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창세기 50:20 — 사람의 악한 뜻과 하나님의 선한 뜻
요셉은 형제들의 악한 의도가 하나님이 많은 백성을 살리시려는 선한 뜻으로 전환되었다고 고백한다.
본문
-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And as for you, ye meant evil against me; but God meant it for good, to bring to pass, as it is this day, to save much people alive.
이 본문의 의미
창세기 50:20은 형제들이 요셉에게 저지른 모든 일에 대한 요셉의 신앙적 고백의 정점을 담고 있다. 이 절은 두 가지 의도를 날카롭게 대조한다. '너희는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와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두 번 사용된 '뜻하다/꾀하다' 동사가 의도적으로 대립되어, 사람의 악한 뜻과 하나님의 선한 뜻이 한 문장 안에서 마주본다.
절의 후반부는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의 목적을 명시한다.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생명의 보전이라는 구체적 결과를, 그 해로움 자체를 하나님이 돌이키신 이유로 제시한다. '오늘과 같이'라는 표현은 신학적 주장을 관찰 가능한 현실에 고정시킨다. 그 결과는 미래의 추측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이다.
이 절은 형제들의 죄책을 부인하지 않는다. 요셉은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고백하면서도 그들의 행위를 '악'이라 부른다. 사람의 손에서 악은 여전히 악이다. 그러나 요셉의 입에서 그 같은 악은 하나님이 다시 빚으신 재료로 재해석된다. 따라서 이 절은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을 어느 한쪽으로 흡수하지 않고 구분하여 제시한다.
배경
이 절은 요셉 이야기의 감정적 정점에 위치한다. 바로 앞(17-18절)에서 형제들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보고 요셉 앞에 엎드려 자기들을 그의 종으로 삼아줄 것을 요청한다. 요셉은 19절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거부하며('내가 어찌 하나님의 자리에 있겠느냐?'), 20절은 그 거부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요셉의 사적 복수로 보이는 일은 사실상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사건을 재편하신 결과이다.
바로 다음 절(21절)에서 요셉은 신학에서 실제적 돌봄으로 옮겨간다.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자녀를 먹이겠다.'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에 대한 고백은 추상적인 채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해친 바로 그 형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돌봄으로 흘러간다. 이후 24-26절에서 같은 고백이 미래로 확장된다. 요셉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이라고 단언한다.
자주 묻는 질문
창세기 50:20은 하나님이 악을 일으키셨다고 말하는가?
이 절은 하나님이 형제들의 악한 뜻을 지으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형제들이 '악을 꾀하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말한다. 악에 대한 사람의 책임은 그대로 유지되며, 하나님의 선한 목적은 별개의, 그 악을 넘어서는 뜻으로 제시된다.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다'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창세기 50장 및 앞선 이야기의 맥락에서 '많은 백성'은 야곱의 가족과 그 가문을 포함하여 흉년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게 된 더 넓은 인구 집단을 가리킨다. 요셉의 형제들이 촉발한 일들의 결과로 보전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요셉이 19절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기를 거절한 직후에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셉이 심판자 역할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사건들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20절은 그 인식의 내용을 제시한다. 하나님이 그 결과를 선으로 이끄셨다면, 복수는 요셉의 권리도 역할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