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信仰과 신뢰: 하나님의 긍휼과 인간의 응답

로마서 9장은 진정한 신이 혈통이나 육신의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에 대한 신뢰와 응답임을 밝히고 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로마서 9:1-20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진실을 말하노라 거짓이 아니라 거룩한 성령으로 나를 도와주는 내 양심이 증언하노니 내 마음에 큰 슬픔과 끝없는 고통이 있도다 내 형제 곧 혈족을 위하여 차라리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저주를 받아도 좋을 만큼 그리하나니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니 곧 입양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법을 주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그들의 것이며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말하면 그들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에게서 난 것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라고 하여 다 자녀가 아니라 이삭이야 네게 씨라 일컬음 받을 자라 하였으니 곧 육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약속의 자녀가 씨로 인정함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이 이러하되 해가 돌면 내가 이르리라 사라가 아들을 가질 것이라 하셨고 또 리브가 우리 조상 이삭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으로 잰뿔하되 그双子가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선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곧 택함의 뜻이 행위를 좇지 아니하고 부르시는 이를 좇아 서게 하려 하였으므로 가라사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으니 이 기록된 바 야곱은 내가 사랑하고 에서는 내가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에게 불의가 있나니 그럴 수 없나니 모세에게 일렀으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 그가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를 세운 것은 이로써 내가 너를 보이며 내 이름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그가 누구를 원하시면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누구를 강퍅케 하시려 하시면 그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내게 묻기를 그가 어찌하여 허물하느냐 누가 그 뜻을 막겠느냐 하리니 그러면 사람아 너는 누구냐 하나님을 거역하느냐 지음을 받은 자가 지은 자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같이 만드냐 하겠느냐 혹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같은 덩이에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없느냐 그런데 하나님이 진노를 보이며 능력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는 바 그 진노의 그릇들을 파괴를 위하여 견디시며 또한 영광의 풍성함을 알려 주시기를 원하는 바 그 긍휼의 그릇들을 영광을 위하여 미리 준비하신 자 곧 우리를 하시되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부르시되 호세아 글에 일렀으되 내가 내 백성 아니던 자를 내 백성이라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아니하던 자를 사랑하다 하였으며 또 전에 그들에게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이새야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그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이는 주께서 땅 위에서 그의 말씀을 이루시며 끝내시리라 하였음이라 또 이새야가 미리 말하였되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나오는 의요 이스라엘은 의의 법을 따랐으나 그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에서가 아니고 행위에서 나온 것같이 따랐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부딪히는 돌 곧 걸리는 반석에 부딪혔으니 기록된 바 내가 시온에 걸리는 돌과 방해하는 반석을 놓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9:1-20 (ESV) — 이스라엘을 위한 바나바의 괴로워하는 중보 기도가 하나님의 택함, 긍휼, 그리고 인간 신앙의 신비에 대한 심오한 논의를 여는 구절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하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참된 이스라엘은 육적 혈통이 아닌 약속으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하나님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에게 근거합니다.

바울의 고민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바울은 고린도에서 서기 56-58년경, 즉 세 번째 선교 여행 중 예루살렘에 모금을 전달하기 전 몇 달 동안 로마서를 기록한다. 로마의 교회는 제국의 상징적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회중에게 addressing한다. 그들이 씨름하는 질문은 이렇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셨는가? 바울의 대답은 단호한 아니오이다 — 그러나 그는 곧바로 '이스라엘에게서 나온 자가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롬 9:6)라고 분명히 한다. 그의 특권은 — 양자, 영광, 언약, 율법, 예배, 약속, 조상, 그리고 육신에 따른 메시아 — 그 무게가 놀라울 정도이다. 그러나 특권은 결단信仰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택함과 긍휼의 교리는 차가운 추상화가 아니라 바울의 선교적 고뇌가 의미를 가지는 틀이다. 그의 친족을 위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괜찮겠다는 그의 의지는 참된 믿음의 자기-헌신적 성격을 드러낸다. 이 시기의 광범위한 유대 세계에서, 성전이 여전히 서 있고, 바리새파의 택함과 조상의 공덕에 대한 강조가 격렬했다. 바울은 그 확신을 다시 방향을 잡는다: 택함은 실재하지만, 그것은 오직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에 근거한 것이지, 인간의 혈통이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행위하시는 하나님 — 이삭을 부르시고, 야곱을 사랑하시고, 그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바로의 마음을 무디게 하신 하나님 — 을 신뢰하는 것으로서의 믿음을 이해하기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시공간: 사도의 중보 장소

초기 교회의 서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묵상은 로마의 사도적 세계에서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의 믿음과 신뢰의 복음이 제국 숭배와 박해 속에서 선포되었으며, 밧모에서 받은 요한계시록을 받게 될 교회들을 형성했습니다.

