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애가 2:22 — 절기처럼 소집된 총체적 멸망

애가 2:22는 하나님께서 성스러운 절기를 소집하듯 멸망을 불러들이시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화자가 키운 자녀들을 삼키셨다고 말하며 장을 마무리한다.

본문

  1. 22.주께서 내 두려운 일들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 때 무리를 부름 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나이다 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을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Thou hast called, as in the day of a solemn assembly, my terrors on every side; And there was none that escaped or remained in the day of Jehovah's anger: Those that I have dandled and brought up hath mine enemy consumed.

이 본문의 의미

22절은 세 이미지를 하나의 참담한 문장으로 모아 2장을 마무리한다. 첫째, 하나님이 '절기의 날'처럼 화자의 '두려운 일들'을 '부르셨다'는 표현이다. 이 히브리 어구는 예배를 위해 소집된 거룩한大会(대회)을 도시 주변에 모여든 재앙에 비교한다. 이 반전은 의도적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할 그 날이 오히려 사방에서 멸망을 불러들인 날이 되었다. '절기' 관련 어휘는 이전 6절('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게 하셨으며'), 7절('여호와의 집에서 절기의 날과 같이 소란하였더라')에서도 쓰였는데, 여기서 그 어휘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모이던 자리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나기 위해 공포를 모으신 것이다.

둘째,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었다.' 이 표현은 절대적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화자가 볼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이는 2장 전체를 관통하는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다'는 refrain의 연속이다(2, 17, 21절). 여기서 말하는 완전성은 숫자가 아니라 관계적 상실이다 — 화자는 둘러싸여 있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셋째, 이 절은 개인적 한탄으로 끝을 맺는다. '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을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화자(20절에서처럼 예루살렘으로 인격화된 존재)는 자기 품에서 기른 자녀들에 대해 하나님께 직접 호소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원수가 그들을 삼켰다. 2장은 간청이 아니라 이미 완료된 상실의 진술로 끝나며, 독자를 침묵의 가장자리에 세워 놓는다.

배경

19–22절은 2장의 절정부를 형성한다. 19절은 거리에서 기진하여 쓰러지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화자가 '물 같이' 자기 마음을 여호와 앞에 쏟아내도록 부른다. 20절은 공포를 더 확장한다 — '손에 안기는 아이들'인 자녀를 먹는 식모(食母)의 광경, 성소 안에서 죽임을 당한 제사장과 선지자. 21절은 죽음을 모든 연령대로 확장한다 — 청년과 노인, 처녀와 청년들이 칼에 쓰러지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도살당한다. 22절은 이 목록을 한 이미지 — 생존자 없는 절기형(節期型) 멸망, 그리고 삼켜진 자녀들 — 로 모은다.

2장 전반에서 '절기' 관련 어휘는 반전된 형태로 반복된다(6, 7절). 예배는 이제 전쟁이 되었고, 모임은 이제 흩어짐이 되었으며, 일단 하나님의 '발등상'(1절)이요 '장막'(6절)이었던 것은 이제 폐허가 되었다. 17절의 주권 진술 — '여호와께서 경영하신 것을 행하셨느니라' — 은 22절의 엄정한 결론의 틀을 제공한다. 화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행위임을 부인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기를 요청한다.

자주 묻는 질문

22절은 왜 멸망을 '절기의 날'에 비교하는가?

이 장은 이미 6절과 7절에서 폐허가 된 성전과 여호와의 집 안에서 울리는 원수의 소란을 '절기' 어휘로 묘사했다. 22절은 그 반전을 완성한다. 예배하러 모이는 백성 대신, 하나님이 사방에서 두려운 일들을 소집하신다. 이 비교는 예루살�에 일어난 일이 거룩한大会와 같은 무게와 완전성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 다만 소집된 대상이 예배자에서 심판으로 바뀐 것뿐이다.

'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의 화자는 누구인가?

2장 전반에서 성읍은 인격화된 어머니로서 말하는데, 20절이 이를 명시한다 — '손에 안기는 아이들 곧 자기 태의 아이들을 여인들이 먹으리이까'. 22절도 같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이어간다. 화자는 인격화된 예루살렘이며, 자신이 키운 자녀들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들을 삼키는 '원수'는 앞 절들에서 묘사된 하나님의 심판 아래 행하는 침략 세력이다.

22절을 이 장의 신학 속에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장은 일어난 일을 인간의 잔혹함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행위로 확언한다 — 17절은 '여호와께서 경영하신 것을 행하사 옛날에 명령하신 자기 말을 응하셨고 ...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라고 말한다. 22절도 이것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멸망을 부르셨고 원수가 그 소집 안에서 행위했음을 받아들이되, 항의로 끝나지 않고 삼켜진 아이들의 벌거벗은, 해결되지 않은 사실로 끝난다. 이것은 큐레이션 메모가 제시한 신앙의 표현 방식 —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함이 아니라, 완료된 상실을 그분 앞에 내려놓는 행위 — 와 일치한다.

연구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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