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어린 사자가 고난 중 이기는 것

고난은 헛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백성이 압박 아래에서 부르짖을 때, 그는 사자 같은 용사를 일으켜서 뜻밖의 위안과 구원을 가져다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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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마카베오상 3:1-20

유다의 초기 승리들 그때 그의 아들 유다, 곧 마카비라 불리는 자가 그의 뒤를 이어 사령관이 되었다. 그의 모든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를 따랐던 모든 사람이 그를 도왔으며, 그들은 기꺼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다. 그가 자기 백성의 영광을 넓혔다. 거인처럼 그는 흉갑을 입었으며, 전쟁의 갑옷을 띠고 칼로 군대를 보호하며 전투를 벌였다. 그의 행위가 사자와 같으니, 사자의 새끼가 먹이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것과 같았다. 그가 불법한 자들을 찾아 추적하였으며, 그의 백성을 괴롭힌 자들을 불태웠다. 불법한 자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섰고, 모든 악행자들은 당황했으며, 구원이 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가 많은 왕들을 분노하게 하였으나, 그의 행위로 야곱을 기쁘게 하였으며, 그의 기억은 영원히 복되다. 그가 유다의 성읍들을 두루 다니었으며,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그 땅에서 멸하였으니, 이같이 하여 그가 이스라엘에서 진노를 돌이키게 하였다. 그의 명성이 땅 끝까지 알려졌으며, 멸망하는 자들을 모았다. 그러나 아볼로니우스가 이방인들과 사마리아로부터 온 대규모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과 싸우게 하였다. 유다가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그를 맞으러 나갔으며, 그를 무찔러 죽였다.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고 쓰러졌으며, 나머지는 도망쳤다. 그러자 그들이 그들의 전리품을 잡았으며, 유다는 아볼로니우스의 칼을 빼앗아 그의 남은 생애 동안 전투에서 사용하였다. 이제 시리아 군대의 사령관인 세론이 유다가 충성스러운 무리들과 함께 대규모 집단을 모아 전투를 나가며 그와 함께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말하였다, "내가 내 이름을 높이며 왕국에서 영예를 얻으리라. 내가 왕의 명령을 업신여기는 유다와 그의 동료들에게 전쟁을 일으키리라." 그리고 다시 불법한 자들의 강력한 군대가 그와 함께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도왔다. 그가 벳호론의 고갯길에 접근하였을 때, 유다는 소수의 무리를 이끌고 그를 맞으러 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들을 맞으러 오는 군대를 보았을 때, 그들이 유다에게 말하였다, "우리같이 적은 무리가 어찌 이처럼 많고 강한 무리와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기에 기력이 쇠하였습니다." 유다가 대답하였다,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둘러싸이는 것은 쉬운 일이라, 하늘의 눈에는 많은 자로 구원하나 적은 자로 구원하나 차이가 없음이라. 전투에서의 승리는 군대의 규모에 달린 것이 아니라, 힘은 하늘로부터 옵니다. 그들이 큰 교만과 불법으로 우리와 우리 아내들과 우리 자녀들을 멸하고 우리를 약탈하려고 우리를 치러 왔으나, 우리는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법을 위해 싸웁니다. 그가 친히 우리 앞에서 그들을 무찌르실 것이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가 말을 마치고 나서, 그가 갑자기 세론과 그의 군대에게 돌진하니, 그들이 그의 앞에서 무찔렸다. 그들이 벳호론의 비탈에서 평지까지 그들을 추격하였으니, 팔백 명이 쓰러졌고, 나머지는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공포가 그들 주위의 이방인들에게 내렸다. 그의 명성이 왕에게까지 닿았으며, 이방인들이 유다의 전투들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안티오쿠스의 정책 안티오쿠스 왕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크게 노하였으며, 그가 사람을 보내어 그의 왕국의 모든 군대, 곧 매우 강력한 군대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그가 보물고를 열어 그의 군대에게 1년 치의 봉급을 주었으며, 어떠한 필요에도 대비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가 국고의 돈이 바닥났음을 보았으며, 그 나라의 수입이 적음을 알았으니, 이는 그가 옛부터 있던 법들을 폐지함으로써 땅에 분쟁과 재앙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가 그의 비용과 이전 왕들보다 더 후하게 주던 선물에 이전과 같은 자금이 없을지 모른다고 두려워하였다. 그가 크게 마음이 혼란스러워하였으며, 페르시아로 가서 그 지역들로부터 수입을 거두어 큰 기금을 마련하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왕의 일들을 유브라데스 강에서 이집트의 경계까지 맡아 관리할 왕실 가문 출신의 저명한 사람인 리시아스를 남겨 두었다. 리시아스는 또한 안티오쿠스가 돌아올 때까지 그의 아들 안티오쿠스를 돌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가 군대의 절반과 코끼리를 리시아스에게 넘겨주었으며, 그가 원하는 모든 것에 대해 명령을 내렸다. 유대와 예루살렘의 주민들에 대하여, 리시아스는 이스라엘의 힘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을 없애고 멸하기 위해 그들에게 군대를 보내야 하였으며, 그곳에서 그들의 기억을 지우고, 그들의 온 영토에 이방 사람을 정착시키며, 그들의 땅을 나누어 주어야 하였다. 그러자 왕이 그의 군대의 나머지 절반을 가지고 그의 수도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하였으니, 백 사십칠 년째였다. 그가 유브라데스 강을 건너 윗 지방들을 지나갔다. 전투 준비 리시아스가 왕의 벗들 중 용사인 돌리메네의 아들 프톨레마이와 니카노르와 고르기아스를 택하였으며, 왕이 명령한 대로 유다의 땅으로 가서 그것을 멸하기 위해 사만 보병과 칠천 기병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의 온 군대를 이끌고 출발하였으며, 그들이 도착하였을 때 그들이 평지의 엠마우스 근처에 진을 쳤다. 그 지역의 상인들이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그들이 많은 양의 은과 금을 가져갔으니, a

