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죽음의 문 앞에서 기도 배우기: 히스기야의 병상과 회개운동

삶의 끝이 선고되었을 때,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곡한다―그리고 은혜의 십오 년이 그 눈물에서 흘러나온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이사야 38:1-20

그 날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집을 준비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니 이에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오 여호와여 내가 주 앞에서 진실하며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함 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매우 울었더라 때에 이사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보라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를 이 성 곧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건져 내며 이 성을 보호하리라 내가 이루리라 여호와께서 이 일에 너에게 줄 표징은 이러하니 곧 아하즈의 해시계에 나아간 해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였더니 해 그림자가 �도를 물러갔으니 곧 나아갔던 시계의 십도라 유다 왕 히스기야가 그 병이 나을 때에 지은 시라 내가 말하매 내 날의 중반에 음부 곧 스올의 문에 내려가서 나의 나머지 해를 마치리라 내가 이르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보지 못하리니 생존자의 땅에서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내 처소가 뽑혀 나를 떠났으며 목자의 장막 같이 내 생명이 말려 베틀에서 끊어졌나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를 온전히 멸하심이 사자 같았으니 내가 아침까지 소리질렀나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를 온전히 멸하심이 사자 같았으니 내가 아침까지 소리질렀나이다 내 마음이 비둘기 같이 부르겠고 나의 눈이 피곤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았나이다 주여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내 보증자가 되옵소서 내가 무슨 말을 할꼬 내 영혼이 이같이 하였사오니 내가 스스로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나이다 주여 나로 하여금 이 모든 고난을 당하고 내 마음을 살리시며 나를 회복시키시고 나를 살리시옵소서 이는 나의 영혼이 고통스러워서 그러하나이다 주여 내가 이 고난을 당함이 나의 평안이 됨은 주께서 내 생명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시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음이니이다 스올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내려간 자가 주의 은혜를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살아 있는 자가 주를 찬송하겠고 오늘과 같이 내가 주를 찬송하리니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의 진리를 알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라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노를 통곡하며 소리 높여 부르리라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한 덩이를 가져서 그 종기에 붙이면 그가 나으리라 하고 히스기야가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표징이 무엇이냐 하니라

이사야 38:1–20은 히스기야 왕의 불치의 병, 그의 간절한 기도, 그의 삶에 15년을 더해 주신 하나님의 기적적 추가, 그리고 회복을 축하하여 그가 작곡한 감동적인 시를 기록하고 있다. 이 본문은 날것의 고뇌와 신적 위안을 병치시켜, 고난과 위로의 풍부한 초상화를 만들어낸다.

Narration

상황: 예루살렘 궁에서의 생사를 건 순간

히스기야는 고대 근동에 전례 없는 앗수르의 압력이 가해지던 기원전 8세기에 유다를 다스렸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신실하지 못한 개혁가로서 성전의 질서까지 어지럽혔으나, 히스기야는 그 정책들을 뒤집어 참된 예배를 회복하고 주변 열국들에 맞서 하나님을 신뢰했다. 이사야 38장의 역사적 배경은 분열 왕조时期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제1성전' 시기로, 왕이 동시에 정치적 지도자이자 백성의 영적 대표자로서 봉사하던 시대이다. 시나헤립의 기원전 701년 침공 혹은 그 여파로 인한 격변 속에서 히스기야가 위험할 정도로 병들게 되면서 위기가 고조된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섬멸적인 신탁을 전한다. "네 일을 정돈하라, 네가 죽게 되니 나을 수 없느니라." 고대 세계에서 질병은 의학적으로만 볼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인식되었다. 선지자로부터 받은 사형 선고는 심판의 메시지이자 회개의 초대였다. 벽에 얼굴을 돌려 기도한 히스기야의 반응은 방향을 잡고 의도적으로 기도하는 유대교 전통을 반영한다. 그는 선지자와 다투지 않았고, 하나님께 호소했다. 그의 간청은 자기 동정이 아니라 언약적 신실함에 근거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전심으로 행위하였다. 성경은 이 평가를 확증한다. 열왕기하 18:5–6은 "그 후에 나온 유다의 모든 왕 중에 그가 같은 자가 없었으며 그 전에 있던 자 중에도 같지 아니하다"라고 기록한다. 따라서 이사야 38장은 개인적 고난과 왕적 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어서, 한 남자의 병이 하나님이 백성의 고통에 어떻게 관련하시는지를 드러내는 창이 된다. 이 장소는 분명히 다윗 시대 예루살렘에 속하며, 제1성전이 제도적이며 예전적 배경이 된다.

