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전도서 2:24 — 노동 가운데 은혜로운 즐김
전도서 2:24는 먹고 마시며 수고 가운데 만족을 누리는 능력이 하나님의 손에서 비롯됨을 선언하며, 2장의 '헛됨' 속에서 절제된 위안을 제시한다.
본문
- 24.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There is nothing better for a man than that he should eat and drink, and make his soul enjoy good in his labor. This also I saw, that it is from the hand of God.
이 본문의 의미
이 구절은 앞선 성찰에서 이끌어낸 실제적인 결론으로 시작한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집과 포도원, 정원과 못, 종들과 은금을 열거한 후 저자는 그것 모두가 헛함이며 바람을 쫓는 일이라고 판단했다(11절). 그 음울한 배경 속에서 24절은 성공이나 영원한 보상을 약속하지 않는다. 이 절이 칭찬하는 '선'은 소유물이 아니라 노동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곧 먹고 마시며 자기 마음을 자기 수고 가운데서 기뻐하게 하는 평범한 행위들이다.
두 번째 절이 신학적으로 결정적이다.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이것도 (also)'라는 표현은 저자가 이전에 관찰한 다른 현실들과 같이 즐김도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근원을 하나님의 '손'에 둠으로써, 저자는 자기 수고를 즐기는 능력을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신적인 선물로 다룬다. 이것은 2장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거기서 지혜와 지식, 그리고 능숙한 수고 자체도 함께 수고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둘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21절).
이 구절은 자기 안에서 '헛됨'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25절과 26절은 사상을 이어가며, 하나님 밖에서 누가 먹고 즐김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묻고, 하나님은 자기를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즐거움'을 주시며 죄인에게는 모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주기 위한 수고만을 주신다고 말한다. 따라서 24절은 절제된 고백이다. 즐김은 실재하고 선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더 큰 추구를 헛함이라고 선포한 장 안에 놓여 있다.
배경
2장은 저자가 즐거움, 건축 사업, 소유를 체계적으로 시험한 내용을 기록한다. 그가 이룬 모든 것을 살핀 후 그는 결론 내린다. '보라, 만물이 헛하며 바람을 쫓는 것이며 해 아래서 이익이 없도다'(11절). 그는 이어서 지혜와 미움을 비교하고, 지혜자도 미치광이처럼 죽는 것을 발견하며, '내가 나의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나니'(18–19절) 그것이 미치광이일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선언한다. 21–23절은 이 슬픔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숙련된 노동도 그것을 위해 수고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질 수 있으며 '그의 날은 다 슬픔이며 그의 고생은 근심'이다. 24절은 이러한 좌절의 누적이 자리 잡은 자리에서 직접 등장하며, 이 맥락 안에서 유일한 긍정적인 평결을 제시한다.
25절('누가 나보다 먹으며 즐거워할 수 있으랴?')은 24절에서 이름 붙은 즐거움이 단순히 저자가 자신의 부 덕분에 누리는 왕의 특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요구한다. 26절은 그 즐거움을 도덕적 구분에 연결한다. 하나님은 자기를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즐거움'을 주시며 죄인에게는 모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주기 위한 수고만을 주신다. 따라서 이 맥락은 2:24가 즐거움에 대한 단독적인 찬사가 아니라 노동과 선물, 그리고 헛됨에 대한 저자의 더 큰 논증 안에서 신중하게 한정된 진술임을 보여준다.
자주 묻는 질문
전도서 2:24는 즐거움이 가장 높은 선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절은 먹고 마시며 수고 가운데서 즐기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즐거움을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으로 규정하며, 바로 직전 장에서 거대한 추구들을 '헛함'이라 부른 장 안에 놓는다. 하나님과 분리된 궁극적인 선이 아니라, 절제된 긍정이다.
2:24는 이어지는 절들과 어떻게 관계되는가?
25절은 하나님 밖에서 누가 먹고 즐김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는 24절의 즐거움이 인간의 성취가 아님을 시사한다. 26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즐거움을, 죄인에게는 수고만을 돌려준다. 그래서 2:24는 이어지는 말씀으로 뒤집히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다. 즐거움은 실재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2:24는 11절과 23절의 '헛함' 평결과 모순되는가?
이 장 안에서 그 평결들은 함께 놓인다. 헛함은 수고가 뒤에 남기는 것을 묘사하고, 24절은 수고 자체 안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을 묘사한다. 본문은 그 구분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더 큰 추구를 헛함이라 부르면서도 즐거움은 긍정한다. 2:25–26에서 즐거움조차도 하나님의 손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