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시편 22:1 — 다윗의哀歌인가 메시아 예언인가?
시편 22장은 다윗의 개인哀歌이자 동시에 메시아 예언으로 읽힙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하기보다 함께 잡아야 합니다.
답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첫 외침은 날것의 개인적 고통을 토로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듯한 느낌 속에서 낮에도 밤에도 응답 없이 부르짖고(1–2절), 이스라엘의 기억 속 주께서 의뢰하는 자를 건지신다는 사실을 붙잡습니다(4–5절). 시인은 원망에서 과거의 신실하심으로 옮겨가다, 스스로를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라며(6절), 둘러싸이고 노려보며 살려지려는 자의 처지까지 내어보입니다(12–17절).
동시에 이 묘사들 가운데 다윗의 어느 한 시기를 넘어서는 세부들이 있습니다. 수족이 찔리고(16절), 겉옷이 나뉘고 속옷을 제비 뽑히며(18절), 뼈가 어그러지고 마음이 밀랍처럼 녹는(14–15절) 장면은 십자가의 이야기와 일치하고, 예수 자신께서 십자가에서 이 1절을 인용하셨습니다(마태복음 27:46). 이후 시편은 찬양(22절), 온 세상의 예배(27–28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까지 의를 전하는 모습(31절)으로 나아가 다윗을 넘어 땅의 끝까지 채우는 통치를 가리킵니다.
가장 좋은 읽기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입니다. 다윗은 진심 어린 고통 속에서 이 시를 썼고, 성령은 그 말씀을 그 너머로 옮겨, 온 만민이 예배하게 하시는 의로운 고난받는 이에게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哀歌가 예언에 진실함을 주고, 예언이 哀歌에 소망을 줍니다.
배경
시편 22장은 다윗의 시로, "아얄렛 하스 사할(사슴의 새벽)"에 맞추어 새벽 예배를 위한 찬송으로 주어졌습니다. 가장 깊은 哀歌로 시작하여 가장 넓은 이방인의 예배 비전으로 끝을 맺습니다. 중간 부분은 몸의 고난, 조롱("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8절), 의복을 제비 뽑는 장면까지 묘사하며, 이후의 독자들은 이 모든 것을 십자가의 그림자로 보았습니다.
다윗의 시로서 먼저 읽는 것은 지나친 알레고리를 막아줍니다. 다윗은 진심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메시아 예언으로 읽는 것은 이 시를 어느 한 왕의 어려운 하루로 축소시키지 않습니다. 哀歌–고난–옹호–보편적 찬양이라는 정경적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두 음성을 동시에 듣게 합니다.
관련 본문
- Psalm 22:1 연구 대상인 이 절 자체가 양층의 열쇠를 놓습니다. 다윗의 개인적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신약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되며, 哀歌와 예언의 두 읽기를 한 문장 안에서 묶어 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시편 22:1은 다윗에 관한 말인가요, 예수에 관한 말인가요?
둘 다 해당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고통 가운데서 썼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 절을 인용하셨습니다(마태복음 27:46; 마가복음 15:34). 시편은 먼저 다윗에게 말하고, 그를 통해 우리를 대신해 그 같은 하나님 버림을 겪으시는 고난의 메시아에게까지 말합니다.
"예언"이라 부르면 다윗의 실제 아픔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다윗의 고통은 예언이 자라난 흙이며, 6절과 14–15절, 17절의 신체적 묘사는 비유로 보기에는 너무 구체적입니다. 메시아적 읽기는 다윗의 생애를 넘는 지평을 더할 뿐, 그의 눈물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이 시편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정직하게 기도문으로 읽으십시오. 자신의 "어찌하여"를 하나님 앞에 가져다 놓고(1–2절), 과거의 신실하심을 떠올리며(4–5절, 9–10절), 22절에서 哀歌가 찬양으로 바뀌는 전환을 기다리십시오. 온 땅이 합류하는 27–28절까지 따라가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