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내일 염려 말라와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사이의 긴장과 균형
두 명령은 긴장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입니다. 염려를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이 만들어내는 여백입니다.
답변
겉으로 보면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 6:34)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는 별개의 명령처럼 보입니다—하나는 소극적(염려 그만두라), 다른 하나는 적극적(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므로'와 '이는'으로 둘을 연결하여 이것이 하나의 재정렬된 삶의 논리, 곧 부정의 측면과 긍정의 측면임을 드러내십니다.
음식과 음료, 의복에 대한 불안한 추구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마태복음 6:32), 곧 하늘의 아버지를 모르는 자들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계획이나 노동, 심지어 일용할 양식 자체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오히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태복음 6:11)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문제는 마음의 불안한 지향입니다. 양식이 삶의 중심이 되면 나라를 밀어내지만, 나라가 먼저이면 양식은 '더해'집니다.
따라서 균형은 노력 대 안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재지향(再指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최우선 추구로 삼으면, 그 중심에서부터 일용할 필요는 불안에 삼켜지지 않고 받아들여집니다. 염려는 억지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무엇인가가 마음의 왕좌를 차지함으로써 밀려납니다.
배경
마태복음 6:25-34는 산상수훈의 나라 의에 관한 부분을 마무리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앞에서 두 주인—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마태복음 6:24)고 하셨고, 땅에 보물을 쌓지 말라(마태복음 6:19-21)고 가르치셨습니다. 눈은 '성하여야'(마태복음 6:22-23), 곧 충성이 나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나뉘지 않은 충성에서 이 본문이 말하는 염려로부터의 자유가 흘러나옵니다.
이 단위는 예시(새, 백합화)에서 논증(염려로 키를 더할 수 없다)로, 다시 명령(먼저 구하라), 그리고 요약(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으로 진행됩니다. 일용할 양식은 여전히 구하되, 삶의 조직적 목표로 추구되지는 않습니다.
관련 본문
- Matthew 6:25 이 구절은 본문의 경첩입니다. '그러므로'는 하나님과 재물 사이의 분열된 충성에 대한 경고(마태복음 6:24)를 염려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부르심과 연결합니다. 생명이 음식보다, 몸이 의복보다 귀하다 선포함으로써—더 큰 것을 주신 분이 작은 것을 반드시 주실 것이라는 논증이 준비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내일 염려하지 말라'는 그리스도인이 계획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기도하시도록 가르치셨고, 일상적 노동과 양비를 전제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불안한 집착, 곧 양식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다루는 태도를 겨냥한 것이지, 계획이라는 행위 자체를 금한 것은 아닙니다.
나라를 구하는 것이 어떻게 사람으로 하여금 염려에서 자유롭게 하나요?
불안한 염려는 유한한 필요가 마음속에서 무한한 자리를 차지할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최우선 추구가 되면, 필요는 부정도 우상화되지 않고,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는 아버지(마태복음 6:32)께 맡겨집니다.
'먼저 구하라'는 명령은 일을 그만두라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새는 심지도 거두지도 않으나, 예수님은 그 새를 제자로서의 직업 강령이 아니라 신뢰의 예시로 사용하셨습니다. 요점은 충성에 있습니다. 나라를 구하는 것이 삶의 방향을 정하면, 보통의 노동은 불안한 자기 양비가 아니라 신뢰의 표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