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시는 아버지

믿음은 무대 위의 공연이 아니라 아버지가 들으시는 밀폐된 방 속의 속삭임이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마태복음 6:1-20

사람들 앞에서 너의 의를 행하여 그들에게 보이도록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 앞에서 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구제를 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이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자기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 이는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너는 구제를 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 이는 네 구제가 은밀하게 하게 하려는 것이다. 은밀한 곳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위하여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너는 기도할 때에 네 밀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곳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곳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과 같이 헛되이 반복하지 말라. 그들은 많이 말하면 들어 줄 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과 같이 하지 말라. 너의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듯 우리 빚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건지여 주옵소서. 너희가 사람들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리라. 그러나 너희가 사람들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의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시리라. 금식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얼굴을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금식하는 것으로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너는 금식할 때에 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사람들에게 금식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게 하고 은밀한 곳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은밀한 곳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땅 위에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다만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 거기는 좀먹지도 못하고 녹이 슬지도 못하며 도둑이 뚫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거기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몸의 등불은 눈이라.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으리라. 그러나 네 눈이 악하면 온 몸이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라면 그 어�움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나니 이는 혹 한쪽을 미워하고 한쪽을 사랑하거나, 혹은 한쪽에게 헌신하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임이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의 생명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며, 또 네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생명이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며 몸이 의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 하늘의 새들을 보라. 그것들은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곡식 속에 모으지도 않는다. 그런데 너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 키를 한 뼘이라도 더 늘릴 수 있느냐? 또 의복을 위하여 왜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라. 수고하지도 않고 실을 잦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솔로몬의 영광조차도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 오늘 있고 내일 아궁이에 넣을 들의 풀을 하나님이 이렇게 꾸미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O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고 말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다 이런 것을 구함이라. 너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이 필요함을 아신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걸음을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여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은 스스로 염려할 것이다. 하루에 오는 괴로움으로 그 하루가 족하니라.

마태복음 6장 1-20절은 산상수훈에서 취한 본문으로서, 유대교의 세 가지 경건 행위인 자선, 기도, 금식을 모아 각각을 군중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다시 향하게 합니다. '은밀한 곳에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4, 6, 18절)라는 반복되는 표현은 이 본문의 심장박동이 됩니다. 인간의 갈채가 아니라 신적인 주시가야말로 믿음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Narration

배경: 산 위와 거리 모퉁이

마태복음 6장은 산상수훈의 한복판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직전에서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라 부르셨습니다(마태복음 5:13-16). 이제 그분은 제자들의 세상을 향한 정체성에서 그들의 헌신이 하나님을 향하는 삶으로 관심을 돌이킵니다. 유대교 경건의 세 기둥 — 즉 쯐다카(자선), 테필라(기도), 타아닛(금식) — 가 이 본문을 구성합니다. 장면은 산비탈의 강단에서 갈릴리 마을의 거리로 옮겨갑니다. 그곳에서 종교적 행위는 공적 화폐였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한 회당, 가시적인 경건을 위한 거리 모퉁이. 예수님은 이 관행들을 폐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청중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권하십니다. 아버지의 "은밀한 곳"은 숨겨진 모퉁이가 아니라 숨겨진 관계입니다. 곧, 영혼이 입이 열리기 전에도 필요한 것을 이미 아시는 분을 만나는 자리입니다(8절). 마태복음 23:5와 요한복음 12:43 같은 상호참조 성경 구절은 "사람의 찬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찬미"를 구하려는 유혹이 제2성전时期 종교의 결정적 갈등이었음을 확인해 줍니다. 이어 나오는 주기도문(9-13절)은 이러한 내면적이고 의존하는 신앙의 모범이 됩니다. 여섯 줄의 짧은 간청으로, 사람의 필요가 언급되기 전에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으로 모든 기도를 다시 향하게 합니다. 역사적 배경을 굳히기 위해 요세푸스는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을 공적 경건의 표출에 유난히 주의 깊었다고 묘사하며, 그 풍습이 때로 허영으로 흘렀다고 기록합니다(요세푸스, 「고대사」 18권 2장 2절). 따라서 이 경건의 배경은 1세기 갈릴리와 유대의 세계, 곧 종교가 가시적이고 들을 수 있으며 사회적인 곳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조용히 자기 백성들을 다른 종류의 신실함 — 은밀하고, 어린아이 같으며, 결코 멀리 계시지 않는 아버지께서 응답하시는 신실함 — 으로 부르십니다.

