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순종이 신뢰의 문을 열 때

레위기 26장의 축복과 경고는 참된 신앙이 맹목적인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 위에 세워진大胆한 신뢰임을 드러냅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레위기 26:1-20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며 깎은 우상이나 석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돌을 두어 그것을 경배하게 말라 나는 영원하신 자 너희 하나님이 됨이니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이는 나 여호와 곧 하나님의 성소이니라 너희가 나의 규례를 행하며 나의 계명을 지켜 순종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때에 마땅히 주리니 땅은 소산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을 것이며 너희의 타작은 포도 베는 때까지 이를 것이요 포도 베는 것은 파종 때까지 이를 것이니 너희가 떡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서 평안히 거할 것이며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주고 너희가 누워서 두려워할 자가 없게 하리니 내가 악한 짐승을 너희 땅에서 제하니 칼이 너희 땅을 지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가 원수를 쫓으면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지리니 너희 다섯 사람이 백을 쫓고 너희 백 사람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원수가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로 번성하고 많아지게 하고 나의 언약을 너희와 견고히 지키리니 너희가 오래 저장한 묵은 곡식을 먹되 묵은 것을 치우지 않으면 새 것을 넣지 못하리라 내가 나의 거할 곳을 너희 중에 세울 것이라 내가 너희를 싫어하는 일이 없으며 내가 너희 중에 행하리니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그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고 너희 멍에 빗장을 꺾고 너희로 바로 걸어 가게 한 자가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이 모든 계명을 행하지 아니하여 나의 규례를 멸시하고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행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마음을 더하여 나의 언약을 파하면 나도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림이니 소비와 열병으로 눈을 멸하고 마음을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가 심은 것은 너희 원수들이 먹을 것이며 내가 너희를 치는 얼굴로 너희 대항하리니 너희가 너희 원수에게 도망할 것이요 너희를 쫓는 자가 없으나 너희가 아직도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의 죄를 인하여 너희를 일곱 배로 더 징벌하리니 내가 너희 교만한 기를 꺾으며 너희 하늘을 철 같이 하고 너희 땅을 놋 같이 하리니 너희 힘이 헛되이 소진될 것이요 너희 땅이 그 소산을 내지 못하며 밭의 나무가 그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순종하기를 거절하면 내가 너희의 죄를 인하여 일곱 배로 더 너희를 칠 것이요 들짐승이 너희 중에 보내어 너희 자녀를 잃게 하고 너희 가축을 멸하며 너희를 적게 하리니 너희 길이 황폐하여지리라 이것들이 오히려 너희를 징벌하지 못하여 너희가 여전히 나를 대적하면 나도 너희를 대적하여 너희 죄를 인하여 일곱 배로 더 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치는 칼을 보내어 내 언약의 보복을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너희 성읍에 모이거든 내가 염병을 너희 중에 보내어 너희가 원수의 손에 넘겨지게 하리라 내가 너희의 양식 떡의 채찍을 꺾으면 열 여인이 너희 떡을 한 풀무에 구워 파秤하여 너희 떡을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리라 그러나 너희가 오히려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여 나를 대적하면 내가 분노로 너희를 치고 나도 너희의 죄를 인하여 일곱 배로 더 징벌하리니 너희가 너희 아들들의 살과 너희 딸들의 살을 먹게 하리라 내가 너희의 산당을 멸하고 너희의 태양상을 찍으리니 내가 너희 시체를 너희 우상 위에 던지리라 내가 내 마음을 너희에게 돌이키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너희 성읍을 황무지로 만들고 너희의 성소를荒凉하게 할 것이요 내가 너희의 향기를 즐기지 아니하리니 내가 그 땅을荒凉하게 하리니 거기 거하는 너희 원수들이 그것을 인하여 놀랄 것이요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으며 칼을 뽑아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 땅이荒凉되고 너희 성읍이 황폐하여지리라 그 땅이荒凉한 동안에 그 모든 때를 지나도록 안식년을 삼을 것이니 너희가 너희 원수의 땅에 거하는 동안에 그 땅이 쉬고 그 안식년을 누리되 그荒凉한 동안에 쉬지 아니하던 안식년을 보충하리라 너희 중에 남은 자 곧 너희 원수의 땅에 거하는 자에게 내가 그 마음에 약함을 더하리니 그들이 쫓기는 잎소리에 놀라 도망하리니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서 도망하듯 넘어질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서로 앞재 정에 걸리어 넘어지리니 너희가 너희 원수를 당하여 능히 서지 못하리니 너희가 열방 중에 멸하리니 너희 원수의 땅이 너희를 삼키리라 너희 중에 남은 자들이 그들의 죄악과 그 조상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 원수의 땅에서 쇠잔하리니 그들이 자기 죄악과 그 조상의 죄악을 고백하되 이는 그들이 나를 거역하고 행하였음이라

레위기 26:1-20은 이스라엘 앞에 상호성의 언약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은 그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약속되어 있으며, 반면에 순종하지 않으면 징벌을 초래합니다. 이 본문은 순종을 통해 표현되는 신앙에 대한 목회적 권면입니다.

