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주기도문은 본보기인가 공식인가

주기도문은 기도할 때의 본보기로서 주신 것이지, 주문처럼 외워야 할 공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외식과 중언부언을 경고하신 직후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답변

마태복음 6:9는 '이렇게 기도하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그대로 따라 외울 대본이 아니라 기도의 패턴을 보여 주십니다. 바로 앞 절(5-8절)에서는 사람에게 보이려 기도하는 자들과 많은 말로 들으심을 얻으려 하는 이방인을 경고하셨기에, 이 기도는 은밀한 가운데 아버지께 의지하는 마음을 형성하는 본보기입니다.

기도문 자체는 경배(‘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순종(‘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매일의 의존(‘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관계 속 용서(‘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영적 보호(‘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등 기도의 핵심 항목을 담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따라 외는 것 자체는 신실한 신앙 행위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를 주문이 아닌 기도의 우선순위를 훈련하는 것으로 삼습니다.

주기도문을 반복하여 외우는 것을 예수님이 금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전부터 교회 예전에서도 주기도문은 핵심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뒤 맥락에서 예수님이 정죄하시는 것은 외식과 말이 많다고 경배가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자세이므로, 말씀과 실제하는 삶의 일치가 함께 요청됩니다.

배경

마태복음 6:1-18은 산상수훈 가운데 진정한 경건을 다루는 단락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구제, 기도, 금식 세 가지 행위를 다루시며, 사람에게 보임을 구하는 외식자와 은밀한 아버지 앞에 행하는 제자를 대조하십니다. 주기도문은 이 단락에서 기도 부분의 핵심에 자리하며, 공적 수행과 중언부언에 대한 경고 직후에 주어집니다.

14-15절은 주기도문 바로 다음에 이어져 남을 용서하는 구체적 삶과 연결되고, 16-18절은 금식에서도 은밀한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동일한 주제로 돌아옵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거룩한 말의 반복 연습이 아니라, 아버지께 집중하는 진심 어린 내면의 삶을 부르시는 호소 안에 놓여 있습니다.

관련 본문

  • Matthew 6:9 ‘이렇게’(헬라어 houtōs)는 대본을 그대로 옮기라는 뜻이 아니라 패턴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경배, 나라, 양식, 용서, 보호라는 내용과 순서를 제시하십니다.

자주 묻는 질문

주기도문을 그대로 외는 것은 예수님의 중언부언 경고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7절의 경고는 말의 양으로 들으심을 얻으려는 무의미한 반복을 겨냥합니다. 주기도문은 실질을 담은 본을 주신 것이므로, 진심으로 외는 것은 예수님의 본보기와 일치합니다.

예수님은 왜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셨습니까?

복수형 ‘우리’는 제자도가 함께하는 공동체임을 가르칩니다. 기도, 양식, 용서, 보호는 혼자가 아닌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가 함께 구하는 것들입니다.

마태복음 6:13 끝의 영광 부분도 원문에 포함됩니까?

많은 초기 사본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 없으며, 13절 자체의 각주에도 이 점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영광의 문구가 빠져도 본문의 의미는 온전하며, 일부 교회는 후대 추가된 영광 찬양으로 합당하게 포함합니다.

연구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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