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빈 무덤과 알아보지 못한 동행자: 불안에서 신뢰로

돌이 치워졌으나 믿음의 눈이 아직 닫혀 있을 때, 무너지는 마음으로부터 어떻게 신뢰가 피어오르는가.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누가복음 24:1-20

그러나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그들이 향품과 유향을 준비하여 무덤에 이르니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서 주 예수의 시체를 찾아내지 못하고 힘써 찾다가 그 옷이 놓인 곳을 본 곳이 빈 것을 보며 이것을 보고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에서 급히 나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그의 제자들에게 알리러 가는데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를 찾느니라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그를 보리라 하였더라 그들이 무덤에서 급히 나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그의 제자들에게 알리러 가는데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강이 너희에게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나아와 그 발을 잡고 예배하니라 그들이 기뻐하고 의심하던 중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이러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였더라 마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기타与他们同在的妇女이 이 무덤에 이른 아침에 이르러 이 일을 보고 무덤에 간 것이라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기타 모든 이에게 알렸더니 그들이 이 말을 허탄한 말로思하여 믿지 아니하더라 베드로가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그 옷만 놓인 것을 보고 그 일어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더라 그 날 그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렛에서 일백십 리 되는 에마오라 하는 촌락으로 가면서 이 모든 일을 서로 의논하더라 그들이 서로 말하고 의논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사 함께 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시더라 가라사대 너희가 서로 의논하면서 가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여 묻는대 한 사람인 클레오바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렛에 거류하는 중에 홀로 그 이 날들 동안에 된 일을 알지 못하느냐 하니 가라사대 무슨 일이냐 하시니 저희가 가로되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하시고 말하시기에 능력이 있는 선지자였으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그를 죽이려고 잡아 가로되 무슨 일이냐 하시니 저희가 가로되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하시고 말하시기에 능력이 있는 선지자였으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그를 죽이려고 잡아 벌주어 십자가에 못 박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자라고 바랐었나니 이 모든 일이 오늘날까지 벌써 사흘이 되었도다 그 외에 우리 중에 몇몇 여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으니 이 여자들이 아침에 무덤에 가서 그의 시체를 찾아내지 못하고 와서 영의 나타난 것을 보았다 하되 그가 살아계시다고 하더라 우리와 함께 있던 자 중에 두세 사람이 무덤에 가서 여자들의 말과 같이 보고 그를 보지 못하더라 가라사대 너희는 어리석은 자와 마음이 믿는 데 느린 자여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다 믿는 자가 되려면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을 당하고 그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고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로 시작하여 성경에 자기 관한 모든 일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들이 다 가서 이 마을에 가까이 왔을 때에 예수는 더 가시는 것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소서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거의 기울었나이다 하니 저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 저희와 함께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떡으시며 저희에게 주시니 그 때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를 알아보시니라 예수는 저희의 눈에서 사라지신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중심이 뜨겁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그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 열한 제자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모여 이르되 주께서 참으로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그들이 길에서 된 일와 떡을 떼시는 줄에 그의 알린 바 되었던 것도 말하더라 저희가 이 말씀을 할 때에 예수가 친히 그 중에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며 두려워하여 장차 보던 영으로 생각하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겁을 내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영은 살과 뼈가 없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며 손과 발을 보여 주시니 그들이 기뻐서 이상히 여기는 중에 의심하던 중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구운 생선 한 조각을 주니 취하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할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이르시되 이렇게 기록된 바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하였고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할지라

누가복음 24:1-20장에는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아침, 천사가 예수의 말씀을 상기시킨 일, 사도들의 불신, 그리고 엠마오 길에서 알아보지 못한 그리스도를 만난 클레오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의심과 빛나오는 신앙이 엮인 직물입니다.

Narration

배경: 유월절 아침 예루살렘

안식일 바로 다음 날이 주 첫날이었다. 무덤에 찾아온 여자들은 금요일 저녁에 향료와 향유를 준비한 뒤 율법에 따라 안식했다(누가복음 23:56 참조). 그들이 이른 새벽—아직 어둠이거나 막 밝아오기 시작할 때—무덤으로 향한 길은 Kidron 계곡을 지나 성벽 밖의 동산 무덤까지 이르는 길이었다. 아리마대 요셉의 새로 깎인 바위 무덤이 바로 그곳에 있었고(누가복음 23:53), 큰 돌로 막혀 있었으며 로마 군인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마태복음 27:60, 65). 클레오파스와 그의 동행자가 그날 나중에 걸으며 가게 된 엠마오 마을은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약 7마일)——하루 거리——떨어져 있었으며, 거의 확실히 유대의 기슭을 향해 해안 평야로 이어지거나 유대의 셰펠라를 향해 내려가는 오래된 길변에 있었다. 제자들의 영적 분위기는 무겁기만 했다.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희망이 금요일에 죽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스스로 흩어졌고, 베드로는 그의 주를 부인했다. 이러한 절망 속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가까이 나아오셨다. 그러나 ‘ 그들의 눈이 막혀서 그를 알아보지 못 하였다’ (누가복음 24:16). 그리스어는 신적 억제(theopneustos restraint), 곧 신적 금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들의 질문들을 통해 먼저 함께 걸어가시도록 하기 위해 인식을 억제하셨다.

