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어찌하여 평생 나를 따르는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언약적 인자하심(체세드)은 믿는 자의 생애 모든 날을 능동적으로 따라오며, 마침내 그를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이끕니다.
답변
시편 23:6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기서 '인자하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체세드(chesed)'로, 성경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일컫는 핵심 용어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에 근거하여 스스로 결속하신 변함없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이 품질들을 쫓아가는 쪽이 아니라, 마치 귀한 손님을 호위하듯 능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시편 23의 목자는 이미 영혼을 소생시키시고(3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함께하시며(4절), 원수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십니다(5절). 이러한 목자가 자기 양을 버리실 리 없으므로, 그 결론은 당연히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따라온다는 확신입니다. '따르리라'는 동사는 두 분의 신적同伴이 신자 뒤에서 한 걸음씩 호위하는 모습처럼 그려, 어느 길로 가든 뒤편이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으로 지켜짐을 보여줍니다.
이 추격의 최종 목적지는 같은 절의 후반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에 드러납니다. 따라오는 인자는 무작위가 아니라, 사람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영구히 들어오게 이끌 목적을 가진 행위입니다. 따라서 선하심과 체세드는 현재의 날마다의 차원과 영원한 궁극적 목표, 즉 신자를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 안에 정착시키는 두 층위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배경
시편 23은 주님을 이스라엘의 목자-왕으로 묘사하는 하나의连贯된 시입니다. 1–3절은 푸른 풀�, 쉴 만한 물, 의의 길, 소생된 영혼을 통해 신실한 목자의 날마다의 공급을 보여줍니다. 4–5절은 무서운 골짜기와 원수 앞에서 펼쳐진 상으로 시야를 넓혀, 목자의 돌봄이 편안함에 머물지 않고 위기와 대립 속까지 미침을 드러냅니다. 6절은 앞서의 모든 인자 행위를 한 약속으로 요약합니다. 선하심과 체세드가 신자를 영원히 하나님의 집으로까지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목장을 아는 자이자 왕座的 자리에서도 신앙을 고백한 다윗입니다. 그는 선하심을 먼 이상으로 말하지 않고 현재의 수행자로 묘사하며, 인자를 가끔 내리는 것으로가 아니라 평생을 따라오는 추격자로 표현합니다. 6절의 문법은 강조적이어서("반드시…따르리라"), 소원이 아닌 언약적 확실성으로 바꾸어 놓으며, 이는 1절에서 소개된 목자의 성품에 근거합니다.
관련 본문
- Psalm 23:6 이 약속을 직접 규정하는 본절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인자하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체세드(chesed)'는 신자를 하나님의 집으로 영원히까지 따라오는 언약적 신실함을 가리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우리가 값을 치르기 때문에 따라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시편 23:6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라'는 형태로 능동적으로 신자를 추격한다고 제시하며, 사람의 노력으로 받는 값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 동기는 인간의 자격이 아니라 목자의 성품(1절)과 그분의 이름(3절)에 있습니다.
이 따르심은 얼마나 오래 지속됩니까?
'내 평생에'는 현재의 지평을,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는 그것을 끝 없이 연장합니다. 따라서 선하심과 체세드는 날마다의 차원과 영원한 차원을 동시에 지닙니다.
이 절에서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어떻게 다릅니까?
선하심은 하나님의 실제적이고 은혜로운 행위, 곧 공급과 소생과 상(2–5절)을 가리킵니다. 인자하심(체세드)은 그 행위 뒤에 있는 변함없는 언약적 헌신을 가리킵니다. 둘은 함께 하나님이 베푸시는 친절과, 그 친절을 사랑받는 자에게 끊임없이 추구하시는 신실함을 동시에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