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베드로후서 2:1 — 주인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
베드로후서 2:1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짓 선지자가 일어났던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거짓 선생들이 일어날 것을 경고하며, 그들이 몰래 파멸의 이단을 끌어들이고 자신을 사신 주를 부인함으로써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초래한다고 선언한다.
본문
- 1.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But there arose false prophets also among the people, as among you also there shall be false teachers, who shall privily bring in destructive heresies, denying even the Master that bought them, bringing upon themselves swift destruction.
이 본문의 의미
1절은 2장을 예언적 경고로 연다. 베드로는 구약 이스라엘에서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라는 사실을 병치한다. 미래 시제('shall')로 표현된 이 예고는 거짓 교리가 공동체 안에서 우연의 위험이 아니라 예정된 위험임을 보여준다.
거짓 선생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이는' 자들로 묘사된다. '가만히'라는 부사는 3절에서 거짓 선생들이 가식적인 말로 신자들을 상품으로 삼는다고 묘사하는 전술과 일치한다. '멸망하게 할 이단'은 내용상 멸망으로 이끄는 교리를 가리키며, 이 멸망은 곧바로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으로 특정된다. '사신'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범위 있는 속죄임을 시사하고, '부인'(현재분사, 지속적 부정)은 이들을 정의하는 행위이며 추상적으로 잘못된 교리 자체가 아니다.
1절은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며 끝난다.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그들 자신의 '임박한' 멸망은 다음 절들이 말하는 지연된 심판('... lingereth not ... slumbereth not' v. 3)과 대조를 이�다. '스스로'라는 강조는 멸망이 자기들이 초래한 것임을 보여준다. 자신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행위 자체가 멸망의 근거가 된다.
배경
2장은 세 가지 구약적 심판(4절의 타락한 천사들, 5절의 홍수, 6절의 소돔과 고모라)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1절의 경고를 하나의 패턴 안에 위치시킨다. 하나님은 과거에 반역자들을 심판하셨고, 이 거짓 선생들도 심판하실 것이다. 1절은 핵심 명제를 제시하고 2–3절은 즉시 경호를 속인다(‘many shall follow their lascivious doings’). 즉, 미혹받는 자들과 선생들의 동기를 다룬다(‘in covetousness shall they with feigned words make merchandise of you’).
장 후반부에서 1절의 모티프가 반복된다. 이들은 ‘spots and blemishes’이며 ‘feast with you’(13절)하고, 재물을 위해 블레암의 길을 따르며(15절), ‘liberty’을 약속하면서도 ‘bondservants of corruption’(19절)이 된다. 22절의 개와 돼지 비유는 1절의 ‘부인’이 만들어내는 타락을 형상화한다. 1절에서 베드로의 목회적 관심은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공동체 안으로 섞여들어 안에서부터 부패시키는 교사들의 구체적 위험이다.
자주 묻는 질문
'주를 부인한다'는 말은 이 교사들이 한때 참된 그리스도인이었음을 뜻하는가?
이 절은 그들을 '사신' 주를 그들이 '부인한다'(현재 시제)고 말한다. '사심'의 표현은 개인적 신앙 여부와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권위에 속한 자들에게 적용되며(20절에서 'Lord'와 'Saviour'가 사용되는 방식 참고), 이 절은 그 교사들의 과거 영적 상태를 특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지속적으로 주를 거부하는 현재의 태도를 명시한다.
1절의 '멸망하게 할 이단'이란 무엇인가?
이 절 자체는 그것들을 그 결과(멸망을 가져오는 것)와 교사들이 '가만히' 끌어들이는 전술로만 정의한다. 장 후반부는 내용을 구체화한다. 가식적 말로 신자들을 상품으로 삼는 것(3절), 재물을 위해 블레암의 길을 따르는 것(15절), 썩은 것의 종이 되면서 자유를 약속하는 것(19절). '멸망하게 할'은 1절에 명시된 특정 교리 명칭이 아니라 이 교들이 가져오는 파멸을 가리킨다.
1절의 '임박한 멸망'은 즉시 오는 것인가, 미래의 심판인가?
이 절은 그것을 '임박한' 멸망이라 부르지만 시기를 정하지 않는다. 장 자체는 심판을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묘사한다 — 'whose sentence now from of old lingereth not, and their destruction slumbereth not'(3절). 따라서 '임박한'이라는 말은 미래와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지연과 대비되는 것이다. 완전한 집행이 'unto the day of judgment'(9절)에 이르더라도, 그判决은 이미 확정되어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