시공간: 새벽빛, 무덤,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먼지 덮인 길

다윗 시대의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거룩한 도시로 다윗 왕이 그의 왕좌를 세운 곳이며 후일 예언적이고 구원적인 사건들이 펼쳐지는 곳.

의미: 불안한 의심에서 신뢰로의 전환

누가복음은 이 본문에서 신앙에 대한 세 가지 초상을 엮어냅니다. 첫째, 여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말씀하신'(ἐλάλησεν) 것을 기억합니다. 곧 인자가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째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열한 제자입니다: 여인들의 증언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그것이 '헛소문'(λῆρος)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헬라어는 본래 '어리석은 넋두리' 혹은 망상의 발작을 뜻합니다.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ἠπίστουν). 셋째, 클레오파입니다: 그는 나그네에게 묻습니다—'예루살렘에 머무는 당신 혼자서 이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는 자이니이까?'—그의 질문 자체가 아직 성경이 그에게 열리지 않았음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신앙은 의지가 의심 위에 거두는 승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계속 걸어갈意愿이 있는 마음이 천천히 굴복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 위에서 하시는 말씀은 누가-사도행위 전체의 해석 열쇠가 됩니다: '그리스도가 이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시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였느냐?'(24:26). 헬라어 δεῖ는 신적인 필연을 담고 있습니다—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십자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뢰란, 상실처럼 보이는 일들이 아버지의 더 큰 목 안으로 짜여 들어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클레오파와 그의 동행자는 마침내 나그네에게 날이 기울어가고 있다고 함께 '유숙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들이 떡을 떨 때 예수님을 영접하며, 그들의 눈이 열립니다. 인식의 헬라 동사 ἐπάγων은 오직 신적 계시만이 베일을 벗겨낼 수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본문의 끝에서 그들은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타오르'였는지(24:32) 더듬게 될 것입니다.

적용: 볼 수 없을 때 그와 함께 걸음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1. **향을 가지고 계속 나타나라.** 그 여자들은 미리 향료를 준비했고(눅 23:56), 때가 되었을 때에도 그들이 가져온 것은 그들의 과제가 이미 망한 것처럼 보일 때조차 가져왔다. 사랑은 이해하기 전에 순종한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이미 신실함의 계절—식사, 쪽지, 조용한 방문—을 준비해 왔으나 너무 늦었다거나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그래도 가져오라. 하나님은 종종 부활의 소식을 가지고 무덤에서 우리를 만나신다. 2. **상기하심을 받으라.** 천사들이 말한다, "너희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한 것을 기억하라."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길 때 신앙이 자라난다. 이 장에서 기억하는 행위들(여자들의 기억, 클레오바의 성취된 성경을 기억하는 것, 나중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음을 기억하는 여행자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건설적이다. 그것은 영혼의 구조를 다시 세운다. 이번 주에 복음서를 마치 당신이 처음 이 제자들인 양 다시 읽으라. 3. **스스로 클레오바가 되기를 허락하라.** 만약 주님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솔직한 대답이, "당신만이 이것을 모르는 유일한 사람입니까?"—즉, 당신의 의심은 크고, 소망은 얇다—라면 그렇게 말하라. 클레오바는 그의 마음을 말했고, 예수님은 계시 속으로 그와 함께 걸으셨다. 그는 느린 마음을 꾸짖지 않으실 것이다(참조: 눅 24:25, "어리석은 자들이여, 마음이 느린 자들이여,"는 뒤따르는 것과 함께 읽으면 부드럽다). 당신의 슬픔을 그 길로 가져오라; 그분은 그것들에 동참하시는 습관이 있으시다. 4. **'함께 있어 주십시오' 할 공간을 만들라.** 제자들의 초대—"우리와 함께 있어 주십시오, 날이 벌써 기울었나이다"—는 신앙의 문이다. 우리는 인식을 강요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식탁을 차려 그분이 앉으시기를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성찬에서, 모여 있는 교회 안에서, 서두르지 않는 기도 안에서, 이 패턴이 되풀이된다. 우리가 요청한다. 그분이 빵을 떼신다. 눈이 열린다. 불꽃이 다시 타오른다. 5. **서로에게 '이 모든 일들'에 대해 말하라.** 엠마오 도로는 상호 사역의 모범이다: 두 제자가 슬픔을 대화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그 바로 그 맥락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오신다. 소그룹, 아침 산책, 커피 마시는 동안의 솔직한 대화—이것들은 부활 이후 신앙의 구조들이다. 신실한 동반자와 함께 걸음은 예수께서 regularly His 백성을 만나시는 곳이다.

