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부르심

약속의 땅 밖에서 약속을 찾다: 낯선 땅에서의 소명을 살아가며

요셉이 그의 가족을 이집트에 정착시킨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우회로가 아니라 그의 부르심의 연장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종종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토양에서도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창세기 47:1-20

요셉이 바로에게 나아가 아뢰되, “내 아버지와 내 형제들이 그들의 양 떼와 소 떼와 모든 소유물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서 와서 지금 고센 땅에 있습니다.” 그가 형제 중 몇 사람을 가려 뽑아 바로 앞에 세웠다. 바로가 그의 형제들에게 물었다. “너희의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로서 목자이며 우리 아버지도 그러하였나이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 땅에 거류하러 왔사오니 이는 당신의 종들의 양 떼를 먹일 목초지가 없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종들이 고센 땅에 거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아버지와 당신의 형제들이 당신에게로 왔으니, 이집트 땅이 당신 앞에 열려 있나니 그들을 이 땅의 최상의 곳에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머물게 하라. 그리고 만일 그들 중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거든 나의 가축을 관리하도록 임명하라.” 요셉이 부친 야곱을 데려와 바로 앞에 세웠고, 야곱이 바로에게 문안하였다. 바로가 야곱에게 물었다. “당신의 연세가 몇이냐?” 야곱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이 세상에 거류한 해는 일백삼십년이오라. 내 인생의 해는 적고 고난이 많았사오며 내 조상들이 거류하던 동안의 수명에는 미치지 못하나이다.” 야곱이 바로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바로 앞에서 물러나갔다. 요셉이 바로가 명령한 대로 부친과 형제들을 거하게 하고 그들에게 이집트 땅의 가장 아름다운 곳 곧 람세스 땅에서 토지를 주었다. 요셉이 부친과 형제들과 부친의 온 집안을 어린아이들까지 양식으로 먹여 살렸다. 온 세상에 양식이 없었으니 이는 기근이 매우 심하였기 때문이다. 기근 때문에 이집트 땅과 가나안 땅이 다 쇠약해졌다. 요셉이 이집트 땅과 가나안 땅에서 발견되는 모든 돈을 곡식 값으로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전으로 가져왔다. 이집트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지자 모든 이집트인들이 요셉에게 와서 말하였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오서니 당신의 눈 앞에서 우리가 죽지 않게 하옵소서. 돈이 다 떨어졌나이다.” 요셉이 말하였다. “돈이 떨어졌다면 너희 가축을 가져오라, 내가 너희 가축을 받고 너희에게 팔겠노라.”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가져왔고, 요셉이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양식을 주었으니, 이같이 그가 그 해에 그들 모든 가축을 받고 양식을 주었다. 그 해가 끝나매 그들이 이듬해에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우리 주인에게 숨길 수 없사오니, 우리 주인의 몫으로 넘긴 돈과 가축이 다하였고 우리 주인의 손에 남은 것은 우리 몸과 우리 농토뿐이옵니다. 당신의 눈 앞에서 우리와 우리 땅이 망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와 우리 땅을 받고 양식을 주시며, 우리와 우리 땅이 바로의 종이 되게 하시고 씨앗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살고 죽지 않게 하며 땅이 황무지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이같이 요셉이 이집트의 모든 농토를 바로를 위하여 얻었으니 이는 기근이 너무 심하여 모든 이집트인들이 자기 밭을 팔았음이라. 그리하여 땅이 바로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는 백성을 도시에서 도시로 옮겼으니, 이집트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만, 제사장들의 땅은 취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제사장들이 바로에게서 녹을 받았고 바로가 그들에게 준 녹으로 살았기 때문이므로 그들이 자기 땅을 팔지 아니하였다. 요셉이 백성에게 말하였다. “내가 오늘 너희와 너희 땅을 바로를 위하여 얻었으니, 여기 땅에 뿌릴 씨앗이 있으니라. 추수할 때에는 너희가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내고, 오분의 넷은 너희에게 돌려서 밭의 씨앗이 되고 너희와 너희 식구의 양식이 되며 너희 아이들의 자양분이 되리라.” 그들이 말하였다. “당신이 우리의 생명을 살렸나이다. 우리가 우리 주인에게 은혜를 입었사오니 우리가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요셉이 이집트에 토지 법을 삼았으니, 아직까지도 효력이 있어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속하게 하였고, 다만 제사장들의 땅만 바로의 것이 되지 아니하였다. 이같이 이스라엘이 고센 땅 곧 이집트 나라에 거하였고 거기에서 토지를 얻었으며 생육하고 크게 번성하였다. 야곱이 이집트 땅에서 십칠년을 살았으니 야곱의 수명이 일백사십칠년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죽을 때가 가까이 오매 그가 아들 요셉을 불러 말하였다. “내게 이 은혜를 베풀어 당신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얹어 당신의 신실한 사랑의 맹세로 하라. 나를 이집트에 장사하지 말아 달라. 내가 내 조상들과 함께 쉴 때 나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 그들의 묘지에 장사하라.” 그가 대답하였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겠나이다.” 그가 또 말하였다. “나에게 맹세하라."』 내고 그가 그에게 맹세하였다.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절하였다.

