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먼지와 숨 사이: 그것을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전도서 12장은 우리에게 인생은 은색 줄과 금빛 그릇과 같아서 결국 부서지도록 정해져 있음을 일깨워 주지만—숨결을 주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그에게로 돌아오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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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전도서 12:1-14

그러니 네 젊은 날에 네 활력을 누려라. 다른 번역들과 달리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슬픔의 날이 오기 전에, 네가 “나는 그들을 기뻐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그 연들이 이르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이 어두워지고 비 뒤에 구름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리고, 용사들이 굽어지며, 맷돌질하는 여종들이 줄어들어 멈추고, 창문으로 내다보는 여인들이 어두워지며, 거리로 통하는 문들이 닫히고, 맷돌 소리가 점점 약해지며, 새의 노래가 점점 가늘어지고, 모든 음악 소리가 사라질 때; 사람이 높은 곳을 두려워하고 길에서 공포를 느낄 때라.—아몬드 나무는 꽃을 피우고, 메뚜기는 짐을 지며(그 짐을 다시 진다, 즉 그 꽃대와 그 잎사귀를 말한다), 케이퍼 나무는 다시 싹을 내지만, 사람은 영원한 집으로 떠나고 거리에는 곡하는 자들이 둘러섰다.— 은 줄이 끊어지고 금 대접이 깨지며, 샘가의 항아리가 부서지고 저수조의 물동이가 깨지기 전에. 흙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생기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지극히 헛되다—코헬렛이 말하였다—모든 것이 헛되다! 덧붙여 말하건대, 코헬렛은 지혜자였으므로 계속 백성을 가르쳤다. 그는 많은 격언의 건전함을 듣고 시험하였다. 이는 렘 5:13에 나오며, ‘샤님 케티크난’ “정상적인 해들”(문자적으로 “그 적절함에 따른 해들”)과 같은 후대 성경 이후 구절들에 나온다. 코헬렛은 유익한 말씀을 찾아내려 애썼고, 기록하였다—이는 웨-카톱에 해당하며, 에스더 9:16 등에서 쓰인 부정사이다—진실한 말씀을. 지혜자들의 말씀은 소를 찌르는 채찍 같고, 찌르는 막대기에 박힌 못 같다. 그것들은 한 목자에게서 주어졌다. 덧붙여 말하건대, 그것들보다 더—그리고 마 마; 잠언 31:2의 마(메)도 마찬가지다—내 아들아, 경고를 받으라! 책을 많이 만드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육체를 피곤하게 한다. 말씀의 결론은, 모든 것이 다 말해지고 난 뒤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 이것이 모든 인류에게 해당된다. 곧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선하든 악하든 알려지지 않은 모든 일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말씀의 결론은, 모든 것이 다 말해지고 난 뒤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 이것이 모든 인류에게 해당된다.

전도서 12:1–14는 코헬렛의 절정적 권면이다. 젊을 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고, 늙음의 쇠퇴를 깨닫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 이는 하나님이 모든 행위를 심판으로 가져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본문은 신앙을 감정이 아니라 생명의 숨결을 주시고 다시 거두어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로 제시한다.

Narration

장면 설정

전도서(코헬렛)는 포로기 이후, 아마도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성경이 기록되었다. 이 시기 유다 공동체는 페르시아와 헬레니즘의 지배 아래 삶의 의미를 숙고하고 있었다. 화자는 자신을 코헬렛(‘모으는 자’ 혹은 ‘교사’)이라 칭하며, 예루살렘의 지혜자로서 포로의 트라우마와 성전 재건 이후 백성에게 말한다. 12장은 그의 탐구적 독백의 결론으로서 기능한다. 그는 시적 알레고리(무너져 내리는 집, 쇠약해지는 감각, 끊어지는 은끈)에서 소박한 목회적 결론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선악을 막론하고 모든 은밀한 일을 심판하실 것이라”(12:13-14). 배경은 고대 근동의 지혜학교 전통으로, 거기서 지혜자들은 양치기가 채찍을 시험하듯 같이 말을 시험했다. 이 본문에 대해 요세푸스나 교부들의 발췌본이 제공되지 않았으나, 솔로몬 문학과 지혜 문헌 집합 안에서의 정전적 위치는 시편 23편의 목자 이미지와 잠언서, 시라서에서 반영되는 지혜 전통과 연결시킨다. 프롬프트가 “성경 도구 상자 토대 없음”을 명시하고 TSK 교차참조를 제시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오직 제공된 원문에 의존하며 그 배경을 포로기 이후 유다의 지혜학교 전통 안에 놓는다.

