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고난 중의 위로: 참된 금식과 상한 마음의 소생

呼喊이 들리지 않고 고통이 계속될 때, 이사야 58장은 하나님의 위로가 금식이 아니라 정의의 행위와 긍휼의 손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이사야 58:1-14

큰 소리로 외치라, 숨기지 말고 네 목소리를 나팔 소리 같이 높이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죄를 알려라, 야곱 집에 그들의 허물을 알려라. 그들이 나를 매일 찾고 나의 길을 배우기를 즐기는 것은 사실이다. 의를 행하는 나라 같이, 자기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이 내게 옳은 길을 물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함을 즐거워 하니: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몸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는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너희 사업을 돌보며 모든 노동자를 혹사함이니라! 이는 너희가 분쟁과 다툼 가운데 금식하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까닭이니라! 너희의 금식이 오늘처럼 하여서는 너의 목소리가 높은 곳에 들리게 할 수 없느니라. 내가 원하는 금식이 이것이냐? 사람이 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날이냐? 그것이 갈대 같이 머리를 숙이고 굵은 베와 재에 누워 있음이냐? 너희가 그것을 금식이라 부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날이라 하느냐? 아니, 내가 원하는 금식은 이렇다: 악한 사슬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풀어 주고, (겔 9:9) 억압 받는 자를 자유롭게 보내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니라. 굶주린 자에게 네 떡을 나눠 주며, 가난한 불쌍한 자를 네 집에 들이며, 벌거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네 친척을 외면하지 아니함이니라. 그러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밝게 빛나며, 네 치유가 빨리 돋아나며, 네를 옹호하시는 이가 네 앞서 행하시고, 하나님의 임재가 네 후군이 되시리라. 그때에 네가 부르면 하나님이 응하시며, 네가 부르짖으면 이르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네가 너희 가운데서 멍에와 위협하는 손과 악한 말을 멀리하면, 네가 굶주린 자에게 네 정을 베풀며, 고통 받는 생명을 만족하게 하면, 그때에 네 빛이 어둠 가운데 빛나며, 네 캄캄함이 한낮 같이 되리라. 하나님이 너를 항상 인도하시리라—마른 땅에서 네 갈증을 해소하시며 네 뼈에 힘을 주시리라. 너는 물을 대는 동산 같겠고, 물이 지지 아니하는 샘 같으리라. 너의 가운데서 옛 폐허를 다시 쌓는 자들이 있을 것이요, 너는 오래 전에 놓은 터를 회복하리라. 그리고 너는 "무너진 성벽의 보수자, 거할 거리의 복원자"라 불리리라. 네가 안식일을 밟지 아니하며, 나의 성일에 네 일을 찾아다니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즐거움"이라 하고, 하나님의 성일을 "존귀하다" 하며, 그것을 존귀히 여기며 네 길을 가지 아니하며 너의 일을 찾지 아니하며 거래를 하지 아니하면, 그때에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느니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세우리니, 네가 조상 야곱의 유업을 누리게 하리라—이는 하나님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이사야 58장 1-14절은 흔히 제삼이사야(이사야 56-66장)로 불리는 부분의 절정적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는 경건한 의식을 행하면서 내면으로는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포로 귀환 이후의 공동체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심오한 약속의 문이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고난은 타인을 향해 우리 마음을 부수고 열리는 고난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위안은 바로 그 돌이킴에서 흘러나옵니다.

Narration

역사적 배경

이사야 58장은 바벨론 포로기에서 돌아온 후의 고난의 시기에 놓여 있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은 부분적으로 재건되었으나 도시는 여전히 폐허로 남아 있었고 백성은 영적으로 분열된 상태에 있었다. 공동체는 형식적 종교로 돌아갔다. 안식일 준수, 금식(특히 예루살렘의 함락을 기념하는 기일의 금식),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열망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표면 아래에는 경제적 착취가 다시 기어들어와 있었다. 상인들은 금일에도 계속 거래를 했고, 노동자들은 억압받았으며, 가난한 자들은 무시당했다. 이러한 위선 가운데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쇼파르의 외침으로 말씀하사, 종교적 행위와 윤리적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드러내신다. 이 본문은 종종 제3이사야(56-66장)로 귀속되는 문학적 단위에 속하며, 이 선지자의 메시지는 남은 자의 회복, 이방인과 환자의 포용, 그리고 참된 예배와 사회적 정의 사이의 분리 불가능한 결합에 중심을 둔다. 청중인 '야곱의 집'과 '내 백성'은 유다에서 돌아온 자들과 남아 있던 자들을 모두 포함한다. 지리적 배경은 압도적으로 예루살렘과 그 주변 유다의 중심지이며, 성전이 종교생활의 초점이 된다. 신학적으로 이 장은 트라우마 이후 이스라엘의 언약적 정체성이 재형성되는 교차점에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은 의식적 슬픔 alone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시며, 자신의 고난이 긍휼을 낳는 자들에게 회복을 제공하신다. 외부적 근거: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11권)에서 스룹바벨 아래서의 귀환과 반대 속에서의 초기 재건 노력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이사야 58장의 틀을 이루는 재개된 예배와 계속된 고난 사이의 긴장을 확증한다.

