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어떻게 평생을 따르는가?

다윗은 시편 23편을 마무리하며,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라고 고백하고,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살리로다 선언합니다.

답변

시편 23편의 마지막 절은 이 목자 시 전체를 묶어 줍니다. 여호와를 쉬게 하시는 목자(2절), 영혼을 소생시키는 목자(3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 하시는 목자(4절), 원수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는 목자(5절)로 그려낸 뒤, 다윗은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6절)라고 고백합니다. 때때로 내리는 축복이 아니라, 선하심(푸른 풀밭과 물 가, 상과 기름이라는 실제적 은혜)과 인자하심(언약적 사랑, 하나님과 백성을 연결하는 헤세드)이라는 두 동행자가 매일매일 신자를 따라오는 것입니다.

"내 평생에"라는 표현은 매일의 여정과 최종 목적지를 의도적으로 연결합니다.地上的 날들은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끝나는 순례의 과정으로 제시됩니다. 1-5절의 목자 이미지가 추상적 명사를 구체화합니다. 선하심은 푸른 풀밭, 쉴 만한 물, 차려 주신 상이요, 인자하심은 안위하시는 지팡이와 막대기입니다. 따라서 이 절은 신조를 일상의 경험으로 바꾸어 질문에 답합니다. 해가 뜰 때마다 같은 두 수행원이 따라오며, 그들은 그 양이 목자의 집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배경

시편 23편은 다윗이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고백하는 것(1절)에서 시작해, 공급과 보호와 넉넉한 환대의 장면들을 지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자신을 영원히 여호와의 집까지 따를 것이라는 확신으로 끝맺는(6절) 한 편의 구성입니다. 시편을 여는 목자 비유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가 6절의 마지막 약속을 가능하게 합니다. 양을 떠나지 않는 목자이기 때문에,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양의 걸음을 뒤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6절은 시의 절정으로 기능합니다. 앞 절들은 목자가 양을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를 말하고, 이 절은 양과 함께 무엇이 따라가는지를 말합니다. "내 평생에"라는 표현은 그 동행을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에서 정점에 이르는 시간적 범위 안에 놓으며, 마침내 양이 목자의 집에서 안식하는 장면으로 시편을 닫습니다.

관련 본문

  • Psalm 23:6 이 절을 1-5절과 함께 읽으면,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막연한 축복이 아니라 시편 전체의 장면들을 통해 드러난 목자의 누적된 돌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내 평생에"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이 생애에 한정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6절 자체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로 수평선을 넓힙니다. 지상의 날들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기간일 뿐이며, 그 인자하심은 무덤에서 멈추지 않고 신자를 여호와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이 절에서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어떻게 다릅니까?

선하심은 푸른 풀밭, 쉴 만한 물, 차려 주신 상, 기름 부으심(2, 5절) 같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돌봄을 가리키고, 인자하심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양과 함께하시는 목자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가리킵니다(4절). 둘이 합하여 매일의 공급과 변함없는 함께하심 양쪽을 포괄합니다.

다윗은 왜 따르거나 쫓아온다는 이미지를 사용합니까?

시편을 도달이 아닌 추격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다윗은 신자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뒤쫓지 않아도 됨을 보여줍니다. 목자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오히려 양을 따라오기 때문에, 양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이르기까지 어느 하루도 그 동행 없이 남는 날이 없습니다.

연구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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