창세기 47:1–20은 야곱의家族が 가나안에서 고센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기록한다. 이 본문은 그들이 떠밀려 옮겨가는 과정에서도 목적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었음을 보여준다. 목자들은 거할 곳을 얻고, 족장은 이방의 왕을 축복하며, 기근은 오히려 언약의 연속성이 드러나는 무대가 된다.

Narration

기근, 이주, 그리고 하나님의 목업의 계속된 실현

창세기 47:1–20은 요셉 이야기의 중심 고리에 해당한다. 풍년의 일곱 해가 끝났고(창 41장 참조), 예언된 기근이 이제 야곱의 가정을 가나안에서 이집트의 고센 지역으로 몰아넣는다. 1절은 전직 수감자였던 자가 이제 온 제국의 행정적 목소리로 섬기는 모습—요셉이 직접 바로에게 보고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놀라운景象이다. 형제들은 목자로 소개되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겸손하고 심지어 의심받는 직업이었다(창 46:34 참조). 그럼에도 바로는 그들에게 '토지 중 최상의 곳'(47:6)을 허락한다. 7절은 요셉이 그의 아버지 야곱을 바로 앞에 세우는 장면이며, 야곱은 바로를 '인사한다'(문자적으로 '축복한다'). 130세의 노령과 약함 가운데, 그 노족장은 이방의 왕 위에 축복을 선포한다. 바로가 그의 나이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야곱의 대답은 솔직하고 피로에 찬 것이다. '내 생애의 해가 적고 고통스러웠나이다'(47:9). 11–12절은 본문의 목회적 중심부를 형성한다—요셉은 자기 가족을 정착시키고 라암세스에서 토지를 부여하며, 직접 '어린 자들'을 먹여 살린다. 이후의 절들(13–20)은 경제적 위기를 간략히 그린다. 돈이 다하고, 가축이 다하고, 토지가 다하여, 마침내 백성 자신까지 바로의 종이 된다. 따라서 이 장은 동시에 두 가지 영역에서 작동한다. 한 수준에서는, 심각한 기근 기간 중의 재정착에 관한 행정적 보고이다. 다른 한 수준에서는, 이는 신학적 진술이다. 곧, 언약의 가 족이 가나안으로 후퇴함으로써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 심김으로써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약속의 땅의 경계에서 멈추지 않고, 그 경계를 넘어선다. 요세푸스는 《고대사》 2.7에서 이 재정착을 신적 섭리로 규정하며, '하나님께서 기근에 의한 이주를 통해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속박을 예시하셨다'고 언급한다. 이 이야기는 이로써 전체 출애굽 서사의 무대를 설정한다. 곧, 소명은 망명을 통해 보존된다.

시공간: 고센의 변두리에서

족장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세겜과 헤브론 주변에 정착하였고, 거기서 가족과 토지와 복의 기초적 목적이 세워졌다.

의미: 이방의 땅에서 어떻게 사명이 보존되는가

세 가지 신학 운동이 '목적과 소명'에 대한 이 본문의 의미를 형성한다. 첫째, 소명은 이주가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를 통해 보존된다. 야곱의 가족은 가나안을 떠남으로써 정체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고립을 잃었다. 바로의 "땅의 가장 좋은 곳" 제공(47:6)과 요셉의 토지 분배(47:11)는 하나님의 공급이 종종 타협처럼 보이는 상황에 포장되어 도착함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라는 부르심(창 12:1-3)은 유예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대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둘째, 소명은 직업을 통해 표현된다. 형제들은 스스로를 목자로 소개하고(47:3), 바로는 구체적으로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가축을 관리하도록 요청한다(47:6). 하나님은 종종 초자연적 징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재능, 필요, 기회의 조화를 통해 소명을 확인하신다. 형제들의 목축 기술은 곧 언약 가족이 생존하고 번영하는 통로가 된다. 셋째, 소명은 세대를 아우르는 Stewardship을 수반한다. 12절은 조용히 깊다. 요셉이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과 아버지의 온 집을 어린 아이들까지 먹였다"는 것이다. 소명은 혼자 감당하는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늙은 부모를, 고투하는 형제를, 연약한 자녀를 포함한다. 야곱이 바로에게 한 피곤한 말—"내 삶의 해가 적고 고생이 많았나이다"(47:9)—는 일생에 걸친 신실함이 그 순간에는 작아 보이지만 돌이켜보면 그보다 더 크게 드러남을 보여준다. 소명은 안락함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으로 측정된다.

