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욥기 19:25-27 — 살아계신 대속자와 하나님을 뵙는 소망
욥은 자신의 대속자가 살아 계셔서 땅 위에 서실 것이며, 자기 육체가 썩은 뒤에도 자기가 하나님을 뵙게 되리라 고백한다.
본문
- 25.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But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 And at last he will stand up upon the earth:
-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And after my skin, even this body, is destroyed, Then without my flesh shall I see God;
-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Whom I, even I, shall see, on my side, And mine eyes shall behold, and not as a stranger. My heart is consumed within me.
이 본문의 의미
욥기 19:25는 '내가 알기에는'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해, 앞선 말들과 구별되는 욥의 고백을 도입한다. 욥은 '내가 안다'(I know)고 단언하며, 자신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며 마침내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고백한다. '서실 것'(stand up)이라는 동사는 현재 먼지에 누워 있는 욥을 위해 일어나 행동에 나서는 대속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속자'(Redeemer)라는 칭호는 권리를 가지고 친족의 억울을 풀어줄 의무가 있는 자를 가리킨다.
26절은 대속자의 서심에서 욥 자신의 '봄'으로 초점을 옮긴다. 욥은 자기 가죽이 벗겨지고, 곧 '이 몸'이 썬 뒤에도 '육체 밖에서'(without my flesh) 하나님을 보리라 기대한다. '육체 밖에서'의 문법은 '육체의 도움 없이'(하나님을 직접 뵙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고, '육체로부터'(육체의 눈으로)라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대리자가 아니라 욥 자신이 하나님을 뵙는다는 점이다.
27절은 세 겹으로 시선을 1인칭화한다. '내가 … 내가 … 보리니', '내 눈으로 보리라', 그리고 부정문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이 전망은 멀리서 낯선 이를 대하는 듯한 встре이 아니라, 욥이 자기 편에서 하나님을 직접 뵙는 일임을 강조한다. 마지막 문장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My heart is consumed within me)는 고난의 한가운데서도 이 소망을 붙들고자 하는 내적 긴장과 열망을 드러낸다.
배경
19장은 친구들의 비난에 대한 욥의 지속적인 항변이다. 21-24절은 자비를 구하는 욥의 호소와 함께 그의 말이 영원히 새겨지기를 바라는 소원 — 철펜과 납으로 바위에 새기는 형상 — 을 기록한다. '내가 알기에는'(But as as for me)으로 시작하는 25절은 그 호소에서 소망의 고백으로 선회한다. 아무도 욥을 옹호하지 않는다 해도, 대속자가 살아 계시며 행동에 나설 줄 그가 안다는 것이다. 장 전체에 가족, 종, 아는 자, 아내의 시선까지 하나씩 잃어버리는 상황들이 펼쳐지지만, 화자는 현재의 그 어떤 상실도 취소할 수 없는 하나님을 뵙는 전망을 붙든다.
28-29절은 다시 친구들을 향해 칼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한다. 진노가 칼의 형벌을 가져오고 '심판이 있음'(there is a judgment)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장은 25-27절의 부활적 소망을 다음과 같은 더 큰 구조 속에 배치한다. 곧, 현재의 버림받음, 글로 남기기를 원하는 호소, 살아 계신 대속자의 고백, 그리고 압제자가 다가오는 심판에 응답해야 한다는 경고가 그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이는 데도 욥은 왜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줄 내가 아노라'고 말하는가?
직전 절들(21-24)은 욥이 가장 낮은 지점 — 가족과 친구에게 버림받은 상태, 자신의 말을 바위에 새겨달라는 요청 — 에 있음을 보여준다. 25절의 '내가 알기에는'은 그 호소와 구별되는 고백이다. 욥은 지금의 의로운 회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대속자가 마침내 '땅 위에 서셔서' 자기 편에서 행동하실 것을 '안다'고 고백한다. 이 지식은 욥의 현재 상황이 아니라 대속자의 성격에 근거한다.
욥기 19:26은 욥이 육체를 가지고 다시 살거나, 육체 없이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뜻인가?
이 절은 '내 가죽이, 곧 이 몸이 썬 뒤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기록한다. '육체 밖에서'(without my flesh)의 문법은 해석이 나뉜다. '육체의 도움 없이'(몸의 중개를 떠나서 하나님을 직접 뵙는 것)로 읽을 수도 있고, '육체로부터'(육체의 눈으로)라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절의 핵심 주장인 '대신하는 자가 아니라 욥 자신이 하나님을 보며, 이 봄이 현재의 몸이 썬 뒤에 이루어진다'는 점은 동일하다. 본문 자체는 시현의 세부 사항을 모두 결정짓는 형태로 문법을 확정하지 않는다.
욥이 말하는 '대속자'는 누구인가?
욥은 그를 '나의 대속자'라 부른다. '대속자'라는 칭호는 친족의 억울을 풀어줄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가진 자를 가리킨다. 욥은 이 연설 안에서는 혈통이나 이름으로 대속자를 특정하지 않으며, 그가 무엇을 하실 것인가 — 살아 계시고 땅 위에 서실 것 — 로 그를 묘사한다. 이후의 독자들은 이 고백을 다양한 기대와 연결시켜 왔지만, 주어진 장 본문 자체는 어떤 인물이 이 역할을 수행하는지 명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