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구름 속 만남: 지성소의 문 앞에서 기다림을 배우는 믿음

레위기 16장은 대담하게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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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레위기 16:1-20

하나님이 아론의 두 아들이 죽은 후에 곧 그들이 여호와의 임전에 가까이 나아와 죽은 일 후에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이르시되 너는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그가 임의로 휘장 안 지성소로 들어가지 말지니 곧 증거궤 위 속죄소를 향하지 말라 이는 그가 죽을까 함이니라 내가 구름 중에서 속죄소 위에서 나타남이니라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이렇게 할지니 곧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하여 속죄로 송아지 한 마리와 번제로 숫양 한 마리를 취하되 속의 세마포 직조 짧은 겉옷을 입고 세마포로 만든 속바지를 그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고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는 거룩한 의복이라 물로 그 몸을 씻고 그것을 입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를 위한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를 위한 숫양 한 마리를 취할 것이요 아론이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하여 속죄할 송아지를 잡되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한 속죄 제물로 드리고 두 숫염소를 여호와 앞 회막 문 앞에 세워 놓고 두 염소 위에 제비 뽑되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고 하나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 것이요 아론이 제비 뽑아 여호와를 위하여 나온 염소를 가져다가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아 나온 염소는 여호와 앞에 세워 두고 그것으로 속죄하고 그것을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에 보내리라 아론이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하여 속죄할 송아지를 드리되 자기 송아지 속죄 제물을 잡고 여호와 앞 제단에서 불로 피운 숯을 향로에 채우고 손에 곁게 빻은 향 두 줌을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여호와 앞 그 불에 향을 놓아 그 향의 연기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하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않을 것이요 그는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그 손가락으로 속죄소 위 동쪽 면에 뿌리고 또 그 손가락으로 속죄소 앞에 피를 일곱 번 뿌리리라 그 후에 백성의 속죄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 그 송아지 피와 같이 행하여 그것을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리라 이같이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정결케 하고 회막도 정결케 할지니 이는 그들의 부정 가운데 함께 거함이라 그가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하기 전에 누구도 회막 안에 있지 못하다가 그가 나와서 자기와 자기 집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 제단으로 나아가 그것을 속죄할지니 곧 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제단 사방 뿔에 바르고 그 나머지 피는 손가락으로 그 위에 일곱 번 뿌리라 이같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으로 말미암아 제단을 정결케 하고 그것을 거룩하게 하리라 그가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는 것을 마친 후에는 살아있는 염소를 끌어 올릴지니 아론이 그 살아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안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악과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며 그것을 염소 머리에 두고 이것을 정한 사람이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지고 무인경에 이르리니 염소를 광야에 놓아 줄지라 아론이 회막으로 들어가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의복을 거기 벗어 놓고 거룩한 곳에서 몸을 씻고 자기 의복을 입고 나와서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번제를 드리되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 사르듯 피우라 아사셀 염소를 놓아 보내던 자는 그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올 수 있으리라 속죄소의 송아지와 속죄제의 염소 곧 그 피를 가져다가 지성소를 속죄하게 한 것은 진영 밖으로 끌어 내어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불로 태울지니 그것을 불사른 자는 그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올 수 있으리라 이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규례라 곧 칠월 보름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 본토인이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거나 할 것 없이 이는 그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모든 죄에서 정결케 함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 앞에 크게 거룩한 안식일이라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이는 영원한 규례라 이 속죄는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기름을 받고 제사장 직분을 행하는 대제사장이 자기와 그 집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행할 것이요 그가 세마포 의복 곧 거룩한 옷을 입을 것이요

레위기 16:1–20은 속죄일 의식을 제시합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이후, 주님은 아론에게 그가 임의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일년에 한 번만, 피와 향을 가지고, 제사장 의복을 입은 상태에서, 대제사장이 구름 덮인 속죄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신앙을 익숙한 친근함이 아닌 엄격한 접근 규칙 아래서의 경건한 순종으로 제시합니다.

