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무너진 성벽과 고요한 승리: 고난 속의 참된 위로

우리의 거짓 피난처가 무너질 때, 그 부서짐은 아픔을 가져오나 — 그러나 하나님은 고요함과 신뢰가 참된 승리임을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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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이사야 30:1-20

아, 배신한 자식들이여!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나의 뜻 거스리고 계획을 세우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도모하여 죄 위에 죄를 더하도다 — 이집트로 내려가려 하고 나의 묻지 아니한 자들로다, 바로에게 피난처를 구하며 이집트의 그늘 아래 숨기를 힘쓰도다. 바로의 그늘이 너희 수치가 될 것이요 이집트의 그늘 아래 숨은 것이 너희 치욕이 되리라. 그의 관리들이 소안(Zoan)에 있다 할지라도 그의 사신들이 하네스(Hanes)까지 이른다 할지라도 그들이 다 수치를 당하리라 이는 그 백성이 너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함이라 아무 도움과 유익이 되지 못하고 다만 수치와 치욕만 끼치리라. “네경의 짐승들” 예고(예언)라. 환난과 고통의 땅에서, 사자와 부르짖는 큰 짐승의 땅에서, 독사와 나는 불뱀의 땅에서 그들이 나귀 등에 그 재물을 실어 나르며 약대 둔덕에 보물을 싣고 무익한 백성에게로 가느니라. 이집트의 도움이 헛되고 공허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이름을 부르노라 “그들이 이미 그친 위엄이라.” 이제 가서 탁자에 그것을 기록하고 문서에 새기라 이는 장래의 날에 그들과 함께 증거가 되게 하려 함이라 영원히(아담 ʿed의 변형으로, Targum 참조) 이는 반역하는 백성이요 신실하지 못한 자녀, 여호와의 가르침을 듣기를 거절한 자들이기 때문이니라. 선지자를 보고 “보지 말라” 예언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진리를 예언하지 말라 거짓된 것을 우리에게 말하라 미혹된 것을 예언하라 너희는 길을 버리라 그 길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 대하여 다시는 우리에게 말하지 말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거족한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씀을 버리고 속이며 사곡한 것을 의지하며 신뢰하였도다 — 그러므로 너희의 이 죄악이 높은 담에 생기는 갈라진 틈 같이 되리니 그 무너짐이 갑자기 오리라. 이는 토기장이를 토기 그릇을 부숨 같이 부서지리니 잔인하게 파쇄되어 그 부서진 조각 중에 불전에서 숯을 뜨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푸는 것은 남지 아니하리라. 이는 내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지함과 안식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고요함과 신뢰함으로 너희의 힘이 되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듣기를 거절하여 도리어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위에서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반드시 도망할 것이요 “빠른 말 위에서 달리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가 더 빠르리라. 한 사람의 외침 소리에 너희가 천 명 앞에서 도망하되 다섯의 외침 소리에 너희가 도망할 것이니 너희의 남은 자가 산 꼭대기의 깃대 같으며 산 위의 기둥 같으리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너희를 은혜롭게 하시기를 기다리시나니 일어나 너희를 용서하시기를 기다리시나라 이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기다리는 모든 자가 복이 있도다. 시온에 사는 백성아,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가 울 일이 없으리니 너희 부르짖는 소리에 은혜를 베푸시리니 듣는 즉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나의 주가 너희에게 적은 떡과 적은 물을 주시리라. 그러나 너희의 인도자가 다시는 숨기시지 아니하리니 너희의 눈이 너희의 인도자를 볼 것이요 너희가 좌우로 돌이킬 때에 너희의 귀가 뒤에서부터 “이것이正道니 이로 따라라” 하는 말을 들으리라. 너희가 너희 드림은 은판과 우상의 금박을 더러운 것 같이 여겨 그것을 던지리니 마치 월경 중에 있는 여자가 “꺼져라” 함 같이 하리라. 너희가 땅에 뿌리는 씨에 비를 주시리니 땅에서 생기는 곡식이 기름지고 풍성하리라. 그 날에 너희 가축이 넓은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 가는 소와 나귀는 키와 부삽질로 까부른 짠 꼴을 먹으리라. 모든 높은 산과 모든 높은 언덕에는 개울과 물줄기가 생기리니 큰 살육의 날과 망대가 무너진 날에 그리하리라. 달의 빛이 해의 빛 같이 되며 해의 빛이 일곱 배로 더하여 여호와께서 이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의 일곱 날의 빛 같으리라. 보라, 여호와의 장엄한 위엄이 먼 곳에서부터 오리니 맹렬한 진노와 무거운 위엄, 진노가 가득한 입술과 삼키는 불 같은 혀와 폭포의 범람 같은 그 호흡이 목의 반까지 이르러 열방에 미혹하는 명에와 백성의 턱에 미혹하는 재갈을 채우시리라. 너희에게는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의 노래가 있으리니 제 축제로 즐거워하되 피리와 소고와 수금으로 하나님의 산 이스라엘의 반석 앞에 나아가듯 하리라. 여호와께서 위엄 있는 음성을 내시며 그 팔의 능력을 보이시리니 맹렬한 진노와 삼키는 불꽃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그리하실 것이며. 홀로 홀로 아시리아의 채찍이 여호와의 목소리에 인하여 넘어질 것이요 매번 약속된 몽둥이가 지나갈 때마다 여호와께서 그 위에 팔을 내리시리니 그가 흔드는 것을 보시며 그와 싸우시리라. 도벳(Topheth)이 이미 옛부터 그를 위하여 예비되었나니 그도 므렉(Melech)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그 화로가 넓고 깊게 만들었으며 불과 나무가 많고 여호와의 숨결이 유황의 시내 같이 그 가운데서 피어오르도다.