시공간 스냅샷: 왕족의 병상과 해시계의 그림자

선지자들과 바빌론 유배 시대에 배경하며, 예루살렘과 솔로몬 첫 성전 시대의 다윗 왕조 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의미: 고난과 위로의 쌍둥이 선율

이사야 38장은 고난과 위로 사이의 지속적 대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의미는 세 개의 흐름으로 펼쳐집니다. 첫째, 죽음의 선언과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네 집을 정리하라." 히스기야는 분노하지 않고, 협상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그가 기도를 드립니다. 그의 기도는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성경적 애통의 전체 형상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기억("내가 어떻게 주님 앞에서 행하였는지"), 언약적 충성의 인정, 그리고 눈물입니다. 시인은 후에 이것을 이렇게 되풀이할 것입니다: "여호와는 의로운 자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들의 눈물을 멸시하지 않으시리라"(시편 34:17 참조). 이 본문에서 고난은 부인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직하게 받아들여집니다. 히스기야는 두려움이 없는 체하지 않습니다. 그는 "심히" 울었습니다. 죽음의 문전에서 기도하는 것 자체가 믿음의 첫 번째 행위입니다. 둘째, 신적 역전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으로 응답하십니다: 15년이 더해지고,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성의 보호. 아하스의 해시계에서 그림자가 물러나는 표적은 신학적 제스처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때 시간 자체가 굽이집니다. 물러나는 그림자는 위로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암호화합니다—하나님은 단순히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들 주변의 세계를 재편성하십니다. 이사야 38:10은 우리가 소망 없이 스올에 버려지지 않는다는 위대한 성경적 주제를 예고합니다. 왕은 "내 날의 중반에 떠나야 하리라"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네가 아직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위도의 문법입니다: 하나님이 죽음의 문장 속으로 들어와 그것을 편집하십니다. 셋째, 회복된 자의 노래입니다. 10–20절에 있는 시는 구약 중 가장 감정적으로 날것 그대로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을 베틀로부터 끊어진 직조사의 실, 거두어져 싸인 장막, 창에서 울음짓거나 곡조하는 새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리(遊離)의 이미지 속에서 고백이 나옵니다: "내 주여,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숨결이 소생되었습니다." "소생되었다"를 뜻하는 히브리 동사(חיה, 차야)는 옵기 14:14과 에스겔의 마른 뼈 골짜기에 사용된 부활의 그 동일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히스기야의 회복은 단순히 의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적 회복의预示(예고)입니다. 고난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위로는 고난의 소거가 아니라 그 변형입니다. 한때 제비처럼 곡조하던 왕은 이제 찬양의 시편을 부릅니다.

