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창세기 21:7 — 노년에 아들을 젖먹이는 사라의 놀라움
사라는 자기가 낳은 바로 그 아이를 자신이 젖먹이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이것이 자신의 오랜 불임을 마무리하는 놀라움임을 고백한다.
본문
- 7.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And she said, Who would have said unto Abraham, that Sarah should give children suck? for I have borne him a son in his old age.
이 본문의 의미
창세기 21:7은 사라의 두 번째 감탄이다. 6절에서 그녀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으니 나를 듣는 자가 다 나로 함께 웃으리라'고 선언했다. 7절에서 그녀는 그 웃음의 구체적인 이유를 밝힌다. 곧 사라 자신이 아이를 젖먹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라는 의문은 그녀의 젖먹이기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사건으로 제시하며, 수십 년의 불임과 연결된 모든 가정을 뒤집는 완전한 반전을 강조한다.
이 절은 놀라움을 규정하는 두 가지 세부 사항을 연결한다. 첫째, 젖을 먹이는 사람이 사라 자신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wet nurse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아들을 키운다. 둘째, 그 아이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낳은 아들'이다. 이 표현은 2절의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때'에, 그리고 5절의 '아브라함이 백 세에 그 아들 이삭을 낳았더라'에 회답한다. '노경'과 능동적인 젖먹이기의 병치는 이 구절의 핵심이다. 본성이 불가능하게 만든 일을 '여호와께서 자기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권고하셨다'(21:1)고 기록된 그분이 이루어 주셨다.
사라의 말은 또한 앞을 내다본다. 창세기 21:8에는 아이가 자라서 젖을 �었으며, 이삭의 젖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고 기록된다. 7절은 출생과 젖떼는 사이에 놓여, 사라가 젖을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약속된 아들이 진정으로 그녀의 아들이며 살아 있다는 가시적 표지로 굳힌다. 따라서 이 감탄은 동시에 기억(약속과 긴 대기의 회고)이며 현재의 기쁨(일찍이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음)이다.
배경
1–5절은 7절이 놀라워하는 틀을 제공한다. 여호와께서 '자기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권고하셨다'(21:1), 사라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때'에 아브라함의 노경에 아들을 잉태하여 낳았으며(21:2), 그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고(21:3), 여�째 날에 할례를 행하고(21:4), 아브라함은 백 세에 이삭을 얻었다(21:5). 6–7절의 사라의 감탄은 이 이루어진 약속에 대한 반응이다. 6절은 웃음의 주제를 제공하며, 7절은 그것의 구체적 성취로서 젖먹이기를 명시한다.
8–10절은 서사를 전진시킨다. 아이가 자라서 젖을 떼었고(21:8) 큰 잔치가 베풀어졌으며, 곧바로 사라는 이스마엘이 '웃으며' 노는 것을 보고 이집的女와 그 아들을 내보내라고 요구한다(21:9–10). 따라서 7절은 짧지만 분명한 정점에 서 있다. 한때 약속을 듣고 믿지 못해 웃었던 어머니(창 18:12–15)가 이제는 약속된 아들을 공개적으로 젖먹이고 있다.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 상속을 둘러싼 긴장이 하갈과 이스마엘 쪽으로 옮겨간다.
자주 묻는 질문
7절에서 사라가 유독 젖먹이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본문이 그려내는 고대 배경에서 젖먹이기는 어머니가 직접, 공개적으로 아이가 자기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사라가 바로 이 행위를 거명함으로써, 아들의 약속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 있는 경험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곧 일찍이 잉태조차 불가능했던 여자가 지금은 그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키우고 있다.
7절은 6절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6절은 하나님이 사라로 웃게 하셨고 듣는 자가 다 함께 웃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7절은 그 웃음을 구체적 이미지에 붙인다. 곧 아브라함의 노경에 낳은 그 아들을 사라 자신이 젖먹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쁨의 일반적 주제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사건에 대한 구체적 놀라움으로 확정된다.
'그의 노경에'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표현은 2절의 '그의 노경에'와 5절의 '백 세에'라는 언어와呼应한다. 7절이 이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먹이기를 아브라함의 노년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과 나란히 놓는다. 따라서 이 절의 놀라움은 아브라함의 연령과 사라의 품에 있는 살아 있는 아이 사이의 간극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