Narration

문맥: 모압 평야의 언약

레위기 26장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언약 법규의 절정부적절 단락이지만, 약속의 땅 입구에 아직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곧 모압 평야에서(민수기 26:3; 신명기 1:5) 암송되도록 주어진 말씀입니다. 모세는 한 번도 밭을 소유한 적 없고, 곡식을 거둔 적 없으며, 성벽 뒤에서 편히 잔 적 없는 세대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때를 따라 내리는 비, 타작이 포도 수확을 앞서는 것, 배불리 먹은 빵, 사나운 짐승으로부터의 평강—은 우리 여행의 추상적인 신학이 아니라 바로 생존 그 자체의 문제입니다. 이 장은 축복(1-13절)과 저주(14-20절 및 그 이후)를 교대로 전개하는데, 이는 학자들이 고대 근동의 종주권条约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축복과 저주' 조약 양식이라 부르는 문학적 형식입니다. 여기서 독특한 것은 관계적 틀입니다: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12절). 땅은 보수로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땅은 만남의 장소로서 주어진 것입니다. 지리적 배경—요단 강 동쪽, 여리고 맞은편의 초원—는 이스라엘이 이미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지(요단 영하 13절) 그의 율례를 협상 가능하게 다룰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장소입니다. 요세푸스는 『고대사』 4.8.1-4에서 이 장을 모세의 마지막 권면으로 요약하며,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 전에 울며 순종을 맹세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때는 신앙으로 충만합니다: 한 민족 전체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보이지 않는 땅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시공간: 하나님은 어디에 거하시느냐?

제1성전 시기에 모압 평야와 시내산, 여리고 근처에서 이스라엘의 언약 신앙이 율법과 순종, 약속된 땅의 초기 경계를 통해 형성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의미: 신앙의 형태

레위기 26장은 종종 거래처럼 읽힌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 장 자체는 그런 평면적인 읽기를 거부한다. 복은 요구된 순분에 비해 터무니없이 불균형적이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키고 우상을 피하라고 요구받았고(1-2절), 그 대가로 하나님은 숫자에 비례하지 않는 군사적 승리를 약속하신다—다섯이 백을 쫓고, 백이 만을 쫓는다고(8절). 풍성함과 임재, 그리고 그들이 아직 몸과 기억 속에 안고 있는 이집트의 멍에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하신다(13절). 이 불균형은 그 복이 임금이 아님을 드러낸다. 그 복은 이스라엘이 신뢰하도록 초대받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信仰(믿음)은 세 가지 구체적인 형상을 가진다. 첫째,信仰은 예배의 형상을 가진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신해 어떤 조각된 형상을 대신하는 일을 거부한다(1절). 둘째,信仰은 시간의 형상을 가진다. 안식일을 지키며, 이스라엘이 일을 멈추어도 세계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信仰한다(2절). 셋째,信仰은 미래의 형상을 가진다. 비가 아직 내리지 않은 땅에 씨를 뿌릴 용기를 가지며, 4절의 약속을 신뢰한다. 저주 부분(14-20절)이 이를 모순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뢰의 이 세 가지 습관이 무너질 때—예배가 우상으로 대체되고, 안식일이 거부되며, 미래가 받들어지는 대신 빼앗길 때—삶이 어떻게 되는지를 드러낸다. 19절의 유명한 이미지, 즉 이스라엘의 힘의 교만을 꺾는 것—하늘을 쇠로, 땅을 놋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힘을 약속보다 의지하던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임한다. 그러므로信仰은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날씨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고 信仰하는 백성의 연습된 자세이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모압 평원에 서 있지 않은 우리들이 이 장을 어떻게 거주하며 살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것을 거주하는 방법은 이스라엘이 초대받은 바로 그 방법이다—세 가지 작은 실천이 큰 신뢰의 발판이 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1) 통제의 우상을 거부하라. 첫 번째 명령(1절)은 측정과 계획과 불안에 찬 최적화의 시대에 가장 어려운 명령이다. 우리가 환경이 우리의 신학을 확인해 주기를 요구할 때, 우리는 우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믿음은 그 요구를 내려놓고 '너희 중에 계시는'(12절) 하나님을 신뢰한다. (2) 안식일을 의도적으로 지켜라. 안식일은 우리가 일곱 중 하루 동안 그것을 움켜쥐지 않아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신뢰하는 행위이다. 분주한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밭을 붙드신다는 반문화적 고백이다. (3) 비가 오기 전에 씨를 뿌려라. 이스라엘은 가을 비가 오기 전에 심어야 했다. 믿음은 증거가 도래하기 전에 약속 위에 행한다. '밭'이 직분이든, 관계든, 자녀든, 아직 성취된 것을 보지 못한 소명이든—일기예보가 promising하게 보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언약에 묶으셨기 때문에 그 안에 씨를 뿌려라. 두려움이 일어나고 하늘이 쇠붙이처럼 보일 때, 13절로 돌아가라: 너희 멍에의 빗장을 부러뜨리신 하나님이 바로 '너희로 바르게步行하게' 하시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는 너희의 구속 안에서 스스로를 한 번 증명하셨다; 그러니 밭 안에서도 그를 신뢰하라.

