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고난의 날에 임하는 긍휼의 산들

심판이 높은 자에게 내릴 때, 겸손한 자들은 눈을 들어 하나님의 산을 바라보나니 — 거기서는 고난이 교훈을 만나고, 위로가 흙으로부터 일어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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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이사야 2:1-20

아모쓰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이라. 말일에 하나님의 집의 산이 모든 산 위에 굳게 서서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라. 만국이 그리로 모여들겠고 모든 백성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의 집으로 가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리라. 그가 그의 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리라. 이는 교훈이 시온에서부터 나오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그가 만국 사이에 재판하시리라. 여러 민족을 다스리시리라. 그들이 그들의 칼을 쟁기로, 창을 가위(果實를 베는 것)로 다듬을 것이며. 나라가 나라를 향하여 칼을 들지 아니하겠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알지 아니하리라. 야곱의 집이여,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을 따라 걸어가자. 네가 네 백성의 길을 버렸도다, 야곱의 집이여. 그들이 동방의 술수를 충만히 받았으며, 블레셋 사람과 같이 점복을 처서(白叟의) 아는 것을 행하니, 이방의 풍속을 그대로 행하도다. 그들의 땅에 은금이 충만하니, 그 보물이 무수하니, 그들의 땅에 말(馬)이 충만하니, 그 병거가 무수하며, 그들의 땅에 우상이 충만하니,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숭배하며, 그들이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절(을). 사람이 낮아지게 되며, 남자가 굴복하게 될지라, 그들을 사하지 마옵소서. 바위 틈에 들어가며, 흙(흙의) 속에 숨어서, 여호와의 위엄과 그의 높으신 위엄(威嚴)을 피하라. 사람의 높은 눈이 낮아지겠고, 남부의 교만이 낮아지겠으며, 오직 여호와께서 그 날에 홀로 높으시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겸(矜)이 모든 것을 봉하사, 모든 교만한 자와, 모든 높이는 자가 스스로 거부(擧擧)되게 하시도다. 스며 있는 레바논의 백향목(柏香木)이, 모든 높은 백향목(柏香木)이,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橡)가, 높은 모든 산이, 능(陵)한 모든 작은 산이, 뛰어난 모든 탑(塔)과, 모든 견고한 성벽이, 다시스 배(다시스의 배)와, 모든 고운(美麗한) 배(船)가, 사람의 교만함이 낮아지겠으며, 모든 불(不)한 법제(法的) 부림이 낮아지겠으며, 오직 여호와께서 그 날에 홀로 높으시리라. 우상은 그 수비 다(다) 묵(沒)하게 되겠으며, 사람이 바위 틈으로 들어가며, 땅 구멍으로 들어가는 줄(줄 네째)의 구멍으로 들어가는 줄(줄 네째)을 보(보)며, 여호와의 위엄과, 그의 높으신 위엄(威嚴)을 피하리라, 그(거룩한 자)가 땅을 두렵게 하시러 나아올 때에 하리라. 사람이 그 날에 쥐여(쥐)는 무뚝으로 던지며, 날짐(돼지기)승에게, 저녁(저녁)는 승에게, 그 숭배하기 위하여 만든,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던지리라. 그가 바위 틈으로 들어가며, 바위 돌(돌)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며, 여호와의 위엄과, 그의 높으신 위엄(威嚴)을 피하리라, 그(거룩한 자)가 땅을 두렵게 하시러 나아올 때에 하리라. 이는 사람이 콧(콧은) 바람(바람)에 지나지 못(못)하는즉, 콧(콧은) 바람(바람)에 지나지 못(못)하는 사람(사람은)을 너(너)는 높이다(高度)하지 말라. 그(그의) 경고(經的)에 의해서는 무엇을 말(말)이 그를 칭찬(稱讚)할 만한가?

이사야 2장은 마지막 날의 환상으로 시작하여 급격히 전환된다. 먼저, 평강의 시온 산으로 흘러 들어오는 열방들, 그리고 유다의 우상 숭배와 오만함을 갑작스럽게 드러내며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을 보여준다. 이 장은 고난과 위로를 한 화면 안에 담아두고 있다 — 오만한 자에 대한 징벌과 겸손한 자에 대한 피난처.

Narration

심판의 날, 위로의 산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유다 역사에서 긴장감 넘치는 격변기에 예언했습니다. 나라가 외면적으로는 은, 금, 말, 병거로 번영했으나 그 땅에는 우상들과 이방의 점술 행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이사야 2:6–8). 이 불안한 시기에 하나님은 위안으로 시작하여 대결로 끝나는 환상을 이사야에게 주셨습니다. '마지막 날들'(히브리어: 아하릿 하야밈)은 모든 산들 위에 높임 받은 시온 산, 하나님의 도를 배우러 흘러모이는 열방들, 칼을 보습으로 두드려 만드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 평화가 도래하기 전에, 환상은 스스로 높이고 거만한 모든 것에 대하여 만군의 주께서 예비하신 '날'로 선회합니다(이사야 2:12). 이사야가 선포하는 고난은 임의적인 punishment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정의 고난이며, 오직 하나님만 높임 받으시도록 인간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본문에서 위안은 끔찍한 날의 부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거만한 자들이 쓰러질 때 겸손한 자들이 설 산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역사적으로 이사야의 청중은 앗시리아 팽창의 그늘 아래에 있는 예루살렘과 유다였습니다. 신학적으로 이 예언은 평화의 왕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게 될 메시아 시대로까지 나아갑니다. 요세푸스는 이사야의 동시대인이었던 아하스 왕이 하나님이 제안하신 표적을 거절했다고 기록했는데(고대사 9.12.2), 이는 이사야가 여기서 규탄하는 거만한 거절을 잘 보여줍니다.

