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요한3서 1:11 — 선을 본받으라

요한은 가이오에게 악이 아닌 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며, 행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낸다고 선포한다.

본문

  1. 11.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Beloved, imitate not that which is evil, but that which is good. He that doeth good is of God: he that doeth evil hath not seen God.

이 본문의 의미

요한3서 1:11은 이 편지 전체에 흐르는 호칭인 '사랑하는 자여'로 시작한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명령은 모방의 대상을 명확히 가른하는 양자택일의 구조를 보인다. 요한은 중간 영역을 허용하지 않고 두 패턴 중 하나만을 향해 reader를 이끈다.

둘째 절은 이 선택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한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서 행위는 그 사람의 근원과 시원의 표지다. '하나님께 속함'과 '하나님을 봄'은 실제 삶에 연결되며,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가시적 행위가 드러낸다. 문법적으로 이것은 현재진행적 사실이다 — 지속적으로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며, 지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 것이다.

이 구절은 편지 전체의 도덕적 분기점이다. 앞 구절(9-10절)에서는 형제들을 받지 않고 환영하려는 자들을 교회에서 내쫓는 디오드레베스를 묘사하고, 뒤 구절(12절)에서는 좋은 증거를 가진 데메드리오를 칭찬한다. 따라서 11절은 두 대조적 인물을 분별할 수 있는 명시적 기준으로 기능한다 — 한 사람은 선의 모범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악의 모범이며, 이 둘을 가르는 판단 기준이 바로 이 말씀에 제시된다.

배경

직접적 맥락은 두 사람의 대조다. 9-10절의 디오드레베스는 으뜸 자리를 탐하며 장로를 받지 않고, 악한 말로 그를 비방하며, 형제들을 교회에서 내쫓는다. 반면에 12절의 데메드리오는 모든 이에게와 진리 자체에게서 좋은 증거를 받는다. 11절은 이 두 인물 사이에서 reader들이 그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 놓여 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요한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며(3-4절), 순례 중인 형제들과 나그네에게 신실한 대접을 베풀었다(5-8절)고 칭찬했다. 이러한 칭찬의 배경 위에서 '선을 본받고 악을 본받지 말라'는 명령은 막연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라, 이미 확립된 패턴을 계속하고 완성하라는 지시이며, 동시에 디오드레베스가 구체화한 반대 패턴을 거부하라는 지시다.

자주 묻는 질문

11절은 모든 개별 행위가 구원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 구절은 선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께 속함', 악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을 보지 못함'을 연결하지만, 요한은 이 편지에서 디오드레베스와 데메드리오의 사례처럼 개별 행위가 아니라 삶의 확립된 방향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증거로서 삶의 방향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요한3서의 나머지 부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11절은 디오드레베스의 부정적 예(9-10절)와 데메드리오의 긍정적 예(12절) 사이의 도덕적 시험대로 놓인다. 이 구절은 가이오에게 두 모범 중 어느 쪽을 따를지를 말하며, 그 둘을 가르는 기준 — 선과 악 — 을 제시한다.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요한의 이 편지 안에서 '하나님을 봄'은 하나님께 속함 그리고 진리 안에서 행함(3-4절 참조)과 연결된다. 이 표현은 악을 행하는 자를 '하나님께 속한' 자와 대조시키며, 문자적 시각 경험이 아니라 지속적 악행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과의 현재적 단절을 기술한다.

연구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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