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피에 물든 옷을 입은 전사: 고난 가운데서의 위안

하나님만이 원수를 멸하실 때, 고난이 그분 안에서 위로와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의 아픔을 마주할 것인가?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이사야 63:1-19

에돔에서 오시는 이는 누구신가, 보스라에서 홍색 옷을 입고 오시는 이는 누구신가— 그 옷차림이 위엄 있고, 큰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시는 이는 누구신가? “승리하며 다투는 나다, 구속을 베풀 능력이 있는 자다.” 어찌하여 당신의 옷이 붉으며, 당신의 옷이 포도 밟는 자의 옷 같습니까? “나는 홀로 포도즙을 밟았다. 민족들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분노로 그들을 밟았고, 진노로 그들을 짓밟았다. 그들의 생명의 피가 내 옷에 튀어, 내 모든 옷이 얼룩졌다. 내가 복수의 날을 계획했고, 나의 속량의 해가 이르렀다. 내가 보았으나 도울 자가 없었고, 내가 살펴보았으나 도와줄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의 팔—‘나의 승리하는 [오른손]’; 참조 59:16.—이 승리를 이루었고, 나의 진노가 나를 도왔다. 내가 분노로 민족들을 밟았고, 내 진노로 그들을 취하게 하였으며, 그들의 영광을 땅에 내던졌다.” 내가 하나님의 인자하신 행적과 하나님의 찬양을 이야기하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 곧 그들에게 주신 것, 하나님의 긍휼과 큰 친절에 따라. [하나님]은 생각하셨다: “참으로 그들은 내 백성, 거짓을 행하지 않을 자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구속자가 되셨다. 그들의 모든 환난 중에 [하나님]도 환난을 당하셨고, 그분의 임재의 천사가 그들을 구속하셨다.] 천사 또는 사자, / 하나님 자신의 임재가 그들을 구속하셨다.” 참조 신명기 4:37 및 주석. 사랑과 긍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속량하시고, 그들을 일으키시며 높이셨다 옛적 모든 날 동안. 그러나 그들이 반역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다. 그때에 [하나님]이 그들의 원수가 되시고, 그들을 치러 싸우셨다. 그때에 그들이 옛날을 기억하였다, 곧 물에서 귀한 백성을 끌어내신 분을—모셰(모세)라는 이름의 언어유희. “그들을 바다에서, 이 무리의 목자와 함께 올라오게 하신 분이 어디 계신가? 그들의 가운데에 그분의 성령을 두신 분, 그분의 영광스러운 팔이 모세의 오른편에서 행진하게 하신 분, 그들 앞에서 물을 나누어 영원한 명성을 얻으시고, 그들을 깊은 물을 통해 인도하셔서 그들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분이 어디 계신가— 광야의 말처럼, 평지로 내려가는 짐승처럼?”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쉼을 주셨다. 이와 같이 주께서 주의 백성을 목양하시어 주 자신을 위해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보소서, 주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높은 곳에서! 주의 열심과 주의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주의 간절한 그리움과 주의 사랑이 우리에게서 거두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아브라함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이스라엘이 우리를 알아보지 않을지라도, 영원하신 분이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옛부터 주의 이름은 “우리의 구속자”입니다. 영원하신 분이여, 어찌하여 주의 길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시며, 주를 경외하는 데서 우리 마음을 돌이키게 하십니까? 주의 종들, 곧 주의 소유인 지파들을 위하여 마음을 돌이키소서! 우리의 원수들이 주의 성소를 짓밟았습니다, 주의 거룩한 백성이 잠시 동안 차지했던 곳을. 우리는 주께서 결코 다스리지 않으신 백성처럼, 주의 이름이 결코 붙지 않은 백성처럼 되었습니다. 주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시기만 하면,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리이다—

이사야 63장은 놀라운 역설을 제시합니다. 신적 전사가 에돔에서 붉게 물든 옷을 입고 나오셨는데, 홀로 진노의 포도즙을 밟으셨습니다. 그런데 같은 본문은 부드러움으로 전환됩니다—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고난 중에 근심하시고, 그의 임재의 천사가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고난과 위로는 여기서 모순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 안에서 하나로 수렴됩니다.