Narration

맥락

레위기 16장은 엄숙한 회고로 시작됩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 '이방의 불'을 드리며 여호와의 임재에 너무 가까이 나아가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레위기 10:1–3). 이어지는 규례들은 가벼운 제의적 제안이 아니라 긍휼입니다. 여호와는 모세에게 아론이 임의로 장 뒤의 성소로 들어가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법궤 덮개 바로 위, 여호와께서 '구름 안에서 나타난다'고 말씀하신 그 공간은 구약에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가장 거룩한 장소입니다. 대제사장만이, 그리고 속죄일에만, 그 문턱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목욕과 세마포 옷, 자신의 죄를 위한 황소 한 마리, 온 백성의 죄를 위한 염소 두 마리, 제단에서 가져 온 숯불을 담은 그릇을 갖춘 후에야 가능합니다. 의식에는 두 마리의 염소에 대한 제비뽑기가 포함됩니다.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것'으로(속죄 제물로 잡히고) 표시되고, 다른 하나는 '아셀'을 위한 것으로 표시되어 산 들판으로 살아서 보내집니다. 대제사장은 장 안쪽으로 향료를 가져가 향기로운 구름이 속죄소를 가리게 합니다. 이는 '그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덮개의 동쪽 면과 그 앞에 피를 뿌리는 행위는 백성을 위한 속죄의 절정적 순간입니다. 역사적 배경은 출애굽기 25–40장에 묘사된 광야의 성막으로, 기원전 제2천년기에 이스라엘의 이동식 예배 중심지였습니다. 1세기에 쓴 요세푸스는 대제사장이 홀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들어갈 것을 지시받았으며, 그 의식의 목적이 온 민족의 죄를 속죄하는 것이었다는 전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요세푸스, 고대사 3.10.3 참조). 제단, 물두멍, 성소, 지성소의 배치를 이룬 성막의 공간 구조는 수 세기 동안 이스라엘의 종교적 상상력을 형성했으며, 히브리서 9장에서 묘사된 후대 예루살렘 성전에서 메아리집니다.

회막 문 어귀에서

제2성전 시대 예루살렘 성전 산에서 펼쳐지는 배경 속에서, 레위기 16장의 속죄일 의례는 제사장직의 중보와 제물로 드리는 희생제물, 그리고 여호와의 속죄하시는 긍휼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는 yearly 행위로서 나타납니다.

의미

레위기 16장의 핵심 진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인간의 발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하신 방편을 통해 표현되시는 신적 발의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죽을까 봐'라는 표현이 이 본문에서 세 번 등장한다(2절, 13절, 그리고 제의 전반에 걸쳐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이 장의 교육적 심장박동이다. 곧지 않은 사람이 거룩한 공간에 단지 걸어 들어와 살아남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장에서 믿음은 들어갈 담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밖에서 기다리라' 하실 때 순종하는 담력이며, 하나님께서 '이제 들어오라' 하실 때 들어가는 담력이다. 믿음은 우리의 조건이 아니라 정확히 하나님의 조건에 따라 나아오겠다는 의지로 나타난다. 둘째, 이 제사는 두 숫염양을 구별한다. 두 숫염양 모두 회막 입구에서 여호와 앞에 제시된다. 두 숫양 위에 놓을 제비 뽑는 것은 임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제물로 드리는 것과 멀리 보내는 것 중 어느 것이 여호와께서 정하시는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속죄와 제거의 구별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인식이다. 우리가 죄가 어떻게 덮이는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죄가 어떻게 멀리 옮겨지는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제사장이 제비를 놓지만, 제비 뽑기를 정하신 분은 여호와이시다(잠언 16:33). 셋째, 향은 필수적이다. 향에서 피어나는 구름이 '속죄소 위를 가려서 그가 죽지 않게 한다.' 향이 없으면 제사장이 노출된다. 덮는 것이 없으면 만남이 치명적이 된다. 정경 신학에서 이 구름은 하나님의 보호적 임재를 자주 상징하는 이미지다. 이스라엘 위의 구름 기둥, 솔로몬의 성전을 채운 구름, 변화산에서의 구름, 승천의 구름이 그러하다. 향은 일종의 허락된 중재 역할을 한다. 제사장은 이 구름을 우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의존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시기로 선택하시기 전에, 자신을 가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신뢰하려는 의지이다. 마지막으로, 피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피를 취하여 속죄소 동쪽 면과 그 앞에 뿌린다. 적용은 의도적이고, 겸손하며, 정밀하다. 이것은 피를 연극적으로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고 절도 있는 행위다. 피에 담근 제사장의 손가락이 속죄의 도구가 된다. 이 장 전체의 드라마는 대제, 동일시, 교환의 신학적 문법이다. 이것은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成し' '더 큰 장막'에 들어가실 '최후의 대제사장'의 날을 가리킨다(히브리서 9:12).

