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말세의 그늘 아래서 믿음과 신뢰를 굳게 붙잡음

계시록의 나팔이 울려 퍼지고 심연의 메뚜기들이 쏟아져 나올 때, 인 봉인된 성도들이 여전히 폭풍 위에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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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요한계시록 9:1-20

제다섯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한 별이 보이니 그에게 무저갱의 열쇠를 주셨더라 그가 무저갱을 열매 그 속에서 굴뚝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니 해와 공기가 그 갱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그 연기로부터 메뚜기들이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의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 해하라고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 말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하라고 명하신지라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물 때의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들에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되 능히 죽지 못하고 죽고자 하되 죽음이 도망하리라 그 메뚜기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과 같고 그 머리에 금류관 같은 것들이 있어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으며 그 머리털은 여자의 머리털 같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그 갑옷은 철갑 같고 그 날개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마병이 전장으로 달려가는 소리 같더라 그들이 전갈과 같은 꼬리와 침이 있어서 그 꼬리 안에 능력이 있어 다섯 달 동안 사람을 해하는 권세 있으매 그 위에 왕이 있으니 곧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아바돈이라 헬라어로 이름은 아폴루온이라 하더라 첫 재앙은 지나갔으되 보라 두 재앙이 아직 후에 오리라 그리고 제여섯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제여섯 나팔 가진 천사에게 말하되 대강 유브라데에서 묶인 네 천사를 풀라 하더라 그때와 날과 달과 해를 위하여 예비된 네 천사가 사람들 중 삼분의 일을 죽이려고 풀린지라 그 마병대의 수는 내가 들으니 이만 번이요 내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과 푸른빛과 유황으로 만든 갑옷을 입었고 그 말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불과 연기와 그 입에서 나오는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들 중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그 말의 권세는 그 입에 있고 그 꼬리에 있나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머리가 있어 그로 해를 끼치더라 이러한 재앙에 죽지 못한 남은 사람들이 그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또 demons를 worship하지 아니하고 금과 은과 놋과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을 worship하지 아니하니 그것은 능히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다니지도 못하는 것이며 그 살육과 술수와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요한계시록 9장 1-20절은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심판을 기록합니다. 별 하나가 떨어져 무저갯 열쇠로 무저갯을 열고, 악마의 메뚜기들이 천사 바쁜(아볼론)의领导下 무저갯에서 나와 하나님의 인장 받지 못한 자들을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합니다. 그런 다음 유브라데 강에 매여 있던 네 천사가 놓아 세째 사람들을 죽이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은 심판을 한정하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며 강퉁퉁한 마음들조차 회개로 부르시는 주권적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Narration

요한이 밧모 섬에서 받은 환상

사도 요한은 1세기 말 로마의 박해 아래 다모스란 바위섬에서 유배 중에 이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 환상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어진 apocalypse 문학의 일부이며, 9장은 하나님의 종말시대의 심판을 펼치는 일곱 나팔의 더 큰 연쇄 안에 놓여 있습니다. 심연으로부터 나온 메뚜기의 imagery는 애굽에 내린 여덟 번째 재앙(출애굽기 10장)과 요엘의 예언적 메뚜기 침략(요엘서 1-2장)을 반향하며, 유브라데 강에서 묶인 천사들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의 고대 boundary와 네 가지 심판의 바람의 해방(요한계시록 7:1)을 상기시킵니다. 요한의 원래 청중—사회적 따돌림, 경제적 압박, 황제 숭배의 위협에 직면한 1세기의 신자들—은 이 환상을 세상에 대한 경고이자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Abandon하시지 않았다는 위로로서 들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시대는 박해를 받는 초기 교회가 예고한 모든 것의 성취의 시대입니다. geography는 요한이 환상을 받은 다모스에 중심을 두지만, 상징은 창조된 온 세계에 걸쳐 펼쳐집니다—땅 아래 심연으로부터 하나님 앞 하늘의 제단까지.

시공간 메아리: 이집트의 재앙부터 종말의 나팔까지

�도 끝도 없는 이 시대가 완성되는 가운데, 궁극적 현실이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계시된 바, 밧모 섬에서 받은 환상이라.

의미: 심판 가운데 나타난 믿음과 신뢰

요한계시록 9장의 신학적 핵심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사악한 악의 현실 사이의 충돌이다. 이 장은 종말론 문학의 많은 부분을 관통하는 질문, 즉 심연이 열릴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냐는 물음에 답한다. 그 답은 다층적이다. 첫째, 열쇠는 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다—구덩이는 오직 하나님의 허락하에서만 열린다(고통 잡과 2장 6절과 비교하라.那里 사탄도 욥을 괴롭히려면 하나님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둘째, 범위는 제한된다—메뚜기들은 괴롭힐 수는 있어도 죽일 수는 없으며, 인침 받지 않은 자들만 건드릴 수 있고, 그들의 통치는 다섯 달로 정해져 있다. 셋째, 이 메뚜기들의 왕의 정체—히브리어로는 아바돈, 헬라어로는 아폴리온—은 파괴자를 지칭하지만, 그조차도 열쇠를 주시는 하나님께 복종한다. 넷째, 그리고 가장 엄숙하게도, 이 장은 비극적 후렴으로 끝난다. "그 남은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행한 일들을 회개하지 않았다"(9:20). 심판은 마음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을 거부하면 오히려 마음이 굳어진다. 신자들에게 이 본문은 신앙이 무시무시한 상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제한하시고 자기 백성을 인치며 심연조차 회개로 불러들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임을 가르준다. "하나님을 아는 것"(신학적 용어 Knowing God과 비교하라) 은 여기서 공포의 이면에서 하나님의 손을 인식하고, 이마의 인이 전갈의 꼬리에서 오는 쏘김보다 더 강함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면의 인이요, 신뢰는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을 예배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외적 태도이다.

