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시인이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말한 까닭은?
여호와가 그의 목자이시기에 다윗은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능동적으로 공급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에 진정한 필요는 채워진다.
답변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는 물리적 필요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확신에 찬 신뢰의 고백이다. 다윗은 어떤 결과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께서 직접 목자의 직무를 — 먹이심(푸른 풀밭), 물을 주심(쉴 만한 물), 회복시키심(3절), 보호하심(지팡이와 막대기, 4절), 영화롭게 하심(상과 기름, 5절) — 수행하시기에, 양의 안전은 환경에 근거하지 않고 목자의 성품에 근거한다. 부족함이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의 부재인데, 다윗은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도 모자라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다는 것은 그의 소유와 보살핌 아래에 산다는 뜻이다. 목자는 양 무리를 소유하고, 각 양을 알며, 몰아가지 않고 이끌며, 양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노출한다. 다윗은 이를 personally 체험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 결정적 현실이다. 지팡이와 막대기의 안위는 훈육뿐 아니라 친밀함 — 목자의 도구가 양의 손이 닿는 곳에 늘 있음을 — 말해준다. 원수의 목전에서 차려 주신 상과 넘치는 잔은 목자의 공급이 넉넉할 뿐 아니라 환경을 넘어 풍성함을 누리게 함을 보여준다.
시편은 현재의 확신("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에서 일생의 확신으로 나아간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6절). 따라서 1절의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일회적인 진술이 아니라 푸른 풀밭에서 여호와의 집에 이르기까지 목자의 함께하심 안에 놓인 삶의 첫 번째 표현이다. 부족의 정의가 바�다. 필요한 것이 결핍되는 것이 아니라, 목자 자신이 그의 양에게 요구되는 것을 채워 주시기 때문이다.
배경
시편 23은 다�의 작품(표제)이다. 다윗 자신도 전직 목자로서 무리를 돌보는 일을 잘 알았다. 신뢰를 담은 이 시편은 창 48:15, 사 40:11 등에서 발견되는 목자 이미지를 사용하지만, 다윗은 그것을 독특하게 개인화한다. "나의" 목자. 푸른 풀밭, 의의 길, 골짜기, 상, 집으로 이어지는 시편의 흐름은 고요한 공급에서 최종 거소까지 하나님의 보살핍 아래 놓인 온전한 삶을 그린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표현은 시편 전체를 열고 구조화한다. 이어지는 2–6절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목자는 쉴 곳을 주시고,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이끌으시고, 위험 가운데 함께하시고, 원수 앞에서 영화롭게 하시고, 언약적 인자하심(히브리어 '헤세드')으로 시인을 따르신다. 그러므로 1절은 논제(thesis)이고, 나머지는 그 논제를 펼치는 증거이다.
관련 본문
- Psalm 23:1 답변을 떠받치는 바로 그 구절이다. 다윗의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전제된 고백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에 전적으로 근거한다. 정체성이 공급보다 먼저 선다.
자주 묻는 질문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결코 어떤 것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뜻인가?
이는 삶의 본질과 경건에 필요한 것이 결핍되지 않는다는 뜻이다(시 23:2–6 참조). 시편은 안락이나 부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신실한 함께하심과 가장 중요한 것을 공급하심을 약속하는 것이다.
목자 이미지는 왕이나 재판관의 이미지와 어떻게 다른가?
왕은 왕좌에서 통치하지만, 목자는 들판에서 양 무리와 함께한다. 하나님의 목자됨은 멀리서 행사하는 권위가 아니라, 먹이고 이끌며 품어 보호하는 개인적이고 친밀하며 부드러운 돌봄이다.
1절과 6절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절("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은 논제(thesis)이고, 6절("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은 그것의 일생적 성취이다. 현재의 신뢰로 시작된 것이 영원한 거소로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