Narration

역사적 및 문학적 배경

이사야 63장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56–66장), 흔히 제3이사야라 불리는 곳에 자리하며, 귀환한 망자들의 쓰라린 경험 속에서 선포되었다. 공동체가 바벨론에서 돌아왔고 성전이 재건되고 있지만, 실망과 반대는 무겁게 짓눌러왔다. 선지자는 출애굽을回顾하고 궁극적 구속을 소망한다. 에돔에서, 보스라에서, 붉게 물든 의복을 입은 한 인물의 첫 번째 환상은 의도적으로 연상시키는 바가 있다: 에돔은 에서에서 내려온 영원한 경쟁자이며, 보스라, 그 수도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적대적 반대를 상징한다. 포도를 밟는 이미지는 즙이 통에 얼룩지는 수확 장면에서 온 것이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심판과 긍휼이 함께하는 신적 현현이다—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해 싸우시지만, 그 대가는 실재한다. 중반부의 전환(7–14절)은 전사장에서 목자로 옮겨가며, 출애굽时期的 은혜의 행위들을 회고한다: 그의 임재의 천사, 바다의 가르심, 깊은 곳을 통한 인도. 이어서 15–19절은 백성의 슬픔을 기록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당신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높은 곳에서 살펴주소서!" 이 장은 따라서 고난과 위로를 함께 구성한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의 행위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백성의 반역, 그리고 새로운 개입을 위한 부르짖음.

시공간 회랑: 포도즙틀에서 돌아오는 포로의 눈물까지

첫성전 시대 다윗 왕정과 바빌론 포로기가 예루살렘에서 펼쳐지던 시기에 배경하며, 이스라엘의 고난과 회복에 대한 소망이 예언적 비전을 형성하던 때를 담고 있다.

신학적 의미: 고난과 위로가 만나는 곳

이사야 63장은 하나님의 공의와 그분의 자비를 분리하는 것을 거부한다. 1–6절은 승리의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담당하셨음을 선포한다. "내가 살펴 보았으나 나를 돕는 자가 없었으며, 내가 두루 살펴 보았으나 나를 붙들어 주는 자가 없었으므로 내 팔이 나를 위하여 새 영을 얻었고" (개역개정). 여기서 고난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속의 행위 안에서 하나님 친히 담당하신다. 포도즙 틀은 값비싼 노동의 장소이다. 그러나 7–14절은 기념으로 선회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찬송할 일을, 즉 여호와의 많은 은혜와, 그의 궁휼로우심에 따라,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을 내가 여호와의 은혜를 선포하리라." (개역개정 63:7 일부) '고난받으셨다'는 히브리어 동사(9절)는 주목할 만하다. 그들의 모든 환난 중에 그분도 함께 고난받으셨다. 그분의 임재의 천사는 그들이 당한 고난을 단순히 관찰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 속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므로 위로란 고난의 부재가 아니라, 그 고난 안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다. 백성의 반역(10절)은 우리에게 아픈 진실을 소개한다. 은혜로 안겨진 사람들이 그들을 안고 계신 분을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11–14절은 출애굽을 향한 회고가 그리움으로가 아니라 신학적 증거로 그 과거를 돌아본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고, 그 기억 자체가 신앙을 붙들어 준다. 마지막으로 15–19절은 버림받은 듯 느끼는 공동체의 부르짖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 의미는 이렇다. 위로는 고난받는 자들에게 거부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포도즙 틀에 들어가신 하나님이, 연약한 백성의 가장 미약한 기도를 아직도 들으시는 분이 내미신 것이다.

