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누가복음 9:23-24 —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짊어짐

예수님은 제자도의代价를 정의하신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며,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는 것이 오히려 목숨을 구원하는 역설적 교환이다.

본문

  1. 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And he said unto all, If any man would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2. 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For whosoever would save his life shall lose it; but whosoever shall lose his life for my sake, the same shall save it.

이 본문의 의미

23절은 나를 따라오려는 자에게 세 가지 연결된 요구를 제시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 '나를 따라오려거든'이라는 표현은 제자도를 살아 있는领袖를 따르는 것으로 규정하며, 단순히 가르침을 수용하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 자기 부인이 가장 먼저, 그리고 나머지 둘의 토대로 제시된다. 제자의 자기 주장, 자기 이익, 자기 결정이 예수님께 대한 순종에 자리를 내주도록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는 '날마다' 지는 것으로, 이것이 단번의 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삶의 반복되는 방향 설정임을 보여주며, '나를 따를 것'은 십자가 짊어짐을 제자도의 중단이 아니라 제자도의 길 자체로 만든다.

24절은 그 요구의 근거를 제시하며 역설을 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목숨'(psuchē)으로 번역된 단어가 양 반쪽에서 그대로 반복되므로, 대조되는 것은 두 가지 다른 대상이 아니라 같은 목숨의 두 가지 다른用法이다. 여기서 목숨을 '구원한다'는 것은 그것에 집착하며 자기 보존과 자기 발전을 위해 삶을 조직하는 것을 뜻하고,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께 대한 충성을 위해 그것을 소비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절은 23절의 십자가 짊어짐을 어떤 미래 보상으로 상쇄해야 할 손실이 아니라, 실제로 목숨이 보존되는 조건으로 제시한다.

23-24절을 통째로 읽으면 하나의 진술이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 모양인데, 이는 그분께 대한 충성이 자아의 항복을 요구하기 때문이며, 그 항복은 자아의 파괴가 아니라 자아의 구원이다. '날마다'가 십자가를 지라는 부르심 안에 놓여 있고, '나를 위하여'가 참된 생명의 약속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두 절을 긴밀하게 묶는다. 날마다의 자기 부인의 죽음과 참된 생명의 약속된 획득은 동일한 행위에 속하며, 어느 한쪽이라도 다른 한쪽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배경

누가복음 9:23-24는 이 장의 분기점에 놓여 있다. 앞에서는 제자들이 전도와 치유 사역에서 돌아온 일(1-6절), 베드로의 고백 '하나님의 그리스도'(20절), 그리고 예수님의 처음 드러난 예고 — 인자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한다는 말씀(22절) — 이 이어진다. 23절의 십자가를 지라는 부르심은 바로 이 예고 직후에 이루어지므로, 제자의 십자가는 messiah의 십자가와 나란히 놓인다. 이어지는 24-27절은 곧바로 이 논리를 확장한다. 온 천하를 얻어도 자기를 잃거나 손해 보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인자가 '자기 영광과 아버지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오실 때 그를 부끄러워하실 것이다.

장 전체의 흐름 속에서 보면, 23-24절의 요구는 그 뒤의 장면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시험받는다. 변화산(28-36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37-43절), 누가 가장 크냐 하는 다툼(46-48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마리아 마을(51-56절), 그리고 각각 유예나 면제를 구하고 나서 따르겠다고 한 세 지원자들(57-62절). 이 배경에 비추어 볼 때 23-24절은 장 안에서 참된 따름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기준으로 기능하며, 뒤따르는 내러티브들은 그 기준이 요구하는 값(代價)을 보여주거나 드러낸다.

자주 묻는 질문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모든 제자가 반드시 육체적 죽음을 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십자가 짊어짐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하는 모든 사람이 채택해야 할 날마다의 자기 부인 자세로 제시된다. 어떤 제자들은 실제로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게 될 것이지만(24절), 23절의 표현은 '날마다'를 그 부르심 자체 안에 두어, 단번의 필연적 순교라기보다 반복되는 삶의 방향을 가리킨다.

24절의 '목숨을 잃는 것'은 곧 육체적 죽음과 같은 뜻인가?

양쪽 반쪽에서 사용된 헬라어 단어가 동일하므로, 대조는 죽음과 생존 사이가 아니라 하나의 목숨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사용 사이의 대조이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는' 것은 예수께 대한 충성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소비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지만 그 삶의 끝나는 방식이 아니라 그분께 향하는 방향성에 의해 규정된다.

이 말씀은 어째서 22절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예고 바로 뒤에 놓여 있는가?

이 장은 베드로의 고백(20절), 인자의 고난과 부활 예고(22절), 십자를 지라는 부르심(23절)을 곧바로 잇는다. 그 맥락에서 제자가 지게 될 십자가는 예수님 자신이 방금 선포하신 십자가와 나란히 놓이며, 따라서 그를 따르는 것은 방금 말씀하신 자기 희생의 양태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게 된다.

연구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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