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부르심

거짓된 등반과 참된 소명

소바르가 악인의 짧은 기쁨을 묘사한 것은 우리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합니다. 참된 부르심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욥기 20:1-20

소박 나아마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이 나로 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가 부끄러운 책망을 들음이라 내 분변에서 영이 나로 대답하게 하도다 네가 알지 못하느냐 태고부터 사람이 세상에 있은 이래 악인의 즐거움이 잠깐이고 사악한 자의 행복이 일시일까 하늘이 높이로 올라 구름에 그 머리가 닿을지라도 그 영원히 똥처럼 사라지고 그를 보던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할 것이요 꿈같이 날아가 다시 찾을 수 없으며 밤의 환상같이 쫓겨나리라 그를 보던 눈이 다시는 보지 못하며 그 자리에 다시 보지 못하리라 그의 자식들이 가난한 자에게 아첨하고 그의 손이 자기 재물을 도로 주어야 하리라 그의 뼈가 아직 기력이 있으므로 함께 dust에 눕는도다 악이 그의 입에 달며 그의 혀 밑에 감추어 두고 그것을 아끼고 버리지 아니하며 그 입 안에 머금을지라도 그 음식이 그의 장 속에서 독사로 변하되 그가 삼킨 재물을 다시 토하리니 하나님이 그 위에서 그 배를 비우게 하시리라 그가 독사의毒을 빨 것이요 뱀의 혀가 그를 죽이리니 그가 시냇물과 꿀 강과 젖 시내를 즐기지 못할지니 그가 삼키지 못한 재물을 도로 주리니 풍성한 재물이 소용없게 되리라 이는 그가 가난한 자를 압박하고 버린즉 그가 강제로 취한 집을 세우지 못할 것이요 그가 안식 중에 있는 자기 자녀를 보지 못하며 그의 사랑하는 자의 하나도 보존하지 못할지니 남는 자가 없어 그 재물을 누릴 자 없으므로 그 형통하지 못하리라 욕심이 다 찬 후에 재앙이 이르리니 온갖 고난이 그를 칠지니 그의 배를 채우게 하시며 하나님이 그 위에 진노를 내리시고 전쟁하는 칼을 그 위에 쏟으시리니 철활을 피하리라 청동 활에 뚫리리니 칼이 빼어져 그 살을 찌르고 갈대를 뚫으며 그를 놀라게 하리라 어둠이 그의 보화 중에 예비되고 사람이 불지 아니하는 불이 그를 태우리니 그의 장막에 남은 자도 압박을 받으리라 하늘이 그 죄를 드러내며 땅이 일어나 그를 칠지라 하나님의 노하는 날에 그의 집이 홍수에 떠내려가듯 쏟아지리라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는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정하신 기업이니라

욥기 20:1–20은 소발의 두 번째 연설입니다. 그는 악인의 즐거움이 아무리 높이 올라간 듯 보여 늘 잠깐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생생한 이미지—똥, 꿈, 독사의 독—은 자기 promotion과 oppression 위에 세워진 삶이 내부로부터 무너진다고 경고합니다. 그의语调이 욥에게 거칠지만, 이 본문은 참된 calling의 신학을 이루는 대조를 드러냅니다.

Narration

맥락

욥기 20장은 나오앗 사람 소발의 두 번째 답변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친구들은 위로에서 책망으로 옮겨갔으며, 소발은 악인의 번영은 항상 짧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우주가 도덕적으로 질서 잡혀 있다는 고대 근동의 공통된 확신을 끌어옵니다. '하늘처럼 높이 올라가는' 자가 '자기 똥처럼 영원히 사라지는'(7절) 것은 신적 정의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배경은 우스 땅으로, 전통적으로 요단 강 동쪽이나 북부 아라비아에 위치하며, 언약의 땅 밖에서 일어나는 욥의 고난과 하나님의 주권적 시선 안에 있는 것과 관련됩니다. 소발이 욥에 대해 개인적으로 잘못 말하고 있지만, 자력으로 세운 제국이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대한 그의 시적 묘사는 묘사를 보여주는 거울이 됩니다. 이 연구는 원문에 의해서만 진행하겠습니다.

시공간 회랑

우스 땅의 족장 시대에 배경하며, 욥의 시련과 그분의 사명과 소명에 대한 묵상의 무대를 제공합니다.