마카베오 상권 3:1–20은 마타티아스가 죽은 뒤 유다 마카베오가 일어나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압도적인 이방 세력에 맞서 작은 굶주린 무리를 이끌며, 유다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야기한 고난에 신앙이 어떻게 맞서는지를 보여주고 그의 고난받는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안을 가리킵니다.

Narration

역사적 배경

1 마카베오서는 유대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기원전 175–164년) 통치下的 셀레우코스 왕조의 박해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졌고, 할례는 금지되었으며, 율법은 불태워졌고, 경건한 유대인들은 배교와 순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했다. 맛다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들은 산간 지역에서 게릴라 봉기를 일으켰으나, 맛다티아스가 죽자(1 마카베오서 2:49–70), 그의 셋째 아들 유다에게 책임이 넘어졌고, 그는 '마카베오'(아마도 '망치'라는 뜻)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3장에서 유다의 첫 번째 전투가 지휘관으로서 기록된다: 그는 형제들과 충신들 사이의 충성심을 공고히 하고, 무법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며,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휘관 아폴로니우스를 물리치고 그에게서 칼을 빼앗으며, 그 후 벳 호론의 고갯길에서 더 큰 규모의 세론의 군대와 대면한다. 이 장면은 이 책의 핵심 드라마—굶주리지만 신실한 작은 남은 자들이 자신감 있고 잘 보급된 제국에 맞서는 장면—을 설정하기 때문에 결정적이다. 이 본문을 읽는 기독교인들에게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을 방어하고 이스라엘로부터 진노를 돌이키는 데 사용하시는 값비싼 고난 받는 leadership의 예언적 유형(typological figure)으로서 기능한다.

때와 장소에서

선지자 시대와 유배 시대 동안, 다윗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지역은 외국 열강의 통치 하에 고통을 겪었으며, 이는 마카보기 1권과 정경 외 지혜 문학에 반영되어 있다.

본문의 의미와 해석

이 구절은 문학적 경첩(hinge)과 같다. 1–9절은 유다의 성품을 찬송처럼 요약한다. 그는 갑옷을 입은 거인, 먹이를 향해 포효하는 사자, '멸망하는 자들'의 자석으로 묘사된다. '멸망하는 자들'이라는 히브리식 표현은 약한 자들, 흩어진 자들, 취약한 자들, 애통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고난받는 자들을 위해 누군가가 싸워줄 때 위로가 도래한다. 10–12절은 아폴로니오스의 패배를 서술하며, 그 뒤에 유다는 유명하게도 그 사령관의 칼을 취하는데—'그리고 남은 평생 전투에서 그것을 사용하였다.' 이 세부 사항은 우연이 아니다. 교만한 자의 무기가 고난받는 자들의 방어를 위해 거룩하게 바쳐질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이 조용히 말하는 방식이다. 13–20절은 그때 독자를 벳호론 앞의 무시무시한 순간으로 끌어들인다. 세론의 자랑은 적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을 위해 이름을 원하며 '왕의 명령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복수를 원한다. 유다의 적들이 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충성하기 때문이다. 이 본문에서 고난은 무작위가 아니다—それは忠誠의 대가이다; 그러므로 위로는 추상적이지 않다—항복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가시적인 승리이다. 사자 같은 용기(1–9절)와 기진맥진한 굶주린 군대(17절)의 병치는 이 장의 신학적 구조이다. 하나님의 위로는 자주 그의 백성의 연약한 인간성에 입혀서 도래한다.

