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부르심

체돌라오머의 쫓는 자로부터 소명의 수호자로: 아브람의 사명 깨달음

혼란스러운 4대5 전쟁 속에서 한 patriarch가 부르심을 듣고 검을 들어 자신은 상상하지도 못한 길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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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창세기 14:1-20

Now, when King Amraphel of Shinar, King Arioch of Ellasar, King Chedorlaomer of Elam, and King Tidal of Goiim made war on King Bera of Sodom, King Birsha of Gomorrah, King Shinab of Admah, King Shemeber of Zeboiim, and the king of Bela, which is Zoar, all the latter joined forces at the Valley of Siddim, now the Dead Sea. Twelve years they served Chedorlaomer, and in the thirteenth year they rebelled. In the fourteenth year Chedorlaomer and the kings who were with him came and defeated the Rephaim at Ashteroth-karnaim, the Zuzim at Ham, the Emim at Shaveh-kiriathaim, and the Horites in their hill country of Seir as far as El-paran, which is by the wilderness. On their way back they came to En-mishpat, which is Kadesh, and subdued all the territory of the Amalekites, and also the Amorites who dwelt in Hazazon-tamar. Then the king of Sodom, the king of Gomorrah, the king of Admah, the king of Zeboiim, and the king of Bela, which is Zoar, went forth and engaged them in battle in the Valley of Siddim: King Chedorlaomer of Elam, King Tidal of Goiim, King Amraphel of Shinar, and King Arioch of Ellasar—four kings against those five. Now the Valley of Siddim was dotted with bitumen pits; and the kings of Sodom and Gomorrah, in their flight, threw themselves into them, while the rest escaped to the hill country. [The invaders] seized all the wealth of Sodom and Gomorrah and all their provisions, and went their way. They also took Lot, the son of Abram’s brother, and his possessions, and departed; for he had settled in Sodom. A fugitive brought the news to Abram the Hebrew, who was dwelling at the terebinths of Mamre the Amorite, kinsman of Eshkol and Aner, these being Abram’s allies. When Abram heard that his kinsman had been taken captive, he mustered his retainers, uncertain. born into his household, numbering three hundred and eighteen, and went in pursuit as far as Dan. At night, he and his servants deployed against them and defeated them; and he pursued them as far as Hobah, which is north of Damascus. He brought back all the possessions; he also brought back his kinsman Lot and his possessions, and the women and the rest of the people. When he returned from defeating Chedorlaomer and the kings with him, the king of Sodom came out to meet him in the Valley of Shaveh, which is the Valley of the King. And King Melchizedek of Salem brought out bread and wine; he was a priest of God Most High.. He blessed him, saying,“Blessed be Abram of God Most High,Creator of heaven and earth. And blessed be God Most High,Who has delivered your foes into your hand.”And [Abram] gave him a tenth of everything. Then the king of Sodom said to Abram, “Give me the persons, and take the possessions for yourself.” But Abram said to the king of Sodom, “I swear to the ETERNAL, God Most High, Creator of heaven and earth: I will not take so much as a thread or a sandal strap of what is yours; you shall not say, ‘It is I who made Abram rich.’ For me, nothing but what my servants have used up; as for the share of those who went with me—Aner, Eshkol, and Mamre—let them take their share.”

Genesis 14:1–20 records the only battle in Abram's life — a campaign he did not seek, but entered because his calling required it. Verse 14 is the hinge: 'When Abram heard that his kinsman had been taken captive, he mustered his retainers… and went in pursuit.' Calling is often clarified not in sanctuary moments but in the emergency of loving a neighbor.

