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요한1서 4:8 —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 본질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본문
-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He that loveth not knoweth not God; for God is love.
이 본문의 의미
이 구절은 밀접하게 연결된 두 가지 진술을 한다. 첫째는 '앎'에 대한 부정적 선언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이 편장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실에 대한 지적 동의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께로부터 났음'(4:7)에서 흘러나오는 관계적 인식이다. 그 출생이 없으면, 누군가 하나님을 '안다'고 부르는 것은 그 자체로 부족하다.
둘째는 첫째 진술의 근거를 제시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접속사 '이는…이라'(영어 for)는 사랑하지 못함을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와 직접 연결한다. 사랑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에 불과하지 않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규정하는 속성으로 제시된다. 이 진술은 행위적이라기보다 존재론적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드러내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시다.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을 규정하기에, 사랑하지 못함은 하나님의 삶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시험을 제기한다. 사랑을 건너뛰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이다. 이어지는 구절들(4:9–11)은 그 사랑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아들을 보내심), 윤리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우리도 서로 사랑할지니라')를 펼친다.
배경
4:8절은 영들을 분별하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장의 논증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처음 구절들(4:1–6)은 듣는 응답으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구별한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도적 증언을 듣고,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자는 듣지 않는다. 7절은 긍정적 기준으로 전환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났고,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 하나님을 안다. 8절은 그 전환의 신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어지는 구절들(4:9–11)은 8절을 구체화한다.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은 독생자 아들을 보내심(4:9)과 동일시되며, 그 보내심은 우리 죄를 위한 화해제물로 묘사된다(4:10). 이 장은 나중에 4:16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는 정식을 다시 다루며, 상호 내주하는 근거로 삼는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한다.' 이 장 안에서 4:8절은 나머지 논증이 예시하고 적용하는 간결한 신학적 명제 역할을 한다.
자주 묻는 질문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는 말은 사랑이 하나님보다 먼저라고, 혹은 하나님을 규정한다고 하는 뜻인가?
이 구절은 사랑을 하나님보다 상위에 두는 정의가 아니라 동일 진술이다. 이 편장에서 사랑은 하나님이 관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가리킨다. 하나님보다 먼저 존재하는 추상적 이상인 '사랑'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사랑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같은 편장 4:7–8 참조).
여기서 '사랑'은 감정만을 가리키는가, 행위도 포함하는가?
이 장은 사랑을 명령 가능한 것('서로 사랑하자', 4:7; '우리도 서로 사랑할지니라', 4:11)으로, 또한 가시적인 것('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이니라', 4:20)로 다룬다. 따라서 이 편장의 사랑은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일(4:9–10)에 근거하여 타인을 향한 태도와 구체적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는 4:8절과 4:16절은 어떤 관계인가?
두 구절은 같은 정식을 사용하지만 역할이 다르다. 4:8절에서 이 진술은 사랑하라는 명령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의 본질 자체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지 못함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4:16절에서 이 진술은 상호 내주의 근거가 된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첫 번째는 고백의 시험이고, 두 번째는 연합의 묘사이다. 둘은 함께 이 장의 논리 구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