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열방의 폭풍 가운데 위안: 다니엘서 11:1–20

역사가 야망과 칼로 쓰여진 것처럼 보일 때, 고난받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주권 위에서 위안을 찾는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다니엘 11:1-20

"다리오 메대 사람의 원년에 내가 그를 강건하게 하며 굳건히 세우려고 내 자리를 정하였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참된 일을 이르리니, 바사에는 세 왕이 더 있을 것이요, 그 넷째는 그들 모두보다 크게 부유할 것이며, 그가 그 부로 말미암아 얻은 권세로 그리스 나라를 치며 모든 사람을 격동시킬 것이니, 그 후에 한 용사가 나서서 그 넓은 땅을 다스리며 뜻대로 행하리라. 그러나 그가 나타난 후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하늘의 네 바람에 흩어질 것이나, 그의 후손에게로도 아니며, 또 그가 다스리던 것 같은 권세로도 아니라, 그의 나라가 뽑혀서 이 사람들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가리라. 남방의 왕은 강하여지리라, 그러나 그의 방백 중 하나가 그보다 더 강하여 나라를 다스리니 그 권세가 크게 미치리라. 해가 여러 해 지난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을 맺을 것이요, 남방 왕의 딸이 남편을 이루어 북방 왕에게로 가서 화친을 이룰 것이나, 그 권세가 굳지 못하며 그의 권세도 오래 서지 못하리니, 그 딸과 그를 호위하는 자들과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그를 도운 자들이 다 버림을 당하리라. 그 줄기에서 나온 한 줄기가 그의 위를 대신하여 군대를 치러 와서 북방 왕의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리라. 그가 또 그들의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을 노략물로 애굽으로 데리고 돌아갈 것이며, 그가 수 년 동안 북방 왕을 그대로 버려 둘 것이니, 북방 왕이 후에 남방 왕의 나라를 치러 왔다가 자기 땅으로 돌아가리라.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큰 군대를 모으리니, 그가 밀려 나아와 넘침같이 여러 곳을 휩쓸고 또 그의 견고한 곳까지 와서 전쟁을 다시 일으키리라. 남방 왕이 노를 발하여 나가서 그를 치되 곧 북방 왕과 싸울 것이며, 그는 큰 무리를 모을 것이나 그 무리가 그의 원수의 손에 넘겨 주워지리라. 그 무리가 끌려가면 그는 마음이 교만하여 만인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러나 형통치 못하리라. 북방 왕이 다시 전보다 더 큰 무리를 모으리니, 몇 해의 때가 지나서 그가 큰 군대와 많은 병거를 이끌고 나아오리라. 그 때에 남방 왕을 치는 자가 많겠고, 네 백성 중의 무법한 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꿈을 이루려 할지라도 넘어지리라. 북방 왕이 와서 진을 치며 견고한 성을 취하리니, 남방의 군대는 능히 당치 못할 것이요, 그의 택한 군대라도 힘으로 그를 대적치 못하리라. 대적하는 자가 뜻대로 행하리니, 당할 자가 없으며 그가 아름다운 땅에 이르러 그 손으로 다 멸하리라. 그가 뜻하여 그 원수의 나라 모든 견고한 곳을 치려 할 것이나, 또 그것을 멸하려 하여 그와 맹약을 맺고 딸을 주어 꾀하리라, 그러나 이루지 못하리라. 그가 해변으로 돌아가서 많은 곳을 취하리니, 한 총독이 그를 능욕하여 그 능욕을 보응하리라. 그가 자기의 나라 견고한 곳으로 돌아가다가 넘어져 패하여 없어지리라. 그의 대신하는 자는 왕의 영광을 위하여 조공을 받으리라, 그러나 분노나 전쟁으로 수일 사이에 패하리라. 그의 대신하는 자는 경멸 받을 사람이니, 왕의 위엄이 그에게 있지 아니할 것이며, 그가 뜻밖에 와서 궤계로 나라를 취하리라. 넘치는 군대가 그 앞에서 넘침같이 패하여 넘어지겠고, 또 맹약의 주도자도 그리 되리라. 그가 맹약을 맺은 후부터 늘 꾀를 행하리니, 그가 적은 무리를 데리고 와서 힘을 얻을 것이요, 그가 뜻밖에 가장 부한 지방을 침노하여 그의 열조가 행치 못하였던 것을 행하여 전리품과 노략물과 재물을 그 무리에게 흩어 주며 견고한 성을 꾀하리라, 그러나 잠시뿐이리라. 그가 마음을 떨치며 힘을 다하여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남방 왕도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이끌고 전쟁하되 능히 당치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남을 꾸며 그를 치려 함이라. 남방 왕의 식탁에서 먹는 자가 그를 해치리니, 그의 군대가 패하여 많이 죽임을 당하리라. 두 왕이 다 마음을 악에 두어 함께 상席에 앉아서 서로 거짓말하리라, 그러나 이루지 못하니 이는 기한이 아직 정해졌음이니라. 그가 큰 재물을 가지고 자기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그의 마음은 성소를 치기로 정하였으므로 뜻대로 행하고 자기 본국으로 돌아가리라. 기한이 이르면 그가 다시 남방을 침노하리니, 그러나 두 번째는 처음과 같이 되지 아니하리라. 깃딤에서 배들이 와서 그를 치리니, 그는 낙심하고 돌이켜 성소를 치는 데 분노를 발하리니, 곧 뜻대로 행하고 또 성약을 버린 자를 돌아보리라. 그가 군대를 모집하여 성소와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거하고 치멸할 가증한 것을 세우리라."

