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남은 자들의 믿음: 신의가 택하심 위에 근거할 때

로마서 11장은 사람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무효되지 않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며, 참된 믿음은 그의 택하심과 긍휼 위에 기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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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로마서 11:1-2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러하지 아니하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 Elias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대하여 하나님께 고소하되 主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주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나만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을 찾나이다 하였으나 하나님의 대답이 그에게 무엇을 말하느냐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일곱 천 사람을 내게 남겨 두었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현재 때에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으니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스라엘이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받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강퍅케 되었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그들에게 혼미한 영을 주사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하는 귀를 주셨더라 오늘날까지 하신 것과 같으니 다윗도 말하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snare와 거치는 것과 보응하는 것이 되게 하시며 그들의 눈은 어두워서 보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구부러지게 하소서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러 넘어진 것인가? 결코 그러하지 아니하니 오히려 그들의 넘어짐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으니 그들의 질투심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만일 그들의 넘어짐이 세계의 풍요와 그들의 감소가 이방인의 풍요가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이방인인 너희에게 내가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하여 혹시 내 혈육을 질투하게 하여 그 중 몇이라도 구원할까 함이니 만일 그들의 버림이 세계의 화평이 되고 그들의 감소가 이방인의 풍요가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만일 첫 열매가 거룩하면 덩어리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들도 그러하리라 만일 그 가지들 중에 얼마가 꺾이고 너는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된 이방 감람나무로서 그 뿌리와 진액의 참예자가 되었거든 그 가지들 위에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여도 네가 뿌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너를 대신하는 것이니 네가 말하기를 그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이게 하려 함이라 하리라 이것을 참되게 말하노니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서 있나니 교만하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만일 하나님이 원 가지들을 아끼지 아니하셨거든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런즉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진 자들에게는 엄위가 네게는 인자하니 만일 네가 그의 인자에 머무르지 아니하면 너도 찍힘을 당하리라 또한 그들도 만일 그들의 불순종에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이움을 받으리니 하나님은 다시 접붙이실 능력이 있으심이라 너는 본래 야생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운 자라 하물며 본래 그 감람나무 가지들이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움 되리라 이방인인 너희에게 내가 알지기를 원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가 자기의 좋은 지혜를 스스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곧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얼마가 강퍅케 된 것이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사특한 것을 돌이키시리라 하였고 내가 그들의 죄를 돌이키면 이로부터 내게 오는 언약이니라 하였느니라 복음으로는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되었으나 택하심으로는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받는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은혜를 받았고 이들도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로 받은 은혜로 이제도 은혜를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게 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라 아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깊음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하시고 그의 길은 깨달을 수 없도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먼저 주께 드려서 갚으리요 이는 만물이 그에게서 말미암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은혜로 보존된 남은 자(엘리야 때의 7,000과 참조)를 들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속되는 신실하심을 변호하고, 그 다음에 이방인 신자들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같은 뿌리가 그들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과 신뢰는 민족적 특권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에 근거한다.

남은 자와 거룩한 뿌리

바울은 주후 56년경, 세 번째 선교여행의 막바지에 코린도로부터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문화의 교차점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유대교 개종자, 그리고 이스라엘의 메시야를 받아들이고 함께 예배하는 이방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그 긴장은 명백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까지가 클라우디우스 황제 아래 로마에서 추방당했습니다(스베토니우스의 《클라우디우스 전》 25.4 참조; 누가가 사도행전 18:2에서 언급함), 그리고 그들이 돌아왔을 때 그곳에는 이방인 다수파가 지도부에 앉아 있었습니다. 11장 뒤에 놓인 질문은 매우 폭발적입니다. 하나님이 민족 이스라엘을 끝내버리신 것입니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만이 이제 참된 하나님의 백성입니까요? 바울의 대답은 목회적이고 동시에 신학적입니다. 그는 호렙 산에서의 엘리야의 탄원을 인용합니다(열왕기상 19:10, 11, 18). 선지자는 자신이 홀로 남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언적 응답은 충성스러운 칠천 명을 보존했습니다. 같은 패턴이 바울의 시대에도 작동합니다. 은혜로 택함된, 행위가 아닌 은혜로 택함된 남은 자가 있습니다(롬 11:5-6). 이 남은 자 신학은 선지자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 이사야 10:20-22, 아모스 9:9-10(TSK 상호참조에 등재됨)에 이르고, 앞으로는 교회까지 뻗어 갑니다. 11-15절은 시야를 확장시킵니다. 이스라엘의 걸림은 이방인의 구원의 계기가 되며, 그들의 장래의 충만함은 죽은 자로부터의 생명을 의미할 것입니다. 1세기 중반의 상황이 이 긴급성을 설명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는 추상적 신학이 아니라 로마, 코린도, 그리고 그 너머에 흩어진 가정들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시공간

묵상 772는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로의 선교 여행 중에 바울이 초대 교회 시대에 기록한 로마인들에게 보낸 서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의미: 믿음과 신뢰의 참된 기초