본문의 의미와 해석

소바르의 말은 부르심의 관점에서 읽을 때, 부르심이 무엇이 아닌지를 그려낸다. 첫째, 부르심은 높이가 아니다. '그가 하늘처럼 높게 솟아올라도 영원히 멸망하리라'(6-7절). 많은 사람이 목적을 가시성, 환호, 혹은 기관 내 직위로 측정한다. 소바르는 의로움 없는 가시성은 종이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둘째, 부르심은 보유가 아니다. 악인은 '보존하고, 놓지 아니하며, 자기 입 안에 간직하되'(12-13절), '삼킨 재물을 도로 토해내니 하나님이 그 위장에서 그것을 빼내시리라'(15절). 움켜쥔 것은 맡겨 관리할 수 없다. 셋째, 부르심은 정의와 분리된 향유가 아니다. 악인은 '가난한 자를 짓밟고 괴롭게 하며'(19절), '강탈한 집을 세우지 못하리라'(15절). 타인의 손해 위에 세워진 목적은 소명이 아니라 영적 이름표를 단 도둑질이다. 마지막으로, 부르심은 자기 충분함이 아니다. 악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릴 때에 환난이 이르리니'(22절), 이는 혼이 스스로의 생존의 원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경 서사에서 참된 부르심은 주어지는 것이며(여기에 인용되지는 않았지만 에베소서 스타일의 소명), 맡겨진 것으로서 받고, 느낌이 아닌 신실함으로 측정된다. 소바르는 이를 욥을 위해 알지 못하나, 그의 캔버스는 우연히도 참된 부르심이 드러나게 하는 여백을 그려낸다.

오늘의 적용

실제로 소발의 이미지는 우리가 품고 있는 소명에 대한 네 가지 진단적 질문을 제시한다. (1) 나의 탑은 어디에 있는가? 목적에 대한 나의 비전이 내 이름이 '하늘처럼' 높이 들리는 데 중심을 둔다면, 나는 소발의 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소명은는 아래로 향하고 바깥으로 향하는 것, 곧 종의 형상을 가진 것이지 고층 건물의 형상을 가진 것이 아니다. (2) 나의 입에 무엇을 물고 있는가? 혀 아래 달콤한 악을 품고 있는这幅은 소름 끼친다. 드러날 경우 그 '소명'이 자기 이익이었음이 드러날, 어떤 목표, 불만, 혹은 숨겨진 이점을 내가 숨기고 있는지 물을지어다. 고백과 간결함이 해독제이다. (3) 누구의 젖과 꿀을 마시고 있는가) 독사의 독으로 변하는 시내(16절)는 남들을 짓밟아 얻은 자원을 상징한다. 내가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체계로부터 번영하고 있지는 않은가? 재포장과 회계책만 아니라 회개와 변제가 요구된다. (4) 내가 저축하고 있느냐, 돌보고 있느냐? 악인은 그가 쌓아둔 것을 '누릴' 수 없다(23절). 소명은 축적이 아니라 관대함으로 검증된다. 우리가 손을 펼칠 때 우리의 사명은 숨을 쉬고, 손을 꼭 쥘 때 질식한다. 소발의 적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자력으로 일어선 사람이다. 끝이 구름에 닿지 않고 뿌리가 하나님의 강에 닿는 소명을 추구하자.

되새김

주님, 이 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의 야심을 높이가 아닌 깊이로 헤아리게 하옵소서—내가 받은 긍휼의 깊이, 내가 갚을 수 있는 신실의 깊이로 말입니다. 내가 보관할 것이 아닌 것을 붙잡은 곳에서, 제 손을 비우고 주의 신뢰로 채워 주옵소서. 타인의 잃음 위에 내가 쌓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허물고 가난한 자에게 열매 맺는 것을 심어 주옵소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고, 섬길 수 있을 만큼 큰 부르심을 주시고, 모든 덧없는 기쁨이 저울에 달리는 그 날까지 이르게 하옵소서. 주님을 위해 행한 것만이 남을 때까지. 아멘.

자주 묻는 질문

저버(Zophar)의 말을 완전히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신학적으로, 소발은 신의 정의를 절대화하지만 그것을 욥에게 잘못 적용한다. 그의 일반적 원리(악인은 넘어진다)는 광범위하게 참이지만, 욥에 대한 그의 진단은 틀렸다. 부르심은 보편적 원리와 특수한 적용 사이를 분별할 것을 요구한다.

이 장이 참된 사명을 분별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대조적으로, 소발은 부르심의 반대—자기 높임, 탐욕, 그리고 압제를 보여줍니다. 참된 부르심은 겸손한 섬김, 넉넉한 나눔, 연약한 자를 돌보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는 특징을 지닙니다.

왜 '똥'과 '구름'이 함께 놓여 있나요?

히브리어 수사법은 극단적인 병치를 사용하여 자기 높임이 항상 추락으로 끝난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 둘을 함께 놓음으로써 독자는 시작에 현혹되지 않고 결말을 직면하도록 강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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