다니엘 11:1-20은 다리오 메데의 초기 시기에 다니엘 앞에 펼쳐진, 페르시아와 헬라, 프톨레마이오스 남방 왕국, 셀레우코스 북방 왕국 등 잇따라 이어지는 왕국들에 대한 광범위한 환상입니다. 이 본문은 통치자들의 흥망, 전쟁의 잔혹함, 폭군의 오만을 드러내면서도, 모든 사건을 그의 천사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란 기반 위에 조용히 연결하고 있습니다.

Narration

역사적 배경

다니엘 11장은 메대의 다리오 즉위 원년에 시작됩니다. 바빌론 제국이 막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던 시기입니다. 망명 생활을 하는 노년기의 선지자 다니엘에게 미래의 지정학적 격변에 대한 광범위한 전망이 주어집니다. 세 명의 페르시아 왕들,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그리스를 자극할 네 번째 왕, 그리고 거의 보편적으로 알렉산더 대왕으로 식별되는 유명한 '전사 왕'이 등장합니다. 그의 광대한 영토는 사후 그의 장군들 사이에 분할됩니다. 그 후 환상은 애굽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인 '남방 왕'과 시리아를 근거지로 하는 셀레우코스 왕조인 '북방 왕' 사이의 장기 투쟁으로 좁혀집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일련의 조약, 파기된 동맹, 정치적 혼인, 군사적 원정, 그리고 잔혹한 포위전으로 이어집니다. 요세푸스는 『고대사』 12.3.3에서 이 프톼레마이오스-셀레우코스 갈등이 마카베아 봉기 이전 수세기에 유대인의 세계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기록하면서, '북방 왕' 안티오쿠스가 후에 성전을 모독했다고 언급합니다. 이는 이 책이 최종 형태로 정착되었을 때 유대인의 기억에 여전히 생생한 트라우마였습니다. 이 암울한 지정학적 체스판 속에서 다니엘에게 이 사건들은 우연이 아니라고告げられます. 이것들은 계시된 진리입니다. 천사가 다리오를 '강하게 하며 견고하게 하려고' 섰습니다(11:1). 이는 제국의兴起조차도 특정 시기에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목적을 수행함을 시사합니다. 시편 46:8의 저자는 유사한 신념을 이렇게 포착합니다. "와서 여호와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그가 어떻게 땅에 황폐를 가져오셨는지." 고난은 현실이며, 역사가 주님께 속한다는 것을 아는 위안도 또한 현실입니다.

