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사랑과 공의는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함께 이루어지는가?
하나님의 본성 안에서 사랑과 공의는 서로 경쟁하는 대립이 아니라, 서로 만난 안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어느 한쪽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답변
시편 85:10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각 짝은 인간의 관점에서 경쟁자로 느껴질 수 있는 속성들입니다. 인애는 죄인 쪽으로 기울고, 진리는 죄에 대한 정직을 요구합니다. 의는 심판을 요구하고, 화평은 화해를 부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하나님 안에서 이 성품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서로를 찾다고 단언합니다. 인애가 진리를 희석하지 않고, 진리가 인애를 짓밟지 않습니다. '만나다'(נִפְגְּשׁוּ)는 의도된 조우를, '입맞추다'(נָשָׁקוּ)는 사랑스러운 연합의 이미지를 드러냅니다.
둘러싼 구절들이 이 통일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2절)고 하여 무언가를 값으로 치른 인애를 보이셨고, 동시에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3절) '우리 구원의 하나님'(4절)으로 계십니다. 진리는 땅에서 �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옵니다(11절). 즉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행위가 완벽히 일치합니다. 언약의 신실함과 의로운 통치 모두를 하나님 자신이 공급하시기 때문에 그 양쪽 사이에서 타협이 필요 없습니다.
결과는 줄어든 하나님이 아니라 충만하신 하나님입니다. 의가 그 앞에서 앞서 가 길을 예비하고(13절), 정의의 요구가 이미 충족되었기에 화평이 뒤따릅니다. 사랑과 공의가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통일될 수 있는 까�은, 하나님이 양쪽 모두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자신의 본성에 맞게 일관되게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배경
시편 85는 회개와 소망이 함께하는 공동체의 탄식입니다. 시인은 과거 하나님의 은혜—야곱의 포로 귀환(1절), 죄 사함(2절), 진노 회수(3절)—을 회고한 뒤 그 호의가 계속될지를 묻습니다. 다시 살려주시기를 간청하는 가운데(4–7절), 하나님의 화평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고백하고(8절), 경외하는 자에게 구원이 가깝다고 선언합니다(9절). 10절은 이 흐름의 신학적 절정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언약적 신실함이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만났고, 의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 광경을 그립니다.
역사적으로 이 시편은 포로 이후의 공동체가 새로 주어진 축복이 지속될지, 다시 심판이 돌아올지를 고민하던 상황을 반영합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성품 자체를 안정의 근거로 제시하여 답합니다. 인애와 진리, 의와 화평이 하나님 안에서 대립하는 세력이 아니기에 그의 백성은 안식 가운데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관련 본문
- Psalm 85:10 시편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구절입니다. 인애(חֶסֶד)와 진리(אֱמֶת)가 만나고, 의(צֶדֶק)와 화평(שָׁלוֹם)이 입맞춥니다. 이 짝지음은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각 속성이 대응하는 짝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든 짝이 대립이 아닌 포옹 속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반드시 벌해야 함을 뜻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불의 없이 인애가 가능합니까?
시편은 인애와 진리가 만난다고 말하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운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의는 우회되지 않습니다. 의가 여전히 그 앞에서 앞서 갑니다(13절). 인애에는 값이 따릅니다. 죄가 '덮어져야'(2절) 하고 진노가 '거두어져야'(3절) 합니다. 성경 전체의 그림 안에서 그 값은 그리스도께서 치르셨고, 따라서 진리를 훼손하지 않고도 인애가 베풀어질 수 있습니다.
시편 85:10은 단지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한 것입니까, 아니면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말합니까?
양쪽 모두를 포함합니다. 이 구절은 구원 역사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형상화합니다. 곧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용서하는 인애가 언약의 신실함과 만나는 순간, 하늘의 의가 내려와 땅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11절). 시인은 과거의 회복(1–3절)을 회고하고 더 충만한 회복을 기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연합이 결국 십자가에서—사랑과 정의가 입맞추는 자리에서—완전히 실현되었다고 봅니다.
13절 '의가 그의 앞에서 앞서 가리라'는 말씀은 이 그림에 무엇을 더합니까?
하나님의 구원적 접근의 순서를 보여줍니다. 의가 앞서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따라 화평이 걸어갑니다. 정의는 화평이 밀어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화평이 걸어가는 바로 그 길입니다. 그래서 10절에서 의와 화평이 입맞추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승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