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라: 우리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믿음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faith가 자정을 지나서도 문을 두드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누가복음 11:1-20

어떤 곳에서 그가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마친 후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과 같이 하옵소서 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르되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밤중에 친구에게 가서 말하되 친구여 빵을 세 덩이 내게 빌려 주라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는데 내가 그 앞에 대접할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상에 있어 줄 수 없다 하겠느냐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사람이 친구라서라도 일어날 줄은 모르나 그의 끈질긴 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에게 필요한 것을 줄 줄이니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마다 받겠고 찾는 자마다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니 또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아들이 떡을 구하는데 돌을 줄며 생선을 구하는데 뱀을 줄며 알을 구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있느냐 너희가 악한 자이면서도 자녀에게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느냐 마침 그가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더니 귀신이 나가고 그 벙어리가 말하니 무리가 놀라나 중에 더러는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 Beelzebub을 힘입어 귀신을 쫓는다 하고 더러는 시험하듯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저들이 생각을 아시는 이라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나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찌 서겠느냐 이는 너희가 나를 말하기를 그가 Beelzebub을 힘입어 귀신을 쫓는다 함이라 만일 내가 Beelzebub을 힘입어 귀신을 쫓는다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만일 내가 하나님의 손가락을 힘입어 귀신을 쫓는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장자가 무장하여 자기 집을 지키면 그 소유가 평안하되 강장자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이기면 그가 의지하였던 갑주를 다 빼앗기고 재물을 나누어 주느니라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라 불결한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간 후에 물 없는 곳을 지나며 안식을 구하다 얻지 못하므로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돌아가 보면 그 집이 비고 깨끗하니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거기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리라 그가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의 한 여인이 소리를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무리가 모이매 이르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주지 아니하리라 옛적에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나니 이보다 더 큰 자가 여기 있느니라 심판 때에 이 세대의 사람들이 남방 여왕과 함께 일어서 condemn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라 이보다 더 큰 자가 여기 있느니라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이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오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니 네 눈이 순전하면 온 몸이 밝으나 만일 네 눈이 악하면 온 몸이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을 보라 네 온몸이 밝아서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네게 비치듯 온전히 밝으리라 마침 그가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먹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바리새인이 보奇异히 여기니 이는 그가 점심 전에 먼저 씻지 아니함이라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이 잔과 접시의 겉을 깨끗이 하되 그 안은 탐욕과 악의가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밖을 만드신 이가 안을 또한 만드신 것이 아니냐 그러나 알퐈

누가복음 11:1-20에는 제자의 청유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은 표본기도로 응답하시고, 이어서 한밤중의 친구에 대한 비유로, 그리고 구하고 찾아보고 문을 두드리면 결코 헛되지 않다는 약속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賜하시기 때문입니다.

Narration

배경: 갈릴리 언덕의 기도 학교

누가복음 11장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물러나서 두 손을 모으시고 고개를 숙이시며 마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분이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아버지께 말씀하시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끝난 후 그들 중 하나가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요청은 예수님께 있어서 기도가 종교적 기술이 아니라 배워야 할 관계임을 드러냅니다. 누가복음 6장 12절은 이미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주님의 기도 생활은 사적인 사치가 아니라 제자들이 호흡하던 공기였고, 이제 그들도 그 공기를 호흡하고 싶어 했습니다. 제자들의 요청인 "요한도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과 같이"이라는 은 오늘날의 기도를 가르치는 사건을 광범위한 운동 속에 위치시킵니다. 세례 요한은 추종자들을 모아 의례적 형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대답으로 그들에게 기도를 주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학교를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 내미들, 좋은 선물을 주시는 아버지 하문, 벙어리 귀신을 내쫓는 말씀 내미들은 교과 과정입니다. 각 비유는 믿음의 다른 측면을 가르칩니다. 한밤중의 친구는 끈기를 가르치고, 떡과 생선으로 먹이시는 아버지는 관대하심을 가르치며, 귀신 쫓아내기는 기도가 시가 아니라 능력임을 가르칩니다. 역사적 배경은 후기 제2성전 시기로 대략 서기 27-30년입니다. 요세푸스는 이 시대를 메시아적 희망, 기적 행하는 자, 귀신 쫓는 자들로 붐볐던 시대라고 묘사합니다. 고대사 18권 2장 2절은 "유대인들 사이에는 귀신을 몰아낸다고 사칭하는 많은 어리석은 자들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 영적 능력의 붐비는 시장에서 예수님의 기적들, 그리고 특히 기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초자연적 현상을 하나님의 일상적이고 계약적인 아버지됨에 정박시키기 때문에 특별히 두드러집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갈릴리 언덕은 여기서 지리적으로 특정되지 않으나, 누가복음 9-19장을 관통하는 예루살렘으로의 여정 맥락에서 이 가르침은 길에서, 사마리아 지역이나 팔복산과 이스르엘 골짜기 사이의 낮은 갈릴리 언덕 지역에서 주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 지식 보물고가 수집한 상호 참조 성경 구절들이 이 맥락을 강조합니다. 시편 19편 14절(득표수=12)은 "나의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서 받으실 만하게 되기를 구하오니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자이시니이다"라고 구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완벽한 보충입니다. 로마서 8장 26-27절(득표수=9)은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여 주신다"고 묘사하며, 이것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에 정확히 부합하는 신학적 메아리입니다. 유다서 1장 20절(득표수=9),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 내미들과 야고보서의 후기 통찰(유다서가 이를 인용함), 곧 "너희가 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야고보서 4장 2절)는 말씀은 정전적 합창을 완성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선택적인 경건이 아니라 새 피조물의 호흡 그 자체입니다.