시간과 장소의 캔버스

선지자들과 포로기 시대에 배경이 잡힌 이 문맥은 바벨론 포로기와 예루살렘의 다윗 왕조 유산을 아우른다. 다니엘이 본 환상은 민족적 고난과 회복의 소망 속에서 펼쳐졌다.

신학적 의미

다니엘 11:1–20은 신학이 역사로 미리 말해진 것이다. 고난받는 자들에게 그 의미는 세 가지 흐름으로 드러낼 수 있다. 첫째, 주권은 정밀하다. 본문은 처음 세 명, 그리고 네 번째 페르시아 왕들을 명명하고, 이어서 그리스 정복자, 그리고 특정한 동맹과 배신을 나열한다. 하나님은 막연한 하늘의 신적 감각에서 '다스리신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전환을 상세히 계시하신다. 이런 정밀함 자체가 세상의 잔혹함이 혼돈스럽고 추적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그분에게 추적 불가능한 것은 없다. 둘째, 고난에는 지평선이 있다. '그러나 그의 후손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넘기지 아니하리라'(11:4)는 반복되는 표현과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끊임없이 옮겨가는 권력의 변화는 아무리 무서운 제국이라도 그 안에 만료 시기가 내장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용감한 왕의 통치가 그의 자녀들에게로 넘어가지 않는다. 동맹은 무너지고, 신부는 힘을 잃고, 오만한 왕은 무수한 자들을 멸하게 하나 제재를 받는다. 폭군은 참전하지만 또한 임시적이다. 이사야 40:15–17은 이것을 시적 정확성으로 표현한다. '보라 열방은 물통의 한 방울 같으며 저울 위의 가는 티끌 같이 여겨지느니라.' 고난받는 자들에게 이것은 염세주의가 아니라 소망이다. 지금의 어떤 어둠도 궁극적이지 않다는 소망이다. 셋째, 위로는 계시 안에 감추어져 있다. 첫 절 자체에 주목하라. '내가 그를 강하게 하며 견고하게 하려고 나섰느니라.' 천사는 수동적 메신저가 아니다. 그는 참여자로서 연약한 왕을 떠받친다. 모든 지상的人物 뒤에는 하늘의 저술사가 서 있다. 다니엘과 그 이후의 모든 다니엘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들의 고난이 목격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통치자들을 붙들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또한 고난받는 자들을 붙든다. 그러므로 '고난과 위로'에 나오는 '위로'는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무고한 자들을 권력이 으깨기 전에 권력에 관한 진실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오늘의 적용

여섯 세기 묵은 Persia, Greece, Egypt, Syria 왕들에 대한 비전이 병상의 신자, 난민 캠프, 조용한 애통의 방에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1. 다니엘 제자처럼 뉴스를 읽으라. 다니엘의 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봉투 안에서 미래의 나쁜 소식을 panic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헤드라인--전쟁, 동맹, 배신, 오만한 통치자들--을 바로 그 동일한 봉투 안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말씀이 마지막 말이다. 2. 폭군을 이름 붙이되, 그의 만료 시기를 또한 이름 붙이라. 학대하는 상사, 부패한 정권, 만성적인 병, 또는 죄의 패턴 앞에 꺾일 때, 다니엘 11장은 우리에게 동시에 두 가지 행위를 하도록 초대한다: 폭군의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하라(그것은 실제이며, 무수한 사람들이 멸망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한계에 대해 진실을 말하라(그것은 그의 후손에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부서지고, 흩어지고, 뿌리 뽑힐 것이다). 정직함 더하기 소망이 성경적 자세이다. 3. 하늘의 작은 자비들을 받으라. 천사가 다리오를 '강하고 견고하게' 했다--다리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과도기를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고난 중에 경험하는 많은 위로들도 마찬가지로 작고, 숨겨져 있으며, 전략적이다: 친구의 문자, 찬송 한 구절, 섭리적으로 증명되는 지체. 그것들을 알아차리도록 자신을 훈련하라. 그것들은 당신 자신의 다리오에 대한 당신 자신의 첫 해에 맞게 조정된 같은 종류의 위로이다. 4. 동맹의 기도를 기도하라. 다니엘 11장은 정치, 혼인, 또는 재물로 이루어진 동맹들이 취약함을 보여준다. 지속되는 유일한 동맹은 하나님이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과 맺으시는 것이다. 고난이 인간의 동맹들을 당신의 궁극적 안전처로 움켜쥐도록 유혹할 때, 대신 주의 천사의 강건케 하시는 임재를 위해 기도하라--고대 선지자를 바벨론에서 붙들고 있던 바로 그 임재를.