적용: 낯선 곳에서의 신실함

창세기 47장은 오늘날 자신의 사명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몇 가지 적용점이 드러난다. 1. 이전을 다시 풀어내라. 만약 하나님이 당신을 옮기셨다면—새 직업, 도시, 결혼, 삶의 단계, 혹은 슬픔의 시기로—그 이동을 탈선으로 해석하지 말라. 요셉의 가족은 가나안으로 후퇴하지 않았고, 고센에 뿌리를 내렸다. 물어라: 이 전환을 통해 위협받지 않고 보존되고 있는 나의 사명이 무엇인가? 2. 자신의 천직을 정직하게 일러라. 형제들이 바로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목자입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더 고귀한 무언가인 척하지 않았다. 사명은 우리가 연기를 멈추고 실천하기 시작할 때 종종 명확해진다. 하나님이 이미 당신에게 주신 재능이 어디에 있으며, 그 재능이 오늘 어떤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고 있는가? 3. "어린 것들"을 돌보라. 12절은 가 장에서 가장 작고 가장 의존적인 가족 구성원을 언급한다. 취약한 자—아이들, 노인들, 고군분투하는 이들—를 무시하는 사명 중심의 삶은 본문이 묘사하는 사명이 아니다. 당신의 천직이 스스로 안정감을 만들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어떻게 안정감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4. 당신 길 위에 있는 "바로들"에게 축복을 베풀라. 야곱은 자신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바로에게 축복했다. 사명에는 영향력이 포함된다. 우리의 힘이 작을 때조차, 하나님이 우리 길 위에 세우시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말에 언약의 무게가 실릴 수 있다. 5. 긴 호(弧)를 신뢰하라. 9절은 정직하다: "내 생애의 해가 적고 괴로웠나이다." 사명은 안녕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 해들이 낭비되지 않음을 보장할 뿐이다. 기근은 혹심했지만 가족은 지속되었다. 당신의 고난의 해들은 목적 있는 해들이 될 수 있다.

되새김

이 있는 고독의 특별한 한 종류가 있다. 밤과 아침을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하는 고난자에게 속해 있는 고독이다. 날들이 흐릿하게 뒤섞인다. 안도가 찾아왔다가도 거의 조롱하듯 다시 한 번 파도가 몰려온다. 이사야의 파수꾼은 그 고독을 알고 있다. 그는 자기 보루에 서서 '낮이면 항상, 밤에는 내 보루에서 망을 봅니다'(사 21:8). 그에게는 자기 교대 근무가 곧 끝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가 보는 것이 참되게 보고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질 뿐이다. 이 장의 위안은 밤이 짧다는것이 아니라, 밤이 지켜보는 자 없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모든 신음을 그치게 하신'(3절) 동일한 주님께서 또한 당신을 위해 파수꾼을 배치해 두셨다. 그러므로 경건의 응답은 떨리는 허리나 혼란스러운 마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파수를 계속 지키는 것이다. 기도라는 보루에, 말씀이라는 보루에, 작은 순종 행위들의 보루에 계속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물어보는 것이다. '밤이 어떻게 되었는가?' 도망치는 자를 떨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방패에 기름을 칠해야 할 때에도 식탁을 차리는 것이다. 파수꾼이 약속하는 아침은 밤의 취소가 아니라 밤의 동반자라고 신뢰하는 것이다. 이른 아침이자 밤이신 분(계 22:16; 21:23)께서 모든 파수꾼를 집으로 거두어 가실 때까지.

자주 묻는 질문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머무르지 않고 이집트에 살게 하셨는가?

두 가지 목적을 위하여: 첫째는 보존(요셉의 조치와 고센의 풍요)이고, 둘째는 형성(이방 땅에서 구별된 백성이 되는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은 종종 이동과 정착 사이에서 역사하신다.

야곱이 바로 앞에서 자신을 '거류자'라고 고백한 것은 소명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소명에 대한 신학을 드러냅니다. 세상에서의 거하는 것이 궁극적인 정체성이 아닙니다. 신자들은 영원한 사명과 복을 안고 세상에서 나그네로 머뭅니다.

요셉이 그의 가족을 고센에 정착시킨 것이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탈이 아니라 확장이었다. 약속의 땅은 결코 취소된 것이 아니라 이방의 토양 속에서 연기되었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약속의 지리학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갔다.

HomeDiscoverBibleStudy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