적용: 우리의 고난 가운데서 포도즙 틀을 밟는 분을 찾기

우리가 이 말씀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 가지 움직임이 있다. 첫째, 기억하라. 이사야 63장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행적을 낱낱이 회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고통의 시절에 우리의 본능은 상처에 눈을 고정하는 것이지만, 선지자는 우리에게 시선을 넓혀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긴 역사를 되풀이하라고 가르친다. 목록을 만들고, 기록하고, 소리 내어 말하라. 둘째, 정직하게 고백하라. 10절과 17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반역하고 그의 영을 슬프게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고난이 항상 순수한 피해자 됨은 아니다. 때로 우리 자신이 그 고통에 한몫한 경우가 있다. 우리 자신의 몫을 솔직하게 이름 붙이는 것이 새로운 긍휼의 공간을 만든다. 셋째, 구하라하라. 17절은 호소한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당신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나이까?" 이 말씀은 그 질책을 정죄하지 않는다. 성경은 신앙의 한 형태로서 애통을 담고 있다. 답 없는 너의 질문을 하나님 앞에 가져오라. 비난이 아니라, 여전히 아버지를 신뢰하는 자녀의 부르짖음으로. 그리고 이 장에서 위로가 어디에서 오는지 주목하라. 원수의 부재에서, 즉각적인 정당화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포도즙틀에 들어가셨다는 약속에서 온다. 이것을 읽는 그리스도인에게, 피로 물든 그 옷은 예루살렘 밖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 아래 으스러지신 그 분을 가리킨다. 이는 그의 백성이 그 무게를 지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고난과 위로가 십자가에서 만난다. 그의 옷에 보이는 그 붉은색은 무엇이든,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그 짐기을 지기로 기워하시기 때문이다.

되새김

짐짓 괴로움 가운데 배우는 것, 곧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을 멀리서 관조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묘한 위안이 있다. 그들의 모든 환난 속에서 그분도 함께 괴로워하셨다. 그분의 임재의 천사는 안전거리에 서 있지 아니하시고, 짓누르는 그 속으로 직접 들어오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보스라—우리의 대항, 상실, 배반의 에돔—그 아래에 짓눌릴 때,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이 보시느냐가 아니라, 그분이 이미 그 한가운데로 들어오셨다고 우리가 믿느냐이다. 이사야 63장은 하늘이 침묵하는 것 같은 때에도 15–19절의 기도를 올리도록 우리를 가르준다. 돌아온 포로들의 피로함은 정죄받지 않고 존중받는다. 그리고 포도즙틀을 홀로 밟으시는 그 진홍빛 빛나는 전사는, 어떤 원수도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할 것임을 우리에게 확신하신다. 오늘 그 그림을 마음에 품으라. 옷에 핏빛 얼룩이 묻은 전능자, 노여움으로가 아니라 승리를 안고 당신을 향해 걸어오시는 분을—막대한 값으로 사신 승리, 당신을 자신 안으로 모으시려는 승리를.

자주 묻는 질문

전사의 옷은 왜 붉은색인가요?

빨간색은 그가 홀로 밟은 포도즙에서 나왔으며, 그가 personally 심판과 구원의 값을 담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임재의 천사는 누구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사자이며, 종종 출애굽 사건에서 하나님이 나타내신 임재를 나타내며 성육신의 예표로 이해됩니다.

이사야 63장에서 고난과 위안은 어떻게 공존하는가?

하느님은 그의 백성을 위해 그들의 원수들과 싸우시면서도 그들의 모든 고난에 함께하신다 ― 구원을 이루어내시며 동시에 직접적으로破碎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

왜 돌아온 포로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것처럼 여전히 기도합니까?

돌아온 것이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으며, 성전은 아직 영광스럽지 않았고 반대도 남아 있었기에, 그들은 더 깊은 임재와 새로워짐을 위해 부르짖었다.

HomeDiscoverBibleStudy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