시공간: 안방, 거리, 그리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1세기 로마가 점령한 유대와 갈릴리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제국의 권위 아래 일상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공급과 나라에 대한 신뢰를 놓고 씨름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의미: 믿음은 보시는 아버지 앞에서 사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 1-20절의 신학적 핵심은 동기의 재지향에 있다. 예수님은 공적인 신앙을 금하고 계시지 않는다 — 그분 자신도 때로 공개적으로 기도하셨고(요한복음 11:41-42), 누군가의 집에서 한 여인에게 기름 부음을 받으실 것이다(마태복음 26:6-13). 그분이 금하시는 것은 인간의 박수를 마지막 보상으로 받는 영적 거래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이미 그 보상을 받았느니라'(2, 5, 16절). 보상을 뜻하는 헬라어 '미소thos'는 이미 완전히 지급된 품삯을 함축한다. 군중이 박수를 보냈을 때, 장부가 닫힌다. 하늘이 더 이상 빚진 것은 없다. 대조적으로 신앙은 장부가 열려 있고 눈이 사적인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세 가지 움직임이 본문을 구성한다. (1) 왼손도 모르게 할 정도로 은밀히 행하는 구제(3절)는 사람을 증인이 아닌, 하나님을 증인으로 기뻐하도록 제자를 훈련시킨다. (2) 기도는 주기도문(9-13절)에 의해 제시되는데, 이는 일곱 가지 청원의 전례이며 처음 세 가지('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 나라이 임하옵소이, 뜻이 이루어지이다')는 인간의 필요가 등장하기 전에 전적으로 하나님 중심이다. (3) 금식은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 특별하지 않게 해야 한다. 평범한 몸, 놀라운 하나님. 세 가지에 걸쳐 '보다'를 보시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가 본문을 묶는다. 아버지는 '은밀한 곳에서 보신다'(4, 6, 18절). 신앙은 증인의 부재가 아니라 더 나은 증인의 존재이다. 히브리서 6:10절은 다른 각도에서 이것을 확인한다. 하나님은 다른 아무도 보지 않을 때라도 그분의 이름을 향한 행함과 사랑을 잊으시는 분이 불의하시지 않다. 갈라디아서 6:12절에 대한 교차 참조도 마찬가지로 신자들을 외적할 것을로 압박하는 자들이 '육체로 좋은 인상을 만들려 한다'고 경고한다 — 이것은 바로 마태복음 6장이 진단하는 병이다. 따라서 더 깊은 의미는 신앙과 신뢰가 일종의 봄이라는 것이다 — 박수 보내는 군중을 지나, 판단하는 이웃을 지나, 불안한 자기를 지나, 관심을 받는 것이 유일하게 수거할 가치가 있는 보상인 아버지의 흔들림 없는 시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적용: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도 신실하라

