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
요한복음 17:3 —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
예수님은 영생을 끝없이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관계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정의하신다.
본문
-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And this is life eternal, that they should know thee the only true God, and him whom thou didst send, even Jesus Christ.
이 본문의 의미
이 구절은 '영생'(αἰώνιος ζωή)을 양적(기간)으로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시 정의한다. 영생은 우선 죽음 이후의 길이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γινώσκωσιν)으로 들어가는 현재형의 관계이다. 가정법 동사 γινώσκωσιν은 요한복음이 다른 곳에서 '거하다'(μένω)와 연결짓는 친밀한 교제를 뜻한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τὸν μόνον ἀληθινὸν Θεόν)과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란히 놓으신다. '참된'(ἀληθινός)이라는 형용사는 아버지를 우상의 모방적 실재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지, 여기서 아들을 참된 신격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요한일서 5:20이 동일한 표현을 아들에게 적용하므로 이 구절은 삼위일체 논쟁에서 인용되기도 하지만, 그 1차적 의도는 선교적이고 그리스도적이다. 즉 아버지는 그가 보내신 아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
여기서의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그것은 구약이 יָדַע(야다)로 표현한 언약적이며 구원적인 지식이다(호세아 6:3, 예레미야 9:24). 따라서 예수님은 정보를 제공하는 구원론이 아니라 아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의 구원론을 제시하신다.
배경
요한복음 17장은 대제사장적 기도이다. 2절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모든 권위를 주신 목적을 세워 놓는다.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자들이 영생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3절은 그 선물의 내용을 제시한다. 영생은 곧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다. 4-5절은 십자가와 영광으로 나아가며, 장의 나머지 부분은 그 인식의 결과를 전개한다. 곧 unity(합일), 악한 자로부터의 보호, 세상의 믿음(21, 23절)이다.
요한서신 전체에서 '참 하나님을 아는 것'과 '아들을 가지는 것'이라는 표현은 진정한 믿음과 모조된 믿음을 구별하기 위해 반복된다(요한일서 5:11-12, 20). 예레미야 9:23-24와 호세아 6:3은 구약적 배경을 제공한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자랑의 참된 근거이며, 끊임없이 추구할 목표로 제시된다.
원문 핵심 단어
관련 본문
- 1 John 5:20 서신서는 '참된'이라는 표현을 아들에게도 적용하여 요한복음 17:3과 병행을 이루며,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 영생을 소유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 1 John 5:11 영생의 선물을 '그의 아들 안에 있음'에 직접 연결하여 요한복음 17:3의 '앎'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임을 강화한다.
- Jeremiah 9:24 요한복음 17:3의 근거가 되는 구약 뿌리이다. 참된 자랑, 곧 참된 생명은 인자함, 공의, 의를 행하시는 여호와를 아는 것에 있다.
- John 17:25 같은 기도 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를 알지 못한 세상과 그를 알게 된 자들을 대조하여, 3절의 '앎'이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언약의 선물임을 분명히 하신다.
- John 3:17 아들의 보내심을 심판이 아닌 구원의 사건으로 규정하여 요한복음 17:3의 '보내신 자'라는 표현의 선교적 맥락을 제공한다.
자주 묻는 질문
요한복음 17:3은 영생이 사후에야 시작된다고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헬라어는 현재 가정법 '알게 되기를'이며, 요한의 다른 저술은 영생을 현재적 소유로 다룬다(요한일서 5:11-12). 영생은 아버지를 아들을 통해 구원적으로 아는 순간 시작되며, 비록 죽음 너머로도 계속된다.
요한복음 17:3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나님에서 배제하려는 것인가?
'참된'(ἀληθινός)이라는 형용사는 아버지를 우상과 허상에서 구분하는 것이지, 아들을 참된 신격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일서 5:20은 동일한 '참된' 표현을 아들에게 적용하며, 요한복음 1:1은 이미 말씀을 하나님과 동일시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적이고 선교적이다. 아버지는 보내신 아들을 통해 자신을 알게 하신다.
요한복음 17:3이 요구하는 '앎'의 성격은 무엇인가?
요한복음의 γινώσκω는 종종 히브리어 יָדַע에 상응하는 언약적이며 관계적 의미를 지닌다. 명제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를 뜻한다. 그래서 이 기도의 후반이 보호와 성화와 합일을 걱정하는 것이다(11, 17, 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