적용: 오늘날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법

21세기 신자가 식탁 위에 펼쳐놓은 요한계시록 9장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 적용은 즉각적이면서 동시에 종말론적이다. (1) 인(印)을 구하라. 메뚜기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사람들을 해치도록 명령받았다. 그 인은 막연한 비유가 아니라 아버지의 표(표 7:3 참조)이며,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통해 받는 것이다. 자신을 신적 보호 아래에 두는 관계를 추구하라. (2) 한정된 고난을 인식하라. 다섯 달, 인류의 삼분의 일, 큰 강—하나님은 심판에조차 정확한 분량을 명하신다. 당신 자신의 고통의 때도 또한 측정된 것이지 무작위적인 영원이 아니다. 당신이 겪는 시련에 하나님이 설정하신 경계를 보여달라고 그분께 구하라. (3) 전갈의 쏘임이 영구적 상태가 되기 전에 회개하라. 이 장에서 가장 슬픈 마지막 구절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아니하였다'이다. 경화된 마음은 경고를 끝으로 오인한다. 부드러운 마음은 나팔 소리를 듣고 돌아선다. (4) 모든 형태의 우상숭배를 저항하라. 9장 20-21절에 나열된 죄들—살인, 마술, 음행, 도둑질—은 거짓 구원을 쌓는 손의 행위이다. 믿음이 그것들을 대체한다. (5) 아래의 파괴자가 아닌 보좌에 앉은 분을 예배하라. 악령들에게는 압바돈이라 이름 붙인 왕이 있고, 성도들에게는 모든 권세와 권력 위에 앉으신 왕이 있다. 연기가 태양을 어둡게 할 때에도 신뢰는 매일 위를 올려다보는 선택이다. 막 시작되는 심연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신앙의 백성은 이마에 보이지 않는 인을 받고 입술에는 흔들리지 않는 고백을 가진 자들이 된다. '주께서 다스리신다.'

되새김

심연의 왕에게도 이름과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읽는 것은 기묘한 위안이 된다. 압바돈은 무명이 아니며, 아볼루온은 무한하지 않다. 다섯 달은 영원하지 않다. 태양을 어둡게 하는 연기가 성자들의 등불을 꺼뜨릴 수 없다. 사도가 자기가 사는 시대의 공포—시민적 평화의 붕괴, 타협의 압력, 신자들의 조용한 말살—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절망의 선언문을 쓰지 않았다. 그가 쓴 것은 계시, 곧 나팔 뒤에, 연기 뒤에, 도인된 이마 뒤에 앉으신 분을 드러내는 글이다.信仰란 인봉이 진짜임을 믿는 것이다. 신뢰란 그 한계가 굳건히 서 있음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다. 심연이 열린 것과 마침내 심연이 심판받은 것 사이에서, 교회는 서 있다—그녀가 강해서가 아니라, 인봉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기는 아무리 짙더라도, 이 중에 가장 작은 자의 이마에 기록된 이름을 태워 없앨 수 없다.

자주 묻는 질문

하나님이 어찌하여 심연이 열리는 것을 허락하십니까? 이것이 그의 신실하심에 모순이 됩니까?

열쇠는 주어진 것이지, 빼앗는 것이 아니다—하나님의 주권적 허락이다.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은 엄격한 경계를 정하신다: 메뚜기들은 식물을 해치지 못하며, 죽일 수도 없고, 오직 다섯 달만 괴롭힐 수 있다. 그의 신실함은 정확히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것에 나타난다.

하느님의 인(印)이 이마 위에 있다 함은 무엇인가? 오늘날 신자들은 이 인을 지니고 있는가?

인은 곧바로 따르게 했다”; 이것은 영원한 소망을 품고 있게 하며,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소유권과 보호의 인”(요한계시록 7장 3절을 참조)이다. 신약성경은 성령을 믿는 사람의 인으로 설명한다(에베소서 1장 13-14절). 오늘날 믿음으로 말미암아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미 이 인을 받았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면, 이 심판들을 들은 후에도 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회개하기를 거부합니까?

요한계시록 9:20-21은 인간 마음의 완고함을 솔직히 명명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재판적 경화(judicial hardening)'라고 부릅니다—빛이 지속적으로 거부당할 때, 그 빛 자체가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응답이지 강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르시되, 끌어가시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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