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기 42:14 — 욥의 세 딸의 이름
욥의 형편이 두 배로 회복된 뒤, 그는 태어난 세 딸에게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본문
- 14.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And he called the name of the first, Jemimah: and the name of the second, Keziah; and the name of the third, Keren-happuch.
이 본문의 의미
42:14절은 욥의 회복 서사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욥이 벗들을 위해 기도한 후(42:10) 여호와는 이전에 있던 것의 두 배를 주신다. 양 만 사천, 낙타 육천, 소 일천 쌍, 암나귀 일천(42:12)과 함께 아들 일�과 딸 셋을 주시고(42:13), 이 절에서 태어난 순서대로 세 딸의 이름을 기록한다.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
'첫째 … 이름하였고 둘째 … 이름하였고 셋째 … 이름하였으니'이라는 명명 형식은 표준 히브리어 돌레도트(계보) 양식이며, 중요한 자손을 표시할 때 사용된다(창 4:1, 25; 5:3과 비교). 딸들을 개별적으로, 아들과 같은 형식으로 명명함으로써 본문은 그들의 출생을 회복 사건 안에서 주목할 만한 일로 제시한다.
아들 일곱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고 딸 셋의 이름만 기록된다. 이는 구약의 계보 양식에서 이례적이어서 이 세 여성에게로读者的 주목을 이�다. 바로 다음 절(42:15)은 그들의 특별한 지위를 확인한다. '온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를 찾을 수 없었으며'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에게 형제 가운데에서 분깃을 유업으로 주었다.
배경
42장은 이 책의 결론부를 이룬다. 욥이 여호와께 응답하며(42:1–6) '이제 내가 주를 눈으로 뵙나이다'라고 고백한 후 재와 ashes에서 회개한다. 여호와께서 엘리바스를 돌아보시고 벗들을 정죄하시며 욥을 통해 번제를 드리라고 명하신다.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여호와께서 그를 받으신다(42:7–9). 10절에서 전환점이 마련된다. '여호와께서 욥의 사로잡힘을 돌이키게 하시니 그가 벗들을 위하여 기도함이라.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에 있던 것의 두 배를 주셨더라.' 이후 절들(42:11–17)은 구체적 회복을 기술한다. 친척들이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함께 식사하고(11절), 가축이 두 배가 되며(12절), 아들 일곱과 딸 �이 태어나고(13–14절), 딸들의 아름다움과 유업이 언급되며(15절), 욥은 긴 삶을 살고 '늙고 기운이 충만하여' 죽는다(16–17절).
이 결론 블록 안에서 14절은 자녀의 열거(13절)와 딸들의 특별한 지위에 대한 언급(15절) 사이를 잇는 경첩(hinge) 역할을 한다.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이라는 명명은 본문이 자녀 수를 세는 데서 딸들의 아름다움과 동등한 유산으로 넘어가게 하는 문학적 연결점이다.
자주 묻는 질문
왜 욥은 아들 일곱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고 딸들의 이름만 기록하나요?
본문은 이 누락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42:14에서 세 딸의 이름이 명명된다는 점은 일곱 아들이 이름 없이 언급된 것과 대조적이다. 42:13–15의 구조에 기반한 가장 일반적인 독법은, 다음 절이 딸들의 탁월한 아름다움과 형제 사이의 유업이라는 딸들만의 고유한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에 저자가 딸들에게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이라는 이름에 뜻이 있나요?
이 절 본문 자체는 그 이름들의 의미를 밝히지 않는다. 여러 제안이 존재한다 — 예컨대 여미마를 '낮' 또는 '비둘기', 긋시아를 '계피'(향료), 게렌합북을 '아이섶을 넣은 뿔 항아리' 등으로 보는 해석들 — 그러나 욥기 42:14 본문은 그 어느 것도 확인하지 않으므로, 이 절이 말하는 바의 일부로 다룰 수 없다.
이들은 욥이 이전에 잃었던 딸들과 같은 사람들인가요?
그렇지 않다. 욥기 1:2는 처음의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열거하지만(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이라는 이름은 거기 기록되어 있지 않다), 1:18–19절은 처음의 자녀 전체가 죽었다고 기록한다. 42:13–14의 아들 일곱과 딸 셋은 42:10의 회복 이후에 태어난 새로운 자녀들이며, 12절의 '이전에 있던 것의 두 배'라는 축복의 일부로 주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