먼저, 청중을 살피라. 주기 전에, 기도 전에, 금식 전에 자문하라: 내가 누구의 시선을 향해 이 행위를 하고 있는가? 그 답이 '소셜 미디어', '내 소그룹', '내 평판'이라면, 그 값은 이미 내가 영원히 쓸 수 없는 동전으로 받아진 것이다. 둘째, '닫힌 문'을 세우라. 문자 그대로의 공간과 문자 그대로의 시간을 마련하라 — 의자 하나, 구석 하나, 십 분 — 거기서 헌신은 서두르지 않고 또한 보이지 않는다. 주기도어는 의도적으로 짧다: 그것은 간결함, 경외, 의존을 가르친다. 그것이 낭송이 아니라 숨이 되도록 외워라. 셋째, 숨겨진 순종을 실천하라. 이름 모를 청구서를 내라. 사진 찍지 않고 식사를 섬기라. 알리지 않고 금식하라. 목표는 자기 만족이 아니라 아버지의 미소만으로 기뻐하는 마음의 느린 형성이다. 넷째, 그 비밀을 확장하라. 마태복음 6:14-15는 주기도 직후에 용서를 놓는다. 아버지와 바른 상태에 있는 영혼은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 자유를 얻기 때문이다. 숨겨진 헌신은 가시적 은혜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보상을 기대하되 그것을 일정에 올려두지 말라. '은밀히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4절)는 약속이지 청구서가 아니다.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 필요를 이미 아신 아버지의 때를 신뢰하라(8절). 한마디로, 적용이란 중력의 중심이 회당 계단에서 그곳 — 골방으로, 그리고 그 골방에서 결코 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옮겨간 삶이다.

되새김

주목할 만한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는 것, 기도하는 것, 금식하는 것을 멈추라"고 명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예수께서 명하신 것은 "연기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다. 실천 행위는 그대로 남되, 그 자세가 변한다. 이 본문에서 믿음은 종교의 부재가 아니라 그 방향의 전환이다 — 우리 자신을 감상하는 거울로부터 아버지를 바라보는 창으로의 전환. 문을 닫는 것에는 특별한 용기가 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행위를 헛된 행위라고 우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향해 행한 보이지 않는 행위가 유일하게 하늘에서 이자를 축적하는 행위라고 우기신다. 위선자의 비극은 위선 자체만이 아니라 그 계산서의 마감이다: "그들은 이미 그 상을 받았다" — 과거형, 완전히 지급되었으니 더 이상 들어올 것은 없다. 제자의 약속은 계속된다: 보시는 아버지, 아시는 아버지, 갚아주시는 아버지, 우리가 용서하듯 용서하시는 아버지, 악에서 건지시는 아버지. 그 약속 안에 사는 것은 믿음과 신뢰로 사는 것이다 —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믿음이 아니라, 아버지가 줄곧 기다리고 계셨던 방으로 한 걸음 들어서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예수가 모든 공적(公的) 경건의 행위를 금하십니까?

아니라. 예수님은 사람들 박수를 최종 보상으로 받는 경건을 금하셨을 뿐, 공적인 증언 자체를 금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 본인도 때로는 공개적으로 기도하셨고(约翰福音 11장)도 증인들이 있는 가운데 세례를 받으셨다(马太福音 26장). 문제는 동기이다. 군중이 온전한 삯을 이미 지불했을 때, 아버지께서 주실 추가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은밀한 곳에서 보시는 아버지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숨겨진 장소가 아니라 숨겨진 관계를 의미합니다 — 유일한 관찰자 앞에서 행해지는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있는 감시자가 아니라 내실에서 함께하시는 아버지이시며,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마태복음 6:8).

주님의 기도가 왜 그렇게 짧은가요?

예수님은 방금 헛된 반복을 경고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 많은 말 때문에 들림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해 (7절). 주기도어는 간결함과 신뢰를 본보기로 합니다. 그 첫 세 가지 청원은 인간의 필요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이름, 나라, 뜻에 집중합니다.

내가 남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나를 용서하지 않으실 수 있겠는가?

마태복음 6:14-15는 용서가 흘러야 함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사죄를 진정으로 받은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남들을 용서할 수 있는 자유를 얻습니다.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아직 뚫고 들어오지 못했음을 드러냅니다. 믿음과 신뢰의 표징은 우리가 그것을 베풀 때까지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 녹아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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