되새김

이 장에서 잠시 천천히 가보라. 스스로를 상상하라. 요단 강 가장자리에 이스라엘과 함께 서 있다고. 뒤를 돌아보면: 종살이, 바다, 시내, 꿀 섞은 과자와 같은 맛의 만나, 반석에서 나온 물. 앞을 보면: 당신이 듣기만 한 것들이 넘쳐흐르는 땅. 모세는 불가능한 축복의 목록을 낭독한다—다섯 명이 백 명을 물리치는 것, 헤아릴 수 없는 풍성함, 친히 그의 장막을 치고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나서 경고들을 읽으면, 공기가 무거워진다. 모든 절 아래 깔린 질문은 같다. '나를 신뢰하겠느냐?' '나를 이해하겠느냐?'가 아니다. '나와 동의하겠느냐?'도 아니다. 나의 안식을 지키고, 나의 대적들을 거절하며, 나의 밭에 씨를 뿌리기에 충분한 믿음이 있느냐. 레위기 26장은 단언한다. 믿음은 당신이 긍정하는 교리가 아니라, 이미 옆집에 이사를 오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당신이 사는 생명이라. 그가 이미 당신의 멍에를 꺾었다. 그가 당신으로 바로 서서 걸어가게 하셨다. 이제 그가 구하시는 것은, 그의 약속들이 당신의 흙에서 뿌리를 내리도록 허락하는 작고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예'이다.

자주 묻는 질문

레위기 26장은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는가?

아니다. 26장의 구조는 순종이 축복의 대가로 치러지는 값이 아니라, 이미 구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외적 표현임을 보여준다. 그가 먼저 속량하시고(v. 13), 그 다음에 순종을 요구하신다. 신앙은 필연적으로 순종의 열매를 맺지만, 순종은 결코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이 친히 세우신 언약에 있다.

순종이 왜 날씨와 농업의 축복을 가져오는가?

고대 이스라엘의 세계관에서 땅, 비, 그리고 추수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구체적인 표지였다. 하나님은 날씨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사가 아니라 자신의 신실함을 자연의 질서 속에 짜 넣으셨다. 이스라엘이 언약 안에서 살 때 그 질서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러나 언약이 깨질 때 그 질서 자체가 증거하는 바가 된다. 이것은 벌이 아니라 결과로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축복은 거래 조건이 아니라 건강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넘치게 하는 것이다.

다섯이 백을 쫓는다는 말은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시적 과장인가?

이것은 고대 근동의 covenant 조약에서 흔히 사용되는 '비례적 축복' 공식의 전형으로, 승리에서의 결정적 요인이 군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독자들은 이를 통계적 비율로 이해해서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곧, 하나님의 백성이 그와 함께 걸을 때, 전쟁의 산술은 그의 능력에 의해 뒤집히게 된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왜 저주에 대해 경고하십니까?

경고는 그 자체로 친절의 행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경고 없이 멸망으로 떨어뜨리시지 않는다. 백성이 넘어지기 전에 돌이킬 수 있도록 그 결과를 분명히 말씀하신다. 저주의 선포는 위협이 아니라 초대이다. "돌이키고 살아라"라고 적힌 문이다. 이것은 구약의 메아리로, 신약에서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희로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라는 고백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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