이사야 30장 1–20절은 이집트에 피난처를 구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가 아니라 이집트 안에서 안식을 구하고 있다. 선지자는 거짓 확신의 담장이 긍휼 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같은 장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 해결책을 제시하신다: "너희의 강함은 고요함과 신뢰함에 있을 것이다." 고난에서 위로로의 궤적은 회개와 안식을 통해 지나간다.

Narration

역사적 배경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 후반, 제1성전 시대 예루살렘과 그 주변에서, 사르곤 2세와 산헤립이 이끄는 앗시리아 제국이 유다를 강하게 압박하던 시기에 예언했다. 이사야 30장은 ‘앗시리아 묵시록’ 혹은 ‘임마누엘의 책’으로 흔히 불리는 section(28–33장) 안에 속한다. 기원전 701년, 산헤립의 랍사게가 예루살렘 밖에서 도시를 조롱하고 서 있을 때, 유다 관리들의 사절단이 실제로 남서쪽으로 나일 삼각주로 가서 파라오와 군사 동맹을 맺으려 했다. 소안(성경의 타니스)과 하네스(고대 헤라클레오폴리스, 이집트 중심부에 위치)는 그 외교 길 위에 실제로 있던 정거지였다. 이사야는 이 사절단을 책망한다. 그것은 여호와의 조언을 우회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이집트에게 구했기 때문이다. ‘네겝의 짐승들’ 예언은 대상들이 건너야 했던 위험한 사막 도로—사자들과 살무사, 그리고 전설적인 날아다니는 뱀(히브리어 ‘사라프’)—을 묘사하며, 결국 헛된 피난처에 이르는 모습을 그린다. 이 정치적 위기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법정식 고발을 선포하신다: 미래 세대가 영원한 증인으로 읽을 수 있도록 그 고발을 판 위에 기록하라(8절). 그 다음 장은 15–18절에서 하나님 목자의 초대로 전환된다: “너희가 돌아와서 안식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요, 고요히 하고 신뢰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 되리라.” 그러나 백성의 거절로 인해 주님은 ‘잠깐’ 동안 그 얼굴을 숨기시며,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자비가 넘쳐흐를 때까지 그러하시다. 탈무드에 보존된 유대 전통은 이사야의 책망—즉 ‘산헤드린 90b’—을 이 본문과 함께 기록했는데, 이는 선지자가 유사술을 정치적 반역과 동급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의 『고대사』 10.1.4에 있는 평행 본문은 히스기야가 이사야의 권고를 거부하고 이집트 동맹에 잘못된 신뢰를 둔 것을 묘사하는데, 이는 정확히 이사야 30장이 정죄하는 상황이다.