오늘의 적용

첫째, 신실함의 실제적인 대가로 고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 세론의 군대는 유대인들이 정치적으로 시끄럽기 때문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유다의 백성이 '왕의 명령을 업신여겼기'—언약의 삶을 포기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동원되었다. 우리가 순응하도록 압력을 받는 자리—직장에서의 타협, 가족 간의 다툼, 양심을 조용히 훼손하는 일—그것에 굽히지 않는 작은 순교 자체가 마카베오적 고난의 한 형태이다. 둘째, '멸망하는 자들을 모아들이는 자'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것을 기대하라. 하나님은慰藉를 설교와 찬양에만 맡기시지 않는다. He는 친구, 멘토, 옹호자를 일으키시며, 때로 회의席上의 단 한 사람의 용감한 목소리를 일으키신다. 그 '모아들이는 자'가 되기를 자원하라. 셋째, 적의 칼을 취하는 그 기이한 디테일을 본받으라. 한때 당신을 억압했던 바로 그 도구들—두려움, 실패, 과거—하나님께 맡겨진다면 왕국 전쟁을 위해 재용도될 수 있다. 넷째, 숫자가 결과를 결정한다는 논리를 거부하라. 마카베오들은 '소수'이고 '기력이 약했으나' 그럼에도 나아가졌다. 우리는 지표를 숭배하는 시대에 살지만, 이 본문은 신적인 산수가 여전히 인간적인 산수와 다름을 강하게 주장한다. 다섯째,领导할 때 자기를 세우는 유명 인사가 아니라, host를 보호하는 자로서领导하라. 1절에 유다가 '그 칼로 host를 보호했다'고 한다. 사자가 포효함은 맞으나, 그 포효는 양떼를 위한 것이다. 기독교적领导은 다친 양들을 섬기는 사자 같은 용기이다.

되새김

잠시 이 이미지와 함께 머물러 보라. 한 젊은 남자, 아마 겨우 서른, 훨씬 더 거대한 군대를 향해 걸어 나간다. 유다의 산들 사이에는 돼지고기를 먹기를 거부하는 어머니들, 촛불 아래 두루마리를 읽는 장로들, 그리고 단 한 번도 깨끗한 제단을 본 적 없는 아이들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배는 비어 있다. 그의 형제들은 지쳐 있다. 그는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있는 무언가가 안다. 그의 고난이 마지막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백성의 고난이 마지막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왜냐하면 하나님은 많은 이를 지키기 위해 몇을 선택하시는 습관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장의 위로(慰勞)는 전쟁의 부재도, 두려움의 부정도 아니다. 그것은 고린도후서 1장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받는 모든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로써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고후 1:4) 하나님의 현존이다. 벳호론에서의 유다의 승리는 그 긴 이야기의 한 장이다. 떨리는 손을 잡아주는 호스피스 간호사, 목소리 없는 이를 위해 말해주는 옹호자, 힘든 아이를 위해 밤새 기도하는 부모는 누구나 같은 벳호론의 오르막길을 걷는다. 주님은 당신이 결코疲れない다고 약속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자의 포효가 원수의 허세보다 더 크다고 약속하시며, 그의 막대기와 그의 지팡이가 당신을 위로하신다.

자주 묻는 질문

왜 본문은 적고 굶주린 군대를 이끌고 있는 유다를 사자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사자의 용감함과 같은 그 담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숫자나 자원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 받는 위안은 흔히 연약한 그릇을 통해 나타납니다. 이는 신적인 힘이 연약함 속에서 완전히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카베오의 고난이 새 성경의 고난 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카베오 반란은 영적 법칙을 드러냅니다. 곧, 신실함은 고난의 값을 요구하며, 하나님 친히 시험 중에 위안자로 행하십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1장의 '고난과 위로' 신학과 직접 일치하며, 마카베오 백부장은 히브리서 11장의 신앙의 영웅들 가운데 서게 합니다.

유다가 아폴로니우스의 칼을 취하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 세부 사항은 적의 무기를 취하여 거룩한 전쟁을 위해 다시 봉헌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과거 상처, 두려움, 혹은 실패도 또한 하나님에 의해 재형성되어 그의 백성을 방어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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