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이것은 내 몸이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예수님은 떡이 자신을 위해 주어지는 몸을 진실로 상징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에 따라 문자적, 성례적, 상징적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답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며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그 신비의 방식을 설명하지 않고, 다만 떡과 '주어지는' 몸 사이의 동일성을 단언하며, 그것을 곧 임할 십자가와 제자들의 끊임없는 기념에 연결시킬 뿐입니다.
교회 전통은 이 동일성을 크게 세 가지로 읽어 왔습니다.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실재설 혹은 화체설)는 떡이 외형은 그대로 두고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다고 가르칩니다. 루터교는 성례적 연합(sacramentum unionem)을 주장하며, 그리스도가 떡 '안에서, 함께, 아래에서' 참으로 임한다고 �니다. 개혁주의와 많은 복음주의 전통은 상징적이거나 영적 임재를 가르치며, 떡이 십자가에 못 박힌 몸을 가리키고 성령이 그것을 통해 믿음을 양육한다고 해석합니다. 각 전통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의 직관적 힘과 교회의 지속적 실천에 근거를 둡니다.
배경
누가복음 22:19는 최후의 만찬 말씀의 네 가지 복음서 기록 가운데 하나입니다(마태복음 26:26, 마가복음 14:22, 고린도전서 11:24도 참조). 이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밤, 예수님이 열두 제자와 나누신 유월절 식사 안에 놓여 있습니다. 누가는 떡과 함께 '저녁 먹은 후에' 잔을 더해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말씀하시며(20절), 이 식사를 그리스도의 죽음의 기념이자 참여로 규정합니다.
본문은 떡이 어떻게 '몸'이 되는지 그 방식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를 기록하며, 제자들이 이 행위를 반복할 것('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을 전제할 뿐, 이후의 독자들이 언어, 성례, 상징을 가늠하도록 남겨 둡니다. 성실한 해석은 본문이 단언하는 것(참된 동일성, 참된 선물, 참된 기념)과 본문이 정의하지 않는 것(임재의 방식)을 구분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관련 본문
- Luke 22:19 예수님께서 떡을 '너희를 위하여 주어지는 내 몸'으로 동일시하시고 지속적인 기념을 명령하신 바로 그 본문입니다. 성찬에 관한 어떤 교리도 이 분명한 선언을 기준으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예수님은 �이 문자적으로 자기 몸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건가요?
누가복음 22:19는 그 말씀을 그대로 기록할 뿐 방식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는 화체설로 문자적으로 읽고, 루터교는 진실한 성례적 연합으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는 그래도 그리스도를 참으로 중재하는 영적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본문은 참된 동일성을 요구하지만, 변화의 철학까지는 스스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나를 기념하여'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요?
이 말씀은 성찬을 교회의 지속적 행위로 만듭니다. 과거 사건의 추억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음을 현재에 선포하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1:26 참조). 여기서 '기억'은 단순히 마음속의 것이 아니라 예전적이고 교제적인 기억입니다.
성찬은 제사인가요?
본문은 성찬을 기념이라 부르고 그것을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과 연결합니다(누가복음 22:20). 따라서 어떤 전통에서는 성찬을 그리스도의 단번 이루어진 제사에 대한 성례적 참여라 말하고, 다른 전통에서는 엄격히 기념 식사에 한정합니다. 본문 자체는 십자가의 자기 넘기 위에 뿌리를 둔, 예수님이 명령하신 바를 교회가 순종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성찬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