Narration

역사적 배경: 시딤 골짜기에서의 네 왕 대 다섯 왕의 싸움

창세기 14장은 현대 독자 거의 대부분이 현대 지도 위에 정확히 표시할 수 없는 지정학적 상황으로 시작하지만, 그 행위자들은 실제로 존재한 인물들이다. 엘람의 그돌라옴르는 명백히 가장 상위의 군주처럼 보인다; 시날의 암라벨(시날은 오랫동안 바벨론과 연관되어 온 지역)과 엘라살의 아리옥, 고임의 디달은 그의 동맹 파트너들이다. 이들은 12년 종주 관계의 14년目に 요르단 단층을 따라 진군하여, 레바임, 숫인, 에민, 세일의 호리인, 그리고 아말렉 사람을 치고, 이어서 싯딤 골짜기 -- 훗날 사해의 남부 분지로 기억되게 될 곳 -- 로 내려갔다. 요르단 평지 -- 소돔, 고모라, 아들라, 스보임, 그리고 벨라(소아) -- 의 다섯 왕은 13년째에 반란을 일으켰고, 지금은 그 골짜기의 역청 웅덩이에서 짓눌려 있다. 침략자들은 그 성읍들의 재물을 빼앗고, 거의 부수적인 일로 '소돔에 정착해 있던' 롯을 사로잡아 갔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셨던 더 이전의 부르심(창 12장)과 '땅의 티끌 같이' 될 후손에 관한 아직 장차 이루어질 약속(창 13:16)을 해석해야 하는 정치적 배경이다. 아들도 없고, 땅의 증서도 없고, 318명의 훈련된 -- 대부분 그의 진영에서 태어난 종들일 것이지 정규 군대는 아닌 -- 식구를 가진 한 남자가, 그의 형제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반응한다. 그가 군대를 단까지 북쪽으로 추격하고, 밤에 습격하여, '모든 소유물'과 '그의 형제 롯'을 여자들과 사람들과 함께 되찾는다(창 14:16). 이어서 그 장은 살렘 왕 멜기섹과의 만남과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사실을 기록한다 -- 이 표시들은 그의 남은 인생을 형성할 것이다. 우리에 관한 묵상적 목적으로서, 이 장은 아브람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사명 -- 언약 형제에 대한 언약 사랑에 의해 강제로 짊어지게 된 사명 -- 으로 첫 발을 내딛은 기록된 최초의 경우로서 기능한다.

지상으로: 유다 산간에서 밤의 엄폐 아래 단까지

성전 시대에 배경한 이 묵상은 세겜, 헤브론, 모압 평야, 그리고 여리고의 족장적 풍경을 횡단한다—이는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이 드러난 조상적 무대들이다.

텍스트의 의미: 자기 자신을 초월한 부르심의 확장

표면적 서사 아래에는 세 겹의 의미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 부르심은 안락이 위기가 아니라 환난을 통해 분명해진다. 이 장에 이르기까지 아브람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는 부르심을 받았고, 기근을 겪었고, 이집트에서 사래에 관해 거짓말을 했으며, 로트와 헤어졌고, 믿음으로 그 땅을 걸었지만 — 구원자로서의 그의 소명에 있어서는 아직 시험을 받지 못했다. 창세기 14장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직 그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을 제기한다. 곧, 네 형제의 타락이 네 형제의 포로가 될 때, 행하겠느냐? 14절의 히브리어는 striking하다. "아브람이 그의 형제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자기 집에서 태어난 자기 훈련된 남자들 삼백십팔 명을 쏟아냈다." 동사 wayyarek("그가 쏟아냈다")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약속의 사람이 언약 형제의 환난에 자신의 가정을 비워냄으로 응답한다. 부르심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이러하다. 자원을 보존하지 않는다. 그것을 배치한다. 둘째, 부르심은 항상 승진이 아니다. 때로는 회복이다. 아브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는 뒤로 돌아간다. 그는 자기가 만들지 않은 원수들을, 앞서 자기에게서 갈라져 나갔던 친척을 위해 뒤쫓는다(창 13:11). 그는 성공의 보장이 없다. 이야기자는 그가 군사를 모으기 전에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는다. 그는 단지 행한다. 본문은 후에 이것을 존중할 것이다. 히브리서 7장, 시편 110편, 그리고 랍비 전통은 모두 이 에피소드를, 아직 이름이 '아브람'인(창 17장에서 아직 '아브라함'으로 개명되지 않은) 사람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축복을 베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순간으로 반영할 것이다(창 12:3). 모든 민족에 대한 그의 축복은 한 사촌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셋째, 부르심은 두 제단으로 형성된다. 전쟁 후 아브람은 평지에서 두 왕을 만난.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져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소유자"의 이름으로 그를 축복한다(창 14:19-20). 소돔의 왕은 사악한 도시의 재물을 그에게 제안한다. 아브람은 소돔의 재물과 감사 모두를 거부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소유자"께 손을 들며,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다. 신학적 의미는 이렇다. 부르심을 받은 삶은 "이 세상의 군주"(요한적 관용구의 후기 표현)가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소유자 하나님"에 의해 그 방위를 정한다. 사명이 소유자로서 하나님에 의해 형성될 때, 어떤 사람의 후원을 통해 형성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이것만이 부르심을 가진 사람이 지속할 수 있는 길이다. 로트는 소돔이 "各处에 물이 잘 공급되는 땅"(창 13:10)을 제공했기 때문에 소돔 쪽으로 옮겨 갔다. 아브람은 바로 그 같은 골짜기에서 소돔의 보상을 거부한다. 같은 지리, 반대 방향.