때와 장소: 자정녘의 바람, 여전히 켜져 있는 등불

복음서 시대에 뿌리를 둔 신앙 묵상,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신 갈릴리 바다와 사마리아 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의미: 신앙의 세 가지 층위

누가복음 11장 1-20절은 신앙에 대한 다층적인 신학을 펼쳐 보여준다. 각 층은 제자들이 말없이 품고 있던 서로 다른 질문에 응답한다. 첫 번째 층: 응답으로서의 신앙. 기도의 시작은 '아버지'이다. 본보기 기도의 첫 단어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관계 형성이다. 신앙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정확한 명제를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 이 말 뒤에 숨겨진 아람어 '아바'는 종이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사용하는 친밀한 음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외로 '전능하신 자여'로, 또는 고백으로 '거룩하신 자여'로 시작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신다. 신뢰로 '아버지여'로 시작하신다. 신앙은 그 가장 깊은 뿌리에서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그것을 진심으로 의미하는意愿이다. 이어지는 이름의 거룩함은 모순이 아니라 확인이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기에 그 이름은 거룩하다. 그 이름이 거룩하기에 우리는 감히 그를 아버지라 부른다. 두 번째 층: 청구로서의 신앙. '우리에게 날마다 우리 날의 양식을 주옵소서.' 신앙은 구체적인 것을 구한다. 헬라어 '에피우시오스'는 '매일의'라는 뜻인데, 헬라 문헌 어디에서도 다른 곳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거의 만들어진 단어이다. 이것은 아마 '올 날을 위한' 혹은 '오늘 하루를 충족할'이라는 뜻일 것이다. 신앙은 막연한 영성이 아니다. 신앙은 필요를 날마다 이름 붙이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보통의 것을 존엄하게 만든다. 빵을 돌보시는 아버지는 우리 날의 작은 일들도 돌보신다. 큰 영적 돌파만을 구하고 장보기 목록은 무시하는 신앙은 그 발판을 잃은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하루의 질감 속에 짜 넣도록 가르신다. '주여, 오늘 우리에게 일일의 양식을 주옵소서.' 세 번째 층: 끈기로서의 신앙.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세 동사는 동의어가 아니다. 점진적이다. 구하는 것은 마음의 기도이다. 찾는 것은 활동적인 의의의 기도이다. 두드리는 것은 기도에 뒤따르는 행동이다. 신앙은 말에서 생각으로, 생각에서 행위로 나아간다. 한밤중에 친구의 비유는 신앙이 어둠 속에서도 계속 구해야 할 수 있음을, 답이 온 것처럼 보여도 계속 찾아야 함을, 문이 닫힌 것처럼 보여도 계속 두드려야 함을 보여준다. 약속은 첫 번째 두드림이 문을 여는 것이 아니다. 계속 두드리는 사람이 문이 열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헬라어의 문법은 현재-진행형이다. '구하는 사람에게는 곧 구히여진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는 구함이며, 끊임없는 찾음이며, 끊임없는 두드림이다. 절정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더 성령을 주시겠느냐'는 세 층을 함께 묶는다.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 성령은 차례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법을 가르치시고(로마서 8장 15절 '아바 아버지' 참조),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시며(롬 8장 26절), 계속 구하며 찾으며 두드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신앙은 우리의 노력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성령의 선물이시며, 구함으로 받으며, 끈기로 표현되며, 예수님이 1절에서 본보기로 보여주신 그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절정에 이르는 것이다.