시공간 안에서

첫 제왕 시대, 다윗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에서, 전도서의 지혜가 쇠퇴하는 세상적 질서 속에서 변함없는 믿음을 촉구하고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본문의 의미

고헬레는 세 단계로 자신의 논증을 펼친다. 첫째, 그는 시간에 근거한 호소를 내놓는다. "네 청년 시대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악한 날이 이르지 전에, 해가 어둡고 빛이 달과 별이 좋아지지 않기 전에, 또 비 후 구름이 다시 오기 전에, 곧 네 영혼이 근심하는 날들에 이르기 전에, 네 손이 하는 일이 다 너로 인하여 괴로울 그 해가 가깝게 이르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그때에 네가 '내가 이 일에서 낙을 얻지 못하겠다' 할 것이다"(12:1). 히브리어 동사 '기억하다'(자카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언약적 충성이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명령받았고 유월절에서 되새겨진 그런 기억이다. 창조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몸이 너를 배신하기 전에 온 생애를 그분께로 향하게 함을 뜻한다. 둘째, 그는 늙음과 죽음에 관한 지속적 비유를 제시한다. 무너져가는 집, 떨리는 파수꾼들(팔과 다리), 굽어지는 강한 자들(어깨), 어둡게 되는 눈, 잠잠해지는 음악—이 모든 것이 티끌로 돌아가는 몸을 묘사한다. 은끈이 끊어지고 금잔이 깨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완성이다. 하나님은 우주의 수리공이 아니라 우주의 주시는 분이시다. 티끌은 무방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은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신앙 없는 책 안의 신앙의 씨앗이다. 셋째, 고헬레는 현자들의 말—"한 목자에 의해 주어진"—이 우연이 아니라 방목이었다, 방황하는 자들을 다시 길로 이끄는 찌르개였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전체 요약"은 지혜를 자기관리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관한 판결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의 계명을 지키라, 이는 숨겨진 모든 일은 심판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앙은 결과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줄을 붙잡고 숨을 세시는 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잠언 3:5–6이 "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촉구하는 곳에서, 전도서 12장은 하나님이 생명의 주시는 분이시자 받으시는 분이시라는 고백 위에 그 신뢰를 세운다.

오늘 살아가는 것

전도서 12장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일찍 기억하는 훈련을 기르는 것이다. 청춘은 기도, 말씀, 예배에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되는 것이다. 힘이 넘치는 해들은 몸이 떨릴 때 당신을 붙들어 줄 습관을 세워야 할 때이다. 둘째, 육신을 우상화하지 않는 것이다. 본문의 회개를 피하지 않는 묘사는 음울한 것이 아니라 해방적이다. 만약 은 줄이 끊어질 것이라면, 그 연속성 위에 소망을 세우지 말라. 영을 되찾으시는 하나님 위에 세워라. 셋째, 감사 받게 살도록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심판하심이라." 믿음은 사적인 도피가 아니라 공적인 방향 설정이다. 일터에서, 결혼 안에서, 재정에 있어서, 말에 있어서 모든 결정은 목자의 시선 안에 있다. 넷째, 박차(찔러 깨우치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지혜로운 이의 말씀은 "박차와 단단히 박힌 못"과 같다. 믿음은 권면 위에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지혜로운 공동체의 느린 꿰뚫림에 순종한다. 마지막으로, 영의 귀환, 곧 보존이 아니라 돌아감에 소망을 두는 것이다. 생기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다. 다시 주인을 만나기 전 마지막 한숨일 뿐이다. 이것이 전도서와 단순한 허무주의의 차이이다. 이 책은 절망이 아니라 예배로 끝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계명을 지키라." 고헬레의 성숙한 계산 안에서 믿음은 씨름을 멈추고 신뢰하기 시작한 피조물의 흔들리지 않는 시선이다.

되새김

전서 12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 이미지들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나는 아직 젊었고, 은색 줄이 내 것이라고 믿을 만큼 어렸다. 몇 해 뒤, 한 친척의 손이 떨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새의 노래처럼 가늘었다. 그때 나는 그 본문의 조용한 무게를 깨달았다. 그는 끊어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자신의 창조주를 기억해 왔고, 그 기억은 뼛속 깊이 새겨진 신뢰가 되어 있었다. 줄은 풀리고 있었으나, 그것을 주신 분은 그러하지 않았다. 이것이 전서 12장의 목회적인 탁월함이다. 이 본문은 집이 서 있을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 이 본문은 숨결을 주신 목자가 그 숨결을 다시 받아들이실 것이며, 감추어진 모든 행위—선하든 악하든—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 의해 판단받을 것을 약속한다. 그러므로信仰은 줄의 힘이 아니라, 그것을 매고 푸시는 손을 신뢰하는 자의 흔들리지 않는 성실함이다. 청년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전 생애를 한 숨결씩, 그것을 끝에 다시 자기 품으로 받아들이실 분의 돌보심 안에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고헬레트가 제시하는 지혜이다. 흙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흙의 하나님 앞에서의 담대한 신뢰이다.

자주 묻는 질문

전도서가 비관적으로 들리는데, 어떻게 믿음에 대해 말할 수 있나요?

전도서서는 비관적이지 않고 정직하다. 그것은 삶의 짧음과 해 아래에서 많은 것들의 무의미함을 인정하며, 그것이 정확히 믿음을 피조물에서 창조자로 향하게 하는 이유이다. 여기서 믿음은 부주의함이 아니라 경외로운 순종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라."

은 줄이 끊김과 금잔이 깨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노화와 죽음에 관한 시적 이미지이다. 은색 줄은 척추를, 금빛 그릇은 두개골을, 부서진 물병은 쇠약해지는 심장을 상징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생명을 불어넣으신 하나님께로 영혼이 돌아간다.

전도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그의 위엄과 주권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그의 계명에 대한 기꺼운 순종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신다는 것을 아는 자의 확고하고 신뢰하는 자세이다.

어떻게 우리 젊은 날에 우리 창조주를 '기억'할 수 있을까?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언약적 헌신이다 곧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으며 예배를 드리고 힘이 있는 동안 선을 행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일생의 터전이 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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