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빌레몬서 1:17 — 나를 받듯이 그를 받으라

바울은 빌레몬과의 동역자 관계를 호소하며, 오네시모를 자신에게 베풀 듯이 영접해 줄 것을 요청한다.

본문

  1. 17.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If then thou countest me a partner, receive him as myself.

이 본문의 의미

17절은 바울의 호소 전체를 하나의 구체적인 요청으로 바꾸어 놓는 지점이다.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이 가정문("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은 답이 '그렇다'임을 전제로 하며, 바울은 이미 확립된 관계를 환기시키면서 오네시모를 영접할 때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라는 명령은 바울과 오네시모 사이의 거리를 사라지게 한다. 16절이 오네시모를 "종"에서 "사랑하는 형제"로 재정의했다면, 17절은 그 재정의에 실천적 내용을 부여한다. 바울 — 사도이자 동역자(1절)이자 함께 수감된 자(9절) — 에게 베풀 영접을 이제 돌아오는 종에게도 똑같이 베풀 것을 요구한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 신임을 오네시모의 환대 보증 뒤에 세워 둔다. 이 호소는 율법이나 의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교제(동역자 관계)에 기대는 것이다. 핵심은 빌레몬이 그 동역자 관계를, 나그네이던 종을 형제의 원 안에 받아들이는 그런 유대로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배경

17절의 호소는 정교하게 쌓인 수사적 흐름 안에 놓여 있다. 바울은 빌레몬의 사랑과 섬김의 사역(4–7절)을 먼저 인정한 뒤, "명령할" 권위(8절)를 스스로 내려놓고 "간청"하는 쪽을 택한다(9절). 요청의 근거는 사도적 권한에서 개인적 affection으로 옮겨가며, 바울은 자신을 "늙은 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갇힌 자"라 밝힌다(9절).

10–16절은 17절을 위한 신학적 토대를 놓는다. 한때 "무익한" 자였으나 이제 "유익한" 자(11절)가 된 오네시모는 "사랑하는 형제"로 다시 규정된다(16절). 17절은 바로 그 새로운 현실에 따라 행동해 줄 것을 요청하고, 이어지는 18–20절은 오네시모가 진 빚이 있으면 바울이 대신 책임지겠다고 제안하며 호소를 한 단계 더 넓힌다.

자주 묻는 질문

바울이 빌레몬과의 동역자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17절의 가정문("그러므로…알진대")은 답이 긍정임을 전제로 한다. 바울은 이미 존재하는 동역자 관계를 의문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오네시모를 영접할 때의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17절은 16절과 어떤 관계인가?

16절이 오네시모의 신분을 "종"에서 "사랑하는 형제"로 재정의했다면, 17절은 그 재정의에 실천적 내용을 부여한다. 곧 바울 자신에게 베풀 영접을 오네시모에게도 똑같이 베풀 것을 요구한다.

바울은 왜 오네시모를 자기에게 베풀 듯이 영접해 달라고 하는가?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 신임을 오네시모의 환대 요청 뒤에 세워 둠으로써, 오네시모를 거절하는 것이 곧 자신(바울)을 거절하는 일이 되게 한다. 이 호소는 율법이나 명령이 아니라 동역자 관계의 유대에 기대어 힘을 얻는다.

연구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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