적용: 오늘 밤부터 문을 두드리라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자세를 갖는 것이다. 그 자세는 문 앞에 있다. 이번 주에 누가복음 11:1-20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지 알려주겠다. 첫째, '아버지'로 시작하는 법을 배워라. 이번 주에 다른 무엇을 기도하기 전에 오직 그 한 단어만을 기도하라. '아버지.' 열 번 말하라. 깨어날 때 말하라. 뉴스가 너를 두려워하게 할 때 말하라. 다른 어떤 것도 기도할 수 없을 때 그것을 말하라. 그 호명이 너의 기도의 실질이 되게 하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로 넘어가지 말라. 주께서 너의 아버지이심을 맛보게 될 때까지. 로마서 8:15와 갈라디아서 4:6의 상호참조가 이것이 우리 안에서 성령의 외침임을 확증한다. '아버지'라고 기도하는 것은 성령이 너를 통해 기도하시게 하는 것이다. 둘째, 매일 하나의 구체적인 필요를 이름 붙여라. '매일의 양식'이라는 줄은 작은 것을 청해도 좋다는 예수님의 허가증이다. 수요일에 면접이 있는가? 수요일의 양식을 구하라. 금요일에 어려운 대화가 걱정되는가? 금요일의 양식을 구하라. 우주적인 축복만을 구하면서 눈앞에 놓인 한 잔의 물을 무시하는 믿음은 그 용기를 잃은 것이다. 부끄러울 정도로 구체적으로 구하라. 아버지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지켜보라. 일기장에 매일의 양식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얼마나 자주 임하는지 적어두라. 셋째, 기도의 '자정의 시간'을 정하라. 이번 주에 하루 밤을 골라 평소 그만둘 법한 시간을 지나서까지 기도하라. 한밤중에 찾아온 그 친구는 열 시에 포기하지 않았다. 열한 시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첫 번째 졸린 항의에서 멈추지 않았다. 믿음이란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다'라는 목소리가 들릴 때도 계속 노크하는 것이다. 친구의 회심, 자녀의 귀가, 결혼의 치유, 만성 질환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지 모른다. 파수꾼의 시간을 정하라. 계속 노크하라. 예수께서는 문이 닫히는 것을 믿음의 시험과 직접 연결시키신다. 문이 닫힐 때, 믿음이 가장 필요해진다. 넷째,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 이 본문의 절정(絶頂)은 응답받은 기도가 아니라 주어진 성령이다. 많은 신자들은 구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구하는지 이름 붙이지 않는다. 매 기도 시간이 끝나기 전에 잠시 멈추고 단순히 이렇게 말하라. '아버지, 당신의 성령을 내게 주소서.' 다음 청원으로 서두르지 말라. 성령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언약에 따른, 구체적인 응답이다. 성령을 구하는 것은 다른 모든 응답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을 구하는 것이다. 다섯째, 빛과 어둠의 충돌을 기대하라. 벙어리 귀신이 쫓겨나는 기적(절 14-20)은 우연히 이 기도의 가르침에 덧붙여진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믿음은 귀신을 물리치는 믿음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저 본격적인 기도하기 시작하면, 환난이 거세짐을 발견할지 모른다. 그래도 기도하라.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진다. 성령에 의해 결합된 믿음의 집은 견딘다.

기도와 조용한 한마디

주 예수님, 갈릴리의 밤에 기도하시고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그분, 다시 우리를 가르쳐 주소서. 우리는 주님을 주라 부르면서 마치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떡을 구하면서 주님께서 그것을 떼어 주시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 번 노크하고 침묵을 듣고는 돌아섰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우리의 얼굴을 그 문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다시 노크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노크할 것입니다. 그리고 문 안쪽에, 이미 일어나 계시고, 이미 불을 지피시고, 이미 떡을 헤아리고 계신 분이 주님께서 아바라 부르신 아버지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아버지의 선물, 주의 영을 우리에게 주소서. 오늘 밤 우리가 드린 기도가 우리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곳보다 더 멀리, 우리를 위해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시는 영이 계신 보좌 앞까지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자주 묻는 질문

아버지가 선하시다면, 왜 즉시 응답하시지 않고 우리가 반복적으로 구하게 하시는가?

예수님은 꺼리는 아버지를 묘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인 아버지를 묘사하십니다. 구함과 찾음과 두드림은 구하는 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아버지는 신뢰를 깊게 하기 위해 충분히 오래 붙잡고 계시다가, 그 다음에 주십니다. 가장 적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시는데, 성령 스스로가 우리의 구함이 되십니다. 한밤중의 친구 비유가 보여주듯이, 끈질긴 기도는 신적 꺼림에 대한 우회로가 아니라 믿음의 학교 그 자체입니다.

In the parable of Friend at Midnight, who is the friend, and who is the petitioner?

잠에 취한 집주인은 '친구'가 되고, 여행자를 데리고 막 도착한 사람이 구하는 자가 됩니다. 핵심은 신분이 아니라 그 단어, 곧 'anaideia'—뻔뻔한 끈기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뻔뻔하게 구하는 자가 되라고 가르시고, 아버지께서도 그 마지못해 하는 친구 뒤에 있는 주시는 분이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못해 하는 이웃이 끈기 때문에 일어나거든, 하물며 더 기꺼이 주시는 아버지는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하루의 양식을 구하는 것이 성령을 구하는 것과 모순이 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2-4절은 기도의 내용을 제시하고, 13절은 그 능력을 제시합니다. 성령 없이 빵을 구하는 것은 단순한 생존에 불과하며, 일상의 필요를 이름 짓지 않고 성령만 구하는 것은 육체를 벗어난 영성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함께 엮으십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구하듯 빵을 구하고, 아버지의 가장 좋은 선물이신 성령을 받으십시오. 이 두 가지 간청은 한 기도 생활에 함께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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