시공간: 말세의 시온

예루살렘과 다윗 왕국을 배경으로 제1성전 시대에 이스라엘이 망명, 압제, 그리고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지키려는 투쟁을 통해 고난에 직면했던 시기에 설정됩니다.

뜻: 고난은 훈계의 그림자이다

이사야 2장은 고난과 위안을 뿌리에서 함께 묶어 놓는다. 서막의 신탁은 교훈을 약속한다 — '하나님의 길을 배우며' — 그리고 마지막 신탁은 두려운 징벌의 날을 선포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동일한 아버지의 훈육에 속한다. 이사야가 묘사한 고난은 교육적이다. 하나님은 교만자를 낮추시며 온유한 자를 가르치신다. 따라서 위안은 고통스러운 날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시온의 학교로 들어가는 입학이다. 백성이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들은 스스로에게 가한 일종의 고난이다 — 들을 수 없는 은과 금, 구원할 수 없는 말과 병거. '하나님의 위엄'(이사야 2:10, 19, 21)은 자기 손으로 만든 종교라는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충분한 약이다. 그러나 교만을 향해 천둥처럼 으스러지는 같은 장이 또한 칼이 보습이 되는 산을 약속한다. 고난에는 끝이 있으며, 위안에는 스승이 계시며, 이 둘이 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만난다. 그분은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주의 산이 참으로 모든 민족의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시도록.

적용: 권유의 날에 위안을 찾으라

1) 그 날이 우상들의 이름을 밝히기 전에 먼저 그 이름을 불러라. 이사야는 은, 금, 말, 전차, 그리고 우상들을 열거한다. 성령께 물어라. 너의 안전망 중 어느 것이 사람의 손가락으로 만든 물건인지 보여 달라고 하고, 반석을 뒤흔드는 그 날이 오기 전에 회개하라. 2) 여호와의 빛 가운데로 행하라(이사야 2:5). 이 신탁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초대이다. "야곱의 집아, 오라. 우리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행하자." 행함은 매일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응답이다 — 고난 가운데서도 마음을安稳하게 붙드는 작고 순종하는 발걸음들이다. 3) 반석 속에 자신을 숨기라. 백성들은 "반석 속 깊이 들어가라"고 명령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반석은 언덕 동굴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고린도전서 10:4). 너의 두려움, 너의 교만, 너의 근심 속에 쌓아둔 것들을 가져가 그의 상처 안에 내려놓아라. 4) 점술의 위안을 거부하라. 이사야는 "블레셋 사람처럼 점술함"을 그 나라가 떠내려간 표적으로 이름 붙인다. 오늘날 이에 해당하는 것은 말씀에서 분리되어 확신을 약속하는 어떤 음성이다. 말씀을 우회하는 위안은 하나님의 위안이 아니다. 5) 고난과 위안을 함께 붙들라. 하나가 사라지기 전까지 다른 하나가 오기를 요구하지 말라. 이사야는 그 둘을 한 화면 안에 두었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여호와의 날이 불타는 동안에, 여호와의 산은 초대하고 있다.

되새김

실제로 긍휼이 되는 고난이 있습니다: 아직 변할 시간이 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듣게 되는 고난입니다. 이사야의 시대는 그 긍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땅이 우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신뢰하던 은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기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전차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을 들었고 — 그 날이 도래하기 전에 경고를 받았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 구절들을 풍요의 계절이 아니라 압박의 계절에 읽을 것이며, 그 자체가 조용한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종종 교만이 우리 안에서 그 일을 완성하기 전에 우리 말들을 꺾으시고 우리의 보물고들을 비워십니다. 이사야가 묘사하는 그 날은 현실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이 쓰러졌고, 바산의 상수리나무가 쓰러졌으며, 제국들이興亡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산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것 — 진단, 배신, 후회, 응답 없는 기도 — 무엇이든 그것을 산으로 가져가십시오. 열방은 하나님의 길을 배우러 그 산으로 올라갔고, 당신은 그의 위로를 받으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주의 두려움과 주의 부드러움은 같은 십자가에서 만납니다. 첫 번째 아래에 몸을 굽히십시오. 두 번째 가운데에서 안식하십시오. 교만한 자는 낮아질 것이며, 겸손한 자는 붙들려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기묘한 산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사야기서 2장에서는 어찌하여 위로와 심판이 나란히 놓여 있는가?

하나님의 위로가 흔히 그의 심판을 통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먼저 우리가 기대고 있는 우상들을 부수신 다음, 그의 거룩한 산에서 우리를 다시 가르치십니다.

그 날에 오직 하나님만 높임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모든 높임 — 사람의 교만, 부, 그리고 군사력 — 을 낮추어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신자들은 칼을 보습으로 바꾸는 약속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평화를 힘입어, 먼저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멈추라 — 원망, 시기, 그리고 자기 변명을 그치고 — 그런 다음에 어디에 보내심을 받든 그곳에서 의와 화해를 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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