적용: 아무도 당신을 초대하지 않은 곳에서 당신의 사명을 찾으라

이 장이 오늘날의 목적과 소명에 관한 질문에 어떻게 다가서는가? 네 가지 실천적 확신이 드러난다. 1) 자신의 '롯'을 점검하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롯'이 있다 — 그것은 관계, 직업, 습관일 수 있는데, 그 타협이 우리를 점차 우리가 절대 신뢰해서는 안 될 왕들의 도시 쪽으로 끌어당긴다. 창세기 14장은 우리들의 소명이 그 소명이 주어진 사람들과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가정하도록 두지 않는다. 아브람은 후손의 약속을 고립 속에서 이룰 수 없었다; 그에게는 곧 자신의 시험이 될 타협을 하고 있던 형제가 있었다. '나의 소명이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고 '나의 소명이 나를 누군가에 책임지게 만들었는가?'라고 묻지 않는 것은 복음을 길들인 버전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끌려가고 있음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에, 종종 소명을 분명히 밝혀주실 것이다. 2)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몰랐던 예비력을 배치할 의지를 갖라. 318이라는 수는 이상한 수이다 — 표준 군대 규모로는 깔끔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랍비들은 후에 이것이 아브람의 집사장 엘리에셀의 수치적 가치라고 보았으며, 이는 아브람이 자기가 가진 것을 헤아려 보니 간신히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음을 시사한다. 많은 제자들이 더 많은 돈, 더 많은 훈련, 더 많은 확실성, 더 많은 합의를 기다리기 때문에 순종을 미룬다. 창세기 14장은 우리가 가진 것을 세어보고, 그것을 다 쏟아내고, 전진하라고 제안한다. 3) 야간에 분열을 통해 싸우라. 동사 וַיִּחָלֵק("그들을 향해 진을 치다")는 힘을 분할한다는 뜻의 단어이며, 승리는 아브람이 전체 연합을 정면으로 맞붙었을 때가 아니라, 적이 흩어졌을 때 찾아온다. 현대의 소명은 단일한 극적인 전투에서 무너지기보다는 닳아서 무너지는 경우가 드물다. 전략, 노동의 분업, 안식, 기습이 모두 중요하다. 믿음은 계획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大胆한 계획의 기초이다. 4) 승리 후에 당신의 왕을 선택하라. 모든 소명의 순간에는 메칠세덱과 소돔의 왕이 있어 우리의 결과를 규정해주려 한다. 메칠세덱은 빵과 포도주와 소유자의 이름으로 축복을 제공한다; 소돔의 왕은 자신을 영화롭게 할 이야기를 대가로 재물을 제공한다. 예수님의 제자는 빵과 포도주를 취하고, 증언을 바꿀 보상을 거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많은 사역이 일꾼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왕에게 자신의 성공을 쓰게 내버려둬서 잃어버렸다.

기도와 묵상

주님, 당신은 우리가 미리 정해놓을 수 없는 길들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브람이 땅으로 부름받았을 때, 당신은 그 부르심을 쫓김 가운데, 전쟁 가운데, 떡과 포도주의 만남 가운데, 그리고 거절 가운데 다듬으셨습니다. 우리 목적은 우리가 짜놓은 직업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가 아직 들어가야 할 나라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옵소서. 형제의 어려움을 들을 때, 합당한 응답이 그 어려움이 우리의 계획에 맞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부어낼 수 있는지 묻는 것임을 가르쳐 주옵소서. 밤의 가림막 아래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옵시고, 우리 원수들이 얼마나 흩어지는지에 놀라게 하옵소서. 그리고 싸움에서 돌아올 때, 왕의 떡을 거절하고 제사장의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은혜를 주옵소서. 이는 우리 삶의 이야기가 하늘과 땅의 소유자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로 영원히 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께 속하게 함이니이다. 아멘.

자주 묻는 질문

Was Abram only 'incidentally' rescuing his nephew?

Not incidentally. Genesis 14:14 uses the strong Hebrew verb wayyarek ('he emptied out / drew out') to describe him mustering his 318 household-born retainers. Abram poured out everything he had available; this was his response to a covenant family relationship, and the extension of his calling under pressure.

What does this have to do with a Christian's 'life direction / calling' today?

Genesis 14 shows that calling is often clarified not in quiet visions but in a neighbor's crisis. Abram did not wait for a new word; he heard the original call (go, inherit land, become a blessing) being extended into a situation that demanded action.

Why did Abram refuse the king of Sodom's reward?

Because he would not let anyone say 'the king of Sodom made Abram rich.' Abram had already lifted his hand to 'God Most High, possessor of heaven and earth' before Melchizedek; his wealth and service both flowed from that. Any reward from an unrighteous king would distort his wit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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