시공간 그림

첫 번째 성전 시대의 예루살렘, 다윗 왕조 아래에서 이스라엘이 언약적 배신과 다가오는 망명의 그늘 속에서 고통에 맞서 싸우던 시기에 setting하다.

구절의 의미

이사야 30장은 고난과 위로를 하나의 신적 대화로 구성한다. 첫째, 고발(1–11절)이다. 백성은 'disloyal children'(신실치 아니한 자들, 히브리어 bagadim, 언약을 파기한 자들)이라 불리며 죄 위에 죄를 쌓는다. 세 가지 실패가 지적된다: (1) 하나님의 계시하신 뜻에서 벗어나 계획을 세우며, (2)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에 피난처를 구하며, (3) 진리를 말하는 선지자들의 목소리를 묵살한다. "패역한 자녀들 화 있을진저"라는 반복되는 표현은 반역이 언약의 범죄인 신명기 21:18–21을 연상시킨다. 애굽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has ceased"—히브리어 표현은 멈추거나 무효로 된 것을 내포한다) 따라서 피난처는 무너진다. 둘째, 멸망의 환상(12–14절)이다. '죄악'은 높은 담의 '퍼져가는 균열'(히브리어 shever)로 비유되는데, 이는 석공들이 압력에 따라 벌어지는 갈라진 틈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이다. 붕괴는 '돌연하고 급속하게' 일어나며, 항아리는 남은 조각조차 숯을 퍼내거나 물을 푸는 데 쓸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破碎된다. 완전한 멸망이 곧 비유이다: 거짓된 안전의 어떤 조각도 남지 않는다. 이곳에서 고난은 잘못 놓은 신뢰의 열매이다. 셋째, 위로의 초대(15–18절)이다. 하나님은 두 개의 평행 대구를 제시하신다: '돌아옴과 안식' / '고요함과 신뢰.' 히브리어 dmmah(정적)와 bittahon(신뢰)은 애굽으로 향하는 광란의 외교와 정반대가 된다. 하나님의 compassion(연민)은 'yearns'(갈망하신다, 히브리어 nicham, 어머니의 연민을 일컫는 동일한 단어, 이사야 49:15)을 표하며 영원히 억류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신적 연민이 밤 뒤에 반드시 낮이 오는 것처럼 그 뒤를 따른다. 넷째, 목회적 결실(19–20절)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신다; 선생들의 말씀이 다시 들릴 것이다. 고난의 떡과 환난의 물—고난 한가운데에서 주어지는 양식—은 스승 자신이 더 이상 오래 숨겨지지 않으실 표징이 된다. 이사야의 문법 안에서 위로란 고난의 부재가 아니라 그 한가운데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오늘의 적용