공간과 시간 속의 메아리

첫 성전 시대와 다윗 왕정 아래 예루살렘의 바빌론 배경에 설정되어 있으며, 고난은 종종 유배, 이산, 그리고 언약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

구절의 의미

이사야 58장 1-14절의 중심 의미는 하나님께 기꺼이 받으실 수 있는 고난에 대한 통상적 이해를 뒤집는 데 있다. 백성들은 몸을 괴롭히는 것—부들처럼 머리를 숙이고, 굵은 베옷과 재 위에 누워 있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실 금식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이를 거부하신다. 하나님은 인정받는 금식을 일련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정의하신다. 악한 사슬을 풀고, 압박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며, 모든 멍에를 끊고, 주린 자에게 떡을 나눠 주며, 가난한 자를 자기 집에 들이고,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고, 자기 혈육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방향을 가진 고난이다. 이것은 의롭게 보이려는 자기 중심적 전시로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여는 종류의 슬픔이다. 이사야 신학에서 이러한 바깥을 향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처럼 빛날 것이요, 네 상처가 빨리 치유될 것이다." 그 뒤따르는 약속들은 놀라우리만치 장엄하다. 응답받는 기도, 선봉이시자 후위이시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가장 어두운 밤의 빛됨, 끊임없는 인도, 뼈에 임하는 힘, 결코 마르지 않는 물 대는 동산. 그리고 그 뒤에는 사명이 따른다. 이처럼 금식하는 자들이 무너진 옛터를 다시 쌓고, 오래 잊혀진 터전을 복구하며, "무너진 성벽을 수선하는 자, 거할 거리를 복구하는 자"라 불리울 것이다. 이 본문에서 고난과 위대는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 동반자이다. 고난받는 자를 향해 우리를 무너뜨리는 그 고난이 바로 하나님의 위다가 쏟아져 들어오시는 통로이다. 위고(慰苦)는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고통을 그의 회복적 사역에 참여하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오늘 삶으로 실천하기

이사야 58장을 자신의 고통의 계절을 장애물이 아닌 초대로 대함으로써 적용하라. 금식, 기도, 또는 울음이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그 금식이 내면적이기만 한 것인지, 아니면 당신의 손에서 굶주린 자를 위해 무언가를 풀어놓은 것인지를 자문하라. 실제로는: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한 '멍에'(원망, 빚, 착취)를 찾아내어 그것을 내려놓고, 당신이 부과하고 있는 한 '멍에'(부당한 요구, 침묵, 방치)를 찾아내어 그것을 부러뜨려라. 그런 다음 한 명의 구체적인 사람에게로 나아가라: 함께 나누는 식사, 용서받는 빚, 열려지는 문. 이것이 이사야 58장의 거룩한 교환이다: 당신은 스스로 떼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안함—시간, 돈, 명성, 안락—을 내어놓으며, 하나님은 당신이 결코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을 돌려주신다: 빛, 치유, 의로운 심판, 끊임없는 인도, 뼈를 강하게 하시는 힘, 그리고 그의 회복하시는 목적을 담을 수 있는 이름을.

되새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고난이 있고, 하나님께서 거스를 수 없으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하며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면서라도—단 한 분의 관객을 위해서라도—행해지는 고난입니다. 두 번째는, 너무 철저하게 무너져서 더 이상 자기 손을 쥐고 있지 못하는 고난입니다. 가진 것, 상처, 원망을 붙잡고 있을 수 없게 된 고난입니다. 이사야 58장은 바로 그 문턱에 서서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위안을 받고 싶습니까, 변화를 원합니까? 본문은 이 둘이 같은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당신의 금식이 응답받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 어쩌면 하늘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먹을 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약속된 위안은 도피의 위안이 아니라 물을 댄 동산의 위안입니다. 실패하지 않는 생명의 위안입니다. 하나님의 경제 안에서 우리를 타인의 고난으로 이끄는 그 통증이, 바로 그의 임재가 쏟아져 들어오는 통로가 됩니다. 당신은 무에서 긍휼을 만들어 내라고 요구받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의 부서짐이 대문 앞의 부서짐을 느낄 만큼 부드러워지도록 허락하라고 요구받는 것입니다. 그러면—그리고 그제야—빛이 뚫고 들어옵니다. 그러면 뼈가 강해집니다. 그러면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한때는 결코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담을 다시 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식은 그의 손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임재를 위해 자리를 내어 줍니다. 그 임재는 사막 한가운데의 한낮처럼, 사라지지 않는 위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하나님은 왜 그들의 금식을 무시하시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그들의 금식이 외형적—베옷과 재, 숙인 머리—으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식이 만들어내야 할 내면의 회복과 의로운 행동을 무시했다. 하나님은 단순한身体的 고행이 아니라, 풀어진 사슬과 나눠진 빵을 원하신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금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악한 묶은 줄을 풀고 멍에를 벗기고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며 모든 짐을 제하고 굶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가난한 자를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입히며 네 골육을 피하지 아니하는 것 곧 자비로운 행위의 실천이니라

참된 금식에서 어떤 위안이 흐르는가?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네 빛이 동틀 때 같이 빛날 것이요, 네 치유가 빨리 솟아나겠으며, 네 기도가 응답받을 것이요, 네 빛이 어둠 속에서 떠오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를 계속 인도하시고, 마른 곳에서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네 뼈를 강하게 하실 것이라—너는 물을 받은 동산 같겠고, 그 물이 마르지 않는 샘 같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고난과 위안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고난 자체가 답은 아니지만, 우리를 바로 정의를 향해 그리고 상한 자들을 향해 굽히게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위로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고난은 꺾이고 밖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움켜쥔 손을 풀어 놓으셔서 하나님의 임재와 치유가 쏟아져 들어오게 합니다.

HomeDiscoverBibleStudy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