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욥기 1:21 — 알몸으로 나와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하루아침에 자녀와 모든 소유를 잃은 �이 세상에 알몸으로 나왔고 알몸으로 돌아가리라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한다.

본문

  1. 21.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and he said, Naked came I out of my mother's womb, and naked shall I return thither: Jehovah gave, and Jehovah hath taken away; blessed be the name of Jehovah.

이 본문의 의미

욥의 고백은 사람의 본래 상태에 대한 선언에서 출발한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는 말은 소유를 영구한 권리가 아니라 잠시 맡은 것으로 본다. 태어날 때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떠날 때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면, 재물을 잃는 것은 부당한 박탈이 아니라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다.

두 번째 구절은 욥의 말의 초점을 체념에서 예배로 옮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주신 분과 거두신 분을 동일한 여호와로 지목함으로써, 환경의 모든 변화를 같은 주권적 하나님께 돌린다. 상실은 다른 하나님이나 깨진 계약의 신호가 아니라, 처음에 주셨던 바로 그 분의 계속되는 행위로 이해된다. 마지막 축복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는 운명론적 수용이 아니라 으뜸 되는 분을 향한 찬송이다.

이 구절들을 함께 읽으면 진정한 예배는 환경이 호의적일 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욥은 자기 옷을 찢고 머리를 �으며 애통한다(20절), 그러나 그 입의 다음 움직임은 찬송이다. 슬픔과 찬양이 함께하는 까닭은 욥의 정체성과 소망이 하나님께서 지금 주시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있기 때문이다. 22절은 편집자의 결론을 덧붙인다. 욥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언어도 하지 아니하였더라.'

배경

욥기 1:21은 가축과 종, 그리고 자녀 열 명을 잃었다고 보고하는 전령들의 연속된 고지(13–19절) 속에 놓여 있다. 욥은 말하기 전에 옷을 찢고 머리를 깎으며 땅에 엎드리는 전통적 애통 행위를 행한 뒤, 이意想不到의 행위로서 예배한다(20절). 이 장은 이 상실들을 하늘의 장면과 대비시킨다. 사탄이 욥의 하나님 경외가 본능적인 것인지 도전하며(9–11절), 여호와는 욥의 생명은 건지지 않은 채 시험을 허락하신다(12절). 장은 결론으로 끝난다. 욥이 이 모든 일 가운데 죄를 짓지 않았다(22절).

장 서두의 욥의 초상—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1절), 동방 사람 중 가장 큰 자(3절)—은 사안의 무게를 설정한다. 모든 것을 잃은 후 욥이 1:21에서 한 말은, 공적으로 그 온전함이 묘사된 한 사람의 응답으로 읽히도록 의도된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서론에서 제기된 질문—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과 무관하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의 첫 번째 응답으로 기능한다.

자주 묻는 질문

어찌하여 욥이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리라'고 말합니까?

이 구절 안에서 그 말의 요점은 문자적 귀환이 아니라 비유이다.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나왔던 것처럼,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이 떠날 것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소유를 영구한 재산이 아니라 생과 사 사이에 잠시 맡은 것으로 본다.

이 구절에서 욥은 체념한 것입니까, 예배한 것입니까?

두 가지 흐름이 함께 나타나지만, 구절의 결은 예배에 기울어 있다. �은 주신 분과 거두신 분이 동일한 여호와임을 인정하고, 마지막 행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는 불평이 아닌 찬송이다. 장의 편집자 결론(22절)은 이 말을 '하나님께 어리석게 말함'의 반대로 평가한다.

이 구절은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직접적 뜻이라고 가르립니까?

이 구절은 주심과 거두심 모두를 여호와께 돌릴 뿐, 그 상실 뒤에 있는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않는다. 장 자체가 재난을 수행하는 사탄의 주체적 활동(6–19절)과 여호와의 주권적 허락(12절)을 구분한다. 욥은 모든 변화의 궁극적 주체가 누구인지만 말할 뿐, 이차적 원인을 다루지는 않는다.

연구 이어서

HomeDiscoverStudyRead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