되새김

이 본문에는 놀라운 동사가 하나 있다—제자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의논했는데, 예수님은 '가까이 오셨다.' 그들의 대화를 묘사하는 그 그리스어 어근 sun-('함께')이 바로 그분의 다가오심을 묘사하는 데도 쓰인다. 하나님은 종종 그분을 사랑하는 두세 사람이 슬픔 속을 함께 걸을 때 가까이 오신다. 나도 엠마오로 가는 길처럼 느껴지는 계절들을 겪었다: 걸을수록 희망이 메마르고, 해가 무거워지고, 질문들이 하늘에 매달리는 그런 때들. 그런 계절에 내가 했던 가장 신앙적인 행동은 바로 누구와 함께 계속 걸어가는 것과, 그 질문들을 소리 내어 계속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제자들은 내가 천천히 읽기 전에는 알아채지 못한 놀라운 선물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구원한 바로 그 것은, 일어난 일들을 그 날카로운 모서리들까지 모두 드러내어 이야기할 용기였다. 그들은 낯선 사람 앞에서 슬픔을 포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를 심히 놀라게 한 어떤 여자들이 있었습니다—그분이 살아 계시다고 하는 천사들의 환상을 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분이라고 소망했습니다.' 그것은 혼란스러운 소망의 고백이다. 예수님의 대답이 교정이 아닌 동행임을 주목하라: 그분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풀어 설명하셨다'—그분은 그들과 함께 성경을 지나가셨다. 어쩌면 당신의 빈 무덤은 돌이 굴려진 발견이 아니라, 지연된 약속, 닫힌 소명, 아직 당신의 기도에까지 이르지 못한 육신의 경험일 수도 있다. 어쨌든 걸으라. 그 낯선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라. 준비한 것으로 다시 시작하라. 신앙의 장은 빈 무덤만으로 닫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줄곧 우리 옆에서 걸어오고 있었음을 우리가 깨닫는 그 순간에 닫힌다.

자주 묻는 질문

여자들은 왜 무덤에 향품을 가져갔는가? 그들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잊었단 말인가?

향료는 유대인의 장례 풍습에 따라 준비되었으며(참조 누가복음 23:56), 장사 다음 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평범한 경건함에서 왔으나, 예수님의 예고된 부활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부분적인 잊음이 바로 천사들의 상기시키는 말-'그가 너희에게 어떻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이 필요한 이유가 됩니다. 믿음은 기억함으로써 다시 세워집니다.

제자들이 왜 여인들의 증언을 '헛된 말'(레로스)로 치부했는가?

그리스어 '레로스'는 무의미한 말 또는 황홀한 잡담을 의미합니다.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의 위계를 뒤집으십니다. 이러한 '신뢰할 수 없는' 여성들이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아이러니는 신앙이 문화적 지위가 아니라 받은 은혜로부터 솟아오른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킵니다.

두 제자가 엠마오 도상에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복음 24:16은 명시적으로 말합니다, '他们的眼睛模糊了, 不认识他'—하나님의 억제, 다메섹 도상의 사울과 같습니다. 이 은폐는 교육적입니다: 그분은 먼저 성경의 해석 안에서 그들을 만나시고, 그 다음 식탁에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눈으로 확인되기 전에 말씀으로 믿음이 세워집니다.

Luke 24:1-20에서 믿음과 신뢰는 어떻게 하나로 결합되는가?

믿음(피시스)은 증거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신뢰는 아직 분명하게 보지 못하면서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이다. 부활의 발견은 믿음의 출발점이지만, 걸어가며 대화하며 예수님을 "함께 거하라"고 초대하는 것은 신뢰의 표적이다. 믿음은 눈이 받아들이는 것이요, 신뢰는 발이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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