되새김

다니엘 11장 1절에는 조용한 용기가 있습니다. 처음 주의 깊게 읽을 때 거의 놓칠 뻔했습니다. "나는 메대 사람 다리오의 첫해에 그를 도와 강하게 하기로 작정하였노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앞에서 보내진 천사가 자신의 위치를 잡습니다. 싸우려고도, 멸망시키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하려고, 견고하게 하려고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그 단어는 무너짐을 막기 위해 벽을 받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광대한 군대들, 휩쓸리는 정복, 무수한 죽음을 묘사하게 될 이 본문에서 가장 먼저 울리는 음은 이렇습니다. 세상의 고통에 대한 하늘의 첫 번째 본능은 약한 것을 떠받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아는 신자들을 떠올립니다. 그들 역시 자신만의 다리오의 "첫해"를 살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진단, 해체된 혼인, 사라져버린 천직. 그들은 위대하지 않습니다. 강하지도 않습니다. 그들 중 일거 기도조차 겨우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본문은 그들에 대한 하늘의 태도가 다리오에 대한 그것과 동일함을 시사합니다. 강하게 하는 것, 견고하게 하는 것, 곁에 서 있는 것. 다니엘 11장의 이후 장들은 점점 어두워지고, 잔혹함은 더 날카로워지며, 전쟁은 늘어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을 읽어나가는 다니엘을 지탱하는 위로가 이미 1절에 심어져 있습니다. 고난이 상세히 기술되기 전에, 위안이 이미 확보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것이 우리가 초대받은 리듬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의 다음 장을 항상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 돌아가 살펴볼 수는 있습니다. 폭풍이 닥치기 전에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손이, 뜻밖의 말씀이, 오래 잊혀진 찬송이, 이미 그곳에서 벽을 받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 속 위안은 고난의 부정이 아니라, 조용한 증언입니다. 고난이 첫 번째가 아니었다는 증언. 강하게 하시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하나님의 경률 안에서 강하게 하시는 것은 다음 장을 견딜 수 있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다니엘서 11장이 어찌하여 이토록 자세히 여러 나라의 역사를 예언하는가?

고통 속에서 가장 큰 위안 중 하나는 바로 이 특수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모르시는 것도, 열국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신 것도 아닙니다. 그는 사건들이 펼쳐지기 전에 그것들을 계시하심으로써 만물이 여전히 자신의 주권적 손 아래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본문에서 멸망하는 '무수한 무리'는 무고한 자들의 고난을 함축하고 있는가?

그래. 무수한 생명을 멸하게 하는 오만한 왕은 순결한 고통의 생생한 초상이다. 그러나 그 글은 동시에 잔혹한 권력에는 유한期限이 있으며, 고난받는 자들이 영원히 잊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오늘날 신자들은 이 고대 예언으로부터 어떤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역사 위에 정밀한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둘째, 모든 잔혹한 권세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使者들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다, 다리오 왕을 강하게 하셨던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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