로마서 11:1–20은 그 핵심において *신뢰의 대상*에 관한 가르침이다. 바울의 질문 —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는가?' — 은 신실성에 관한 질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신뢰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의 인간적 실패가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화할 수 있는가? 사도의 대답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재형성한다. 첫째, 신앙은 하나님의 택함의 근거가 아니다. 택함이 신앙의 근거이다. '만일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가 아니 되리라' (11:6). 남은 자들은 어떤 우월한 믿음의 행위로 그들의 보존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보존되었으니 이는 곧 믿음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함이었다. 그러므로 신앙은 선행하는 긍휼 위에 놓인다. 이것은 우리가 의지의 행위로 하나님을 택함한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바울은 하나님이 먼저 한 백성을 남겨두시고 그들이 차례로 믿는다고 가르친다. 둘째, 신앙은 결코 민족적 혹은 제도적 안보의 근거가 아니다. '잘려 나간 가지들' (11:17, 19–20)은 그들의 교리 때문에 잘려 나간 것이 아니라 불신 때문에 잘려 나간 것이며, 들가지는 '믿음으로' 서 있다 (11:20). 신뢰 — 유산이 아니라 — 가 이방인 신자를 붙들어 주며, 그와 같은 신뢰가 회복된다면 회복된 이스라엘도 붙들어 줄 것이다 (11:23). 셋째, 바울의 의미에서 신앙은 단순한 인지적 동의가 아니라 언약적 의존이다. '뿌리' — 아브라함, 약속들, 메시아 — 는 거룩하며, 가지들도 그 거룩함을 나눈다. '믿음으로 서 있다' 함은 그 뿌리 안에 서서 그 뿌리로부터 생명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관계적이다. 신앙은 가지를 살리는 뿌리를 향한 가지의 끊임없는 자세이다. 로마서 1:17은 이미 이 원리를 명명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장은 그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여준다 — 하나님의 택함하시고 보존하시는 긍휼로부터. 넷째, 이 장은 신앙에 종말론적 방향을 부여한다. '나머지 자들'의 경화는 (11:7)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11:25, 본문의 바로 너머에 있다)이다. 그러므로 신뢰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自身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직 쓰고 계신 이야기 속으로 믿는다. 신앙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이방들에 대해서도, 역사에 대해서도 아직 끝내지 않으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다. 다섯째, 신앙은 두 가지 반대되는 죄 — 오만과 절망 — 에 대한 해독제이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는지를 절망하며 묻는 유대인 대화자에게 바울은 답한다. 남은 자들이 있다고. 이스라엘을 대신했다고 오만하는 이방인에게 바울은 답한다. '교만하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11:20). 신앙은 그 중간에서 산다. 겸손하며, 감사하며, 경계하며.

적용: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기

1. 혈통을 의지하는것을 그만두라. 유대인, 그리스도인, 교단, 도덕적 배경 무엇이든, 가지는 '믿음'에 의해 서 있는것이지 가계도에 의해 서 있는것이 아니다. 오늘 스스로 물어보라, 살아계신 하나님 외에 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2. 행위를 의지하는것을 그만두라. 만일 은혜가 은혜라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서 있는 터전은 나의 경건 훈련이나 신학적인 정밀함이 아니다. 나를 택하신 긍휼 안에서 안식하라. 3. 거룩한 확신과 함께 거룩한 경외를 기르라. 바울은 '교만하지 말라'와 '두려워하라'(11:20)를 나란히 놓는다. 선 택을 진실로 확신하는 신자는 오직 가장 자신 있는 태도를 가장 조심한다. 4. 타인을 향한 겸손으로 확신을 견지하라. 바울의 이 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신자들이 민족을 초월하여 서로를 멸시했기 때문이다. 진실한 믿음은 우리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가진 자들을 향한 인내로 나타난다. 5. 종말론적인 인내로 살아라. 만일 하나님이 어떤 민족으로도 아직 끝내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소명은 문화, 제도, 혹은 명백한 배교에 대해 절망하는것이 아니다. 엘리야 시대에 칠천인을 지키신 동일한 하나님이 지금도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고 계신다.

되새김

발 아래 있는 땅이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때, 이상한 안위가 있습니다. 가지는 뿌리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뿌리가 가지를 택했고, 혹은 정원사가 그것을 접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서 있게 된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포함되고, 붙들어지고,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는 자를 두 가지 지치는 수고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이미 주어진 것을 얻으려는 수고, 그리고 전적으로 다른 이의 신실하심에 의존하는 입장을 변호하려는 수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서 11장은 안식에 대한 장입니다. 자신의 안전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배운 자들의 안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경계에 대한 장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서 있는 가지들이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꺾일 수 있습니다(11:20, 23). 이 경고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 포함됨을 자율적인 소유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시시각각 뿌리에 의존함을 아는 가지의 자세입니다. 오늘 겸손하고, 경계하며, 감사하는 자세로 서 있는 은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최종적인 수확을, 고집이 세고, 사랑받으며, 기억되는 백성과 수천 년을 통해 신실하심을 입증하신 그분에게 맡기십시오.

자주 묻는 질문

로마서 11장에서 '남은 자 신학'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매방종(每方宗) 곧 매 세대마다 하나님이 신실한 소수(少數)를 보존하시는 그분의 방식, 곧 엘리야 시대에 칠천 명을 보존하신 바로 그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롬 11:4; 왕상 19:18). 이 남은 자는 '은혜로 말미암아 택함된 것'에 따라 보존되는 것이지, 행위에 의함이 아니다(11:5-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면, 이 본문은 오늘날 신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정체성—민족적, 교단적, 또는 도덕적—을 자랑하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야생 가지인 우리가 거룩한 뿌리 위에 접붙임 되었기 때문입니다 (11:17–18). 우리는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서 있게' 됩니다(11:20).

잘려진 가지와 접붙임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자연에 역행하는 접붙임이다. 들올리브나무가 재배되는 올리브나무에 접붙이 되는 것이다. 이방인 신자들은 새로운 나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족장들과 메시아의 거룩한 뿌리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11:16).

믿음과 하나님의 주권적 택함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로마서 11:5–6은 택함이 믿음보다 먼저이며 은혜에 근거함을 명확히 한다. 만일 믿음이 택함의 조건이 된다면 그것은 '행위'가 되어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니게 된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보존되고 접붙여져서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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