적용하다

현대 독자들이 레위기 16장에 도달했을 때, 그 장을 대충 훑어보거나 '구약'이라고 치워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장의 목회적 메시지는 유달리 현대적입니다. 이 장은 신앙의 세 가지 습관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 이 장은 접근의 습관에 대해 말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말하지 않는 신학을 흡수해 왔는데, 그 신학에서는 지성소가 항상 열려 있고 휘장이 영구적으로 제거되었습니다. 레위기 16장은 새 언약 아래에서도 우리는 소비자가 카운터로 다가오듯 하나님께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와' (히브리서 4:16) 초대받은 자들로 다가섭니다. 그러나 그 초대 자체가 이 장이 예고하는 피로 값 치러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재촉하고, 하나님을 presumption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신앙은 레위기 16장의 신앙이 아닙니다. 레위기 16장의 신앙은 '내가 정확히 당신이 말씀하신 때와 방법으로 나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신앙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것은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서 인내를 실천하고, 일방적으로 영적 체험을 계획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침묵이 부재가 아니라는 것을 신뢰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둘째, 이 장은 의존의 습관에 대해 말합니다. 아론은 자신의 방법을 성소로 가져가지 않습니다. 그는 향과 제단에서 온 숯과 피를 가져갑니다. 그의 손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그의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의 적용은 실용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종교적 용어로 포장된 강한 의지의 자족이 아닙니다. 그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 곧 그리스도의 공로, 성령의 기도, 그분 자신의 식탁의 빵과 포도주를 하나님께 가져오는 매일의 실천입니다. 신앙은 용감해지기 전에 의존으로 보입니다. 셋째, 이 장은 공동체의 습관에 대해 말합니다. 두 염소는 사적 경배를 위해 택함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서' 취해집니다. 아론의 속죄는 자기와 '그의 가족'을 위한 것이며, 속죄일은 국가적 사건으로 명시됩니다. 이 장은 우리가 원자화된 신자가 아니라는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함께 죄가 덮이고 함께 죄책이 옮겨지는 백성의 일원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실천에는 공동 죄의 고백, 우리가 속한 집단을 대신한 회개, 그리고 서로의 짐을 짊어지려는意愿이 포함됩니다.

되새김

레위기 16장에는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고요함이 있습니다. 이 장은 전쟁이나 부흥의 소란으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그릇에 물을 부어 붓는 소리, 손을 담그는 소리, 제비를 뽑는 소리, 향을 불 위에 놓는 소리,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는 소리와 같은 준비의 작은 소리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바깥 뜰은 시끄럽지만, 이 장의 핵심 순간은 내면에 있습니다. 이 장에서信仰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순종적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훈련입니다. 거룩함이 적대적이지 않으며 경외를 통해 존중받는다는 신뢰입니다. 잠시, 회막의 입구에서 두 숫염소와 함께 서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제사장은 안에 있습니다.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향을 숨 쉬는 것은 다이버가 산소를 숨쉬는 방식과 같습니다 — 마치 그것이 그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깊이 사이의 유일한 것인 것처럼.信仰는 구름의 필요가 없음이 아닙니다.信仰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주신 대로, 그가 일어서도 좋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숨 쉬는 의향입니다. 우리들 중 많은 이는 장막 휘장을 향해 돌진하라고 요구받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세우신 분을 신뢰하라고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 장에는 오래된 목회적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리를 두신 삶의 부분들에 대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방식으로 그 간격을 좁히려고 끊임없이 협상하고 있습니까?信仰는 휘장 바깥에서 오래 서 있는 고요함 속에 있습니다. 안의 구름이 짙고, 피가 뿌려졌고, 제사장이 살아서 나왔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년에도 대제사장이 다시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때까지 우리는 기다립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신뢰합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향의 느린 숨을 연습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아론이 스스로의 뜻으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성소는 구름 가운데 그 영광이 나타나신 주의 땅 위의 거처이므로 정결과 피 없이 나아가는 것은 거룩한 공간에 거짓되이 들어가는 것이요 그 결과는 죽음이니 여기서 믿음은 개입이 아니라 경외하며 규격된 나아감이라

두 염소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염소를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아 속죄제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아 여호와 앞에 살려두었다가 광야로 보내었으니, 첫째는 죄를 덮으며 둘째는 진영에서 죄를 제거하는 것이다.

연기 incense 구름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연향의 연기가 속죄소를 가려서 제사장이 죽지 않게 하느니라. 그 구름은 허용된 중보이니, 곧 제사장이 영광 앞에 서게 허락하시는 신적으로 정하신 방패라. 믿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닉처 안에서 생겨난다.

레위기 16장은 어떻게 신약성경과 연결되는가?

히브리서 저자는 레위기 16장을 그리스 안에서 이미 임한 실체의 그림자로 읽는다. 예수님은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며, 더 크고 온전한 성막에 단 한 번 들어가 자기 피로 영원한 구속을 얻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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