미 정돈된 상태라고 여기는 부류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영적 자기 충분을 드러낸다.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자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아진 죄인에게만 허락된 그 특별한 기쁨의 계기가 될 수 없다.
이 구절은 10절—'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있음'—과 짝을 이룬다. 두 구절 모두 회개를 하늘의 축제가 일어나는 결정적 사건으로 제시한다. 목자 이미지(4–6절)가 서사적 논리를 제공한다. 상실이 발견에 앞선다. 발견이 기쁨에 앞선다. 그리고 그 기쁨은 공동체적이다. 목자가 '그 벗들과 이웃을 모아 함께 기뻐하라'고 부른다. 회개하는 죄인에 대한 하늘의 기쁨도 동일한 구조를 따른다.
배경
누가복음 15장은 '세리와 죄인들이 다 그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더라'(1절)로 시작하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을 영접하고 함께 먹는다고 불평하는 모습(2절)이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세 개의 비유로 응답하신다. 잃어버린 양(4–7절), 잃어버린 돈(8–10절), 잃어버린 아들(11–32절). 7절과 10절은 처음 두 비유에 붙는 쌍둥이 같은 결론이며, 동일한 사건—죄인 한 사람이 회개할 때 하늘에 기쁨이 임한다—을 각기 명명한다.
15장 전체의 흐름 안에서 7절의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은 세 번째 비유에서 '이같이 오래 네를 섬겨도 네 명령을 한 번도 어기지 아니하였거늘'(29절)이라고 주장하는 맏아들과 보이지 않는 긴장 관계를 이룬다. 다시 찾아진 한 마리와 자기 만족에 찬 아흔아홉 사이의 대비는 장 전체를 관통하며, 장의 마지막에서 맏아들에게로 나아가는 아버지의 간청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자주 묻는 질문
누가복음 15:7은 아흔아홉이 죄 없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그들을 '회개할 것 없는 의인'으로 규정한다. 그 수식어는 자기 인식된 필요에 관한 것이지 도덕적 완전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이미 정돈되었다고 여기는 자들이 회개로 돌아서는 죄인과 대비된다. 예수님의 요점은 도덕적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회복의 기쁨을 누가 유발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 — 하늘에, 혹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
누가복음 15:7은 '하늘에서는 기쁨이 있을 것'이라 말하며, 10절은 다음 비유에 붙는 쌍둥이 결론으로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음'이라 말한다. 누가는 두 표현을 병렬적으로 사용한다. 두 구절 모두 기쁨을 천적 영역에 위치시키며, 10절은 그 축제를 알리는 함께하는 무리로 천사들을 명명한다.
'보다 더하다'는 표현은 하늘이 아흔아홉에 대해 덜 신경 쓴다는 뜻인가?
'보다 더하다'는 상황의 비교이지, 하나님의 관심의 순위가 아니다. 본문은 사람들을 등급 매기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대비시킨다. '회개할 것 없는' 아흔아홉에 대한 기쁨은 잃었던 자가 회복될 때만 생기는 그 특별한 계기가 없다. 이 구절은 회개가 어떤 점에서 독특한지를 부각할 뿐, 그것이 필요 없는 이들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