적용: 삶의 골짜기에서 히스기야의 믿음을 실천하기

우리 자신이 말기 진단,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상실, 혹은 긴 고통의 시기를 겪을 때, 이 본문의 위안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이사야 38장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실천을 제시합니다. 첫째, 히스기야의 자세를 따르십시오. 얼굴을 벽으로 향하십시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집중입니다. 선의로 충고하는 목소리들, 친구들의 이러쿵저러쿵 따짐, 끝없이 이어지는 처방전들의 소음을 걷어내십시오. 영혼을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둘째, 언약의 신실하심을 기억하십시오. 히스기야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걸어온 삶으로부터 논증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우리의 논증은 우리 자신의 공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完成了된 사역입니다. 그러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고통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이셨는지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의 과거의 신실하심을 다시 곱씁니다. 셋째, 정직하게 울하십시오. 히스기야는 '심히 울었습니다.' 이사야 38장의 하나님은 눈물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눈물에 응답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위안은 결코 슬픔을 억누르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시편은 래멘트로 가득합니다. 예수님 자체도 우리를 다시 살리실 줄 아시면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눈물은 불신이 아닙니다. 눈물은 침묵하기를 거부하는 믿음의 언어입니다. 넷째, 독선을 품지 않은 채 유예를 받아들이십시오. 추가된 십오 년은 선물이었지 보장이 아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해들을 사용했습니다.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분의 아침을 주실 때, 우리는 그것을 예배와 봉사에 투자할 값진 맡은 보물로 여기며 대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자신의 노래를 작곡하십시오. 히스기야는 시를 썼습니다. 다윗은 시편을 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간증에 말을 붙이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노래가 되고, 우리의 눈물은 잉크가 됩니다. 이리하여 受苦与安慰는 상반된 경험이 아니라, 같은 신적 선율의 서로 얽힌 움직임이 됩니다—때로는 단조, 때로는 장조, 그러나 늘 영원하신 분의 견고한 손 안에 안겨 있습니다.

되새김

모든 신자의 삶에는 선지자의 말문이 닫혀버리는 듯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의사가 어떤 말을 내뱉기도 하고, 벨이 울려 받아들기 힘든 소식을 전하기도 하며, 아무런 예고 없이 슬픔이 닥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표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십오 년의 여명이 더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히스기야의 첫 번째 교훈을 배우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곧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벽은 하나님께로 가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히스기야의 경우, 벽은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집중시키는 면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러한 벽이 필요합니다. 곧 믿음의 눈을 집중시킬 수 있는 문자 그대로의 혹은 영적인 면이 필요합니다. 또한 히스기야의 기도가 자기 의로움을 호소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전혀 담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하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고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 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여기에는 거룩한 절제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울었습니다. 성경적 의미에서의 위안은 눈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눈물 안에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해의 운행을 바꾸시고 왕의 여명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의 눈은 떨어지는 참새를, 그리고 병들어 눕는 왕을 모두 살펴보고 계십니다. 오늘 당신이 어디에 있든, 히스기야의 쇠약해진 몸 위에 생명을 선포하신 분은 바로 골짜기의 그늘에서 당신 곁에 앉아 계신 분과 동일한 분이십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위안이 늘어난 해수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견딜 수 있는 은혜로 올 수도 있고, 끝이 오기 전 영광의 한 빛깔로 올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내가 네 기도를 들었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음성이 지금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복된 왕의 노래가 당신에게 희망의 합창으로 드려집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그 모든 것을 넘어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숨결이 되살아나게 하소서.'

자주 묻는 질문

히스기야의 병은 역사적으로 뒷받침되나요?

예. 이사야 38장은 열왕기하 20장과 평행하며, 역사가 요세푸스는 『고대사』 10권 2장에서 히스기야의 병과 해시계 표적을 독립적으로 기술합니다.

히스기야가 어찌하여 자기의 의로움에 기초하여 기도하는가?

구약의 언약 신학에서 의인은 하나님과의 자신의 언약의 걸음을 간청할 수 있다. 히스기야는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충실히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다.

일광의 해시계에 비치는 그림자가 물러남이 이적이냐?

예.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표적'이라 명백히 부르고 있습니다(이사야 38:7). 그 그림자가 열 걸음을 물러난 것은 자연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개입을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히스기야의 시가 시편과 어떻게 유사한가?

시편에 전형적인 애통과 감사의 혼합 형식을 사용하여 '스올에 내려가야 하리라'에서 '내 생명이 소생되리라'로 나아가는, 고전적인 고난-위로의 구조를 보인다.

HomeDiscoverStudyRead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