뜻: 믿음의 터는 하나님의 긍휼심이니라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본성으로 백성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급진적인 재해석을 성찰하게 한다. 바울의 논리는 완고하게 일관된다. 아브라함에게서의 혈통적 후손은 충분치가 않다. 이스마엘 역시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으나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서 '아직 태어나지 아니하여' 선악을 기도하지도 않았는데도 '위계를 '젊음에게 순종하겠느냐'라 하였다. 그러므로 택명은 '사람의 정이나 노력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롬 9:16). 이것은 신약신앙이 자라나는 영적 토양이다. 믿는다는 것은 도덕적 정력이나 의례적 절차 적성에 의거하여 하나님께로 우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그분의 인자하심이 충분하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의 고통스러운 외침인 '내 친족을 위하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기를 기도하리라'는 감사와 한마음은 곧바로 모더니 교회의 사제적 대제사장인 모더니의 모더니의 중보기도이므로 상징합니다. 바로의 완고한 마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로 보여주시는 성경 32장의 말씀과 같이. 바로의 마음이 완고해진 계은 하나님께서 임의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나의 이름이 온 땅에 선포케되기를 위하러니'. 이는 오늘날 신자들로 하여금 우리의 확신의 근거는 우리 자신의 결의나 의지('원하는 자', '도끼는 자')가 아니라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앙은 신택적인 하나님의 창시적 이니셔티브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며 우리로서는 하나님께서 가능하실 수 있도록 우리로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적용하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안식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그러면 우리는 로마서 9장의 빛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첫째, 우리 자신의 행위나 혈통에 기반을 둔 모든 신앙의 토대를 버려야 한다. 그 약속은 우리의 공로에 있지 의문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확신은 기분이나 도덕적 성공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 둘째, 바울처럼 우리는 값비싼 사랑으로 중보해야 한다 — 아무도 저주받기를 원하지 않으나,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 고난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두 가지 반대되는 오류를 저항해야 한다: 택함을 소극성의 면허로 가정하는 것('하나님이 나를 택함하셨으니 내게 달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혹은 도덕적 불편함으로 인해 그것을 부인하는 것('하나님은 선하심과 함께 주권자이실 수 없다'). 그에 대해 묻는 것). 바울은 두 가지 진리를 모두 붙들고 있다: 하나님은 긍휼하시며, 우리의 믿음은 바울이 그의 백성의 구원을 위해 천국 자체도 내어줄 만큼 충분히 중요하다. 넷째, 믿음에의 부르기가 긴박한 것은 정확히 택함이 현실이면서도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므로, 마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린 것처럼 전도하고, 기도하며, 인내한다 — 마침내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면서. 이 긴장이야말로 믿음이 숨 쉬는 공기이다. 그리고 다섯째, 복음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신비 — 가족, 친구, 온 민족들 — 와 마주할 때, 바울이 20절에서 미리 보여주듯 하나님께 책망으로 응답하지 않는다: '사람이여, 너는 하나님께 대답하겠느냐?' 대신 우리는 오름하고, 신뢰하며, 계속 중보한다.

되새김

로마서 9장을 우리의 믿음의 확실성에 대한 글인 것처럼 읽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개인적인 위안을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지 않은 온 한 백성의 무게를 안고 이 글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큰 슬픔과 끝없는 고통'은 우리에게 믿음이 결코 사적인 거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잃어버린 자에 대한 그의 슬픔과 찾아온 자에 대한 그의 기쁨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태어났고, 야곱은 자기 행함이 무엇이든 하기 전에 태어남과 동시에 사랑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야곱처럼 사랑받았습니다. 유일하게 합당한 응답은 '어찌하여?'라고 묻지 않고 대신 '어찌?'라고 부르짖는 예배입니다 — '주여, 어찌하여 주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옵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신비를 풀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신비 속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무릎 꿇고서 우리는 그 신비가 차갑지 않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정확히 우리 신뢰가 벼려지는 긍휼의 불로다.

자주 묻는 질문

하나님이 누구를 긍휼히 여기시든지 누구를 강퍅케 하시든지, 사람이 믿어야 할 책임은 여전히 참된 것인가?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인간의 책임을 없애지 아니하시고 그 근거를 바꾸시노라 우리가 이방의 바로보다 더 유능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이니라 책임은 여전히 현실이니 — 이것이 바로 바울이 자기 친족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려 한 까닭이니라 — 그러나 그 성취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긍휼에 달려 있노라 우리의 분은 전파하며 기도하며 신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분은 그가 정하신 바를 이루어 내시는 것이니라

야곱은 내가 사랑하고 에서는 내가 미워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정말로 에서를 미워하셨는가?

이것은 히브리어 시적 대조법입니다: '사랑'과 '미움'으로 대비되는 것은 동일한 감정적 적대가 아니라 택함에서의 우선순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약속된 언약의 혈통을 이어가도록 야곱을 택하시었고, 에서는 버려졌습니다. 바울은 에서의 인격에 대한 도덕적 판결이 아니라 택함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 말라기 1:2-3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은 이스라엘의 운명만을 다루고 있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의 신앙과 어떻게 관련이 있습니까?

로마서 9장은 단지 역사적 신학만이 아니라 믿음의 신학입니다. 이 장은 오늘날 신자들에게 우리의 믿음이 혈통이나 행위나 의지력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하나님'과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 근거함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확신은 우리의 견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에 닻을 내리고 있으며, 이것은 바로 시험과 의심과软弱 중에서도 소망을 살아 있게 하는 기초입니다.

HomeDiscoverBibleStudy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