1. 자신의 '이집트'를 점검하라. 모든 시대에는 바로(파라오)가 있습니다—재정 시스템, 정치적 동맹, 치료적 체계, 심지어 영적 경험까지—그들이 안식을 약속합니다. 이사야의 첫 적용은 진단적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계획을 세워온' 곳들을 명명하십시오. 고백이 위로의 문입니다. 2. 선지자들을 침묵시키는 것을 멈추라. 사람들은 이사야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예언하지 마라; 거짓된 것을 우리에게 말하라.' 현대 신자들도 자신들의 피드를 curation하여 회개를 피할 때 그렇게 합니다. 친구, 목회자,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성경 한 권이 어려운 말을 하게 하도록 초청하십시오. 때에 들린 진리는 깨지지 않는 벽입니다. 3. 고요함이라는 대척적 훈련을 실천하라. 이사야의 처방은 전략이 아니라 דממה(담마)—분투를 멈추는 것—입니다. 사막 교부들은 그것을 헤시키아(ἡσυχία)라고 불렀고; 종교개혁자들은 그것을 '주를 앙망하는 것'이라 불렀습니다. 말하거나, 계획하거나, 스크롤하기 전에 의도적인 침묵 5분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그 작은 실천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더 큰 신뢰를 예행연습합니다. 4. 고난을 '고난의 떡'으로 읽으라. 19–20절은 역경을 재구성합니다: '저가 너희에게 고난의 떡과 환난의 물을 주시리오마는 네 스승이 다시 숨기시지 아니하시리라.' 고통스러운 섭리는 낭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까이 오시는 스승이 차려 주시는 식사입니다. 위로는 순종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골짜기를 통한 목자의 임재입니다. 5. 간증을 기록하라. 이사야가 후대를 위해 그 말씀을 판에 기록한 것처럼,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서면 기록을 유지하십시오. 미래의 당신 자신과 뒤따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읽고 믿을 것입니다.

되새김

성벽은 우리가 그 음성을 듣기 전에 먼저 금이 간다. 이사야가 위안의 말씀을 하기 훨씬 전에, 헛된 피난처의 성벽은 안으로부터 이미 텅 비어 가고 있었으며, 그 회반죽은 마르고 돌들은 이완되고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로운 순서이시다. 하나님은 흔히 먼저 성벽이 무너지게 하시며, 그리하여 우리가 마침내 돌아설 때, 그것이 더 나은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혀 계획이 없기 때문임을 우리가 알게 하신다. 이사야 30장의 위안은 빠른 수선의 위안이 아니다. 항아리가 산산조각 난 뒤, 티끌 가운데 우리 곁에 앉아서 우리에게 고난의 떡을 — 눈물의 맛도 나지만 임재의 맛도 나는 그 떡을 — 먹이기 시작하시는 선생님의 위안이다. 우리는 우리의 성벽이 다시 쌓아 올리기를 원하시고, 그는 우리 자신이 다시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이집트가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그는 자기가 족함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 고난은 위안에서 빗나간 우회로가 아니라, 위안이 들어오는 문이다. 그리고 그 문은 좁다. 그것은 고요함의 문, 돌아섬의 문, 바라보는 세상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신뢰의 문이다. 그러나 하늘은 그것을 승리로 여기신다. 그러므로 고요히 하며 알라.

자주 묻는 질문

이사는 왜 이집트의 도움을 '무익하다'고 부르는가?

이집트 기병대는 강했으나 그들의 이해관계는 유다와 일치하지 않았고, 이집트 자체도 곧 앗수르에 함락될 처지였다. 이사야의 요점은 오직 여호와만이 참된 피난처이시라는 것이다. 정치적 대안은 결국 이사야 30장 14절의 깨진 질그릇처럼 무너진다.

'정적함과 신뢰'는 실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히브리어 'dmmah'는 '분투하는 것을 멈춤'을 뜻하며, 'bittahon(비타혼)'은 '하나님의 신실함에 뿌리둔 확신'입니다. 이 두 단어는 자력 구제를 멈추고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안식하는 사람, 즉 서두르던 유다 사절들이 거부했던 자세를 가리킵니다(사 30:1–2).

깨어진 질그릇이 어찌 물을 담을 수 있겠는가?

이사야는 깨짐이 철저하여 아무 쓸모 있는 파편도 남지 않는다—불을 숏거나 물을 길으기에 충분한 조각조차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이미지는 거짓 확신의 완전한 멸망을 보여주며, 해결책은 수선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다(사 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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