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우편에 앉으신 이
시편 110은 승리하신 왕이 이미 그 보좌에 앉으셨음을 보도록 우리를 부른다—우리의 몫은 신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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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시편 110:1-7
다윗의 시. 시편.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등상이 되게 할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라.”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네 강력한 권杖을 내밀으실 것이다. 너의 원수들을 다스려라! 너의 백성들이 너의 전쟁의 날에 스스로 자원하여 나아온다. 장엄한 거룩함 가운데, 태로부터, 새벽부터, 너의 것은 청년의 이슬이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셨고 후회하지 않으시리라. “너는 영원한 제사장, 나의 규례에 의한 의로운 왕이다.” 나의 주권자는 너의 오른편에 계시니 — 신의 진노의 날에 왕들을 짓누르신다. [하나님께서] 열방 위에 심판을 행하시며, 시체를 쌓으시고, 머리를 사방에서 부수신다. 내 주께서 길에서 시내를 마시니, 그러므로 머리를 높이 든다.
시편 110편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약성경 시편이다. 예수님 자신도 메시아의 정체성에 대하여 바리새인을 잠�하게 하시려고 1절을 인용하셨다(마태복음 22:44). 이 다윗의 시편 또한 다윗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말씀하시는 신비로운 장면을 보여주며, 그분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앉아 계신다.
Narration
문맥
시편 110편은 '다윗의 시편'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다윗이 신적 영감 아래 이 시를 작곡했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고난에 대해 쓴 많은 시편들과 달리, 이 시편은 신적 신언(神言)을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하나님이 다윗의 '주'께 말씀하시는 이 대화 구조는 시편의 신학에서 중심적이며,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질문에 근거로 삼으신 바로 그 지렛대였다(마태복음 22:41-46).
역사적 배경은 통일 왕국 시대, 즉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시온에서 통치하던 시기와 부합한다. 그 왕좌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강력한 홀'을 내밀으신다(2절). 그럼에도 이 시편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서 분리되어 있던 두 직분—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을 결합한 왕-제사장 인물을 예견한다. 유배 이후 대제사장직은 헬레니즘 시기에 뇌물로 부패한 정치적 직책이 되었는데, 여기서는 참된 멜기세덱 왕-제사장이 나타나실 때 이상이 회복된다.
이 시편은 또한 심판을 다룬다: 하나님의 '주'께서 진노의 날에 왕들을 부수시고 '시체들을 쌓으신다.' 다윗 아래 있던 원래 청중에게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변 열국들을 정복하실 것을 신뢰하는 행위였다. 외국의 압제 속에 있었던 유배기 및 유배 이후의 독자들에게 이 시편은 유배를 하나님께서 열국들에 내리시는 심판으로 재규정하였으며, 다가오는 왕-제사장을 최종 정의를 집행하실 자로 제시하였다.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에서 다윗의 작사(作史)를 확인하고, 다윗이 '다양한 운율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편을 작곡했다고 기록하면서, 시편 110편을 통일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다윗의 통치기에 단단히 위치시키고 있다.
시공간
고대 예루살렘의 다윗 왕국 시대를 배경으로, 이 묵상은 이스라엘의 왕정이 전개되던 가운데 하나님의 기름 부음받은 왕을 향한 언약적 신뢰로서의 믿음을 탐구합니다.
의미
시편 110편은 메시아의 형상을 일곱 가지 움직임으로 그려내며, 각각은 믿음과 신뢰를 불러일으킵니다.
첫째, 메시아는 앉으십니다 (1절). '내 오른쪽에 앉으라'는 것은 완수된 사역의 언어입니다. 원수들이 분노하는 동안 왕은 이미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신자에게 믿음은 하나님이 일어나시도록 돕기 위해 위로 힘겹게 뻗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적인 행위를 완수하시고 이제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등상이 되게 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 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둘째, 메시아는 보내십니다 (2절). '여호와가 시온에서부터 너의 강장한 쇠뱀대를 펴시리라.' 쇠뱀대는 장식이 아니라 통치의 행위입니다. 믿음은 왕이 그의 말씀을, 그의 영을, 그의 종들을 보내실 때 그들이 권위를 가지고 나아가심을 신뢰합니다. 비록 보이는 전장이 정복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렇습니다.
셋째, 메시아는 자발적으로 따르심을 받으십니다 (3절). '너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날마다 새 힘을 얻으리니, 전쟁의 날에 너는 청년의 새벽 이슬과 같이 되리라' 참된 예배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이끄려진 자들은 스스로를 전장에 질질 끌고 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드립니다. 이것이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의 모습입니다. 정보가 아니라 기꺼이 항복하는 것입니다.
넷째, 메시아는 쇠하지 않는 청춘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3절 후반). '태에서부터, 새벽부터, 너의 것은 청년의 이슬이었다.' 그의 능력은 borrowed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본질적입니다. 믿음은 활력이 무한한 분 안에 쉬어 있습니다.
다섯째, 메시아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4절). '여호와께서 맹세하셨고 돌이키지 않으시리라.' 하나님은 이 제사장 직분을 단순히 제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맹세하십니다. 전능자로부터의 맹세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의 기초입니다.
여섯째, 메시아는 심판을 집행하십니다 (5-6절). '주(主)는 주의 오른손에 계시니,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왕들을 부수시리라.'这里的 심판은 앙갚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로운 것입니다. 믿음은 잘못들이 다뤄질 것임을 신뢰합니다. 추방, 고난, 불의 — 이 어느 것도 최종적이지 않습니다.
일곱째, 메시아는 추격하시며 유지되십니다 (7절). '그는 길에서 시내를 마시리니, 그러므로 그는 머리를 높이 드시리라.' 추격하시는 왕은 쇠약해지지 않습니다. 유지하시는 은혜의 시냇물이 모든 마디에서 그를 만납니다. 믿음은 나를 사랑으로 추격하시는 분이 나보다 먼저 회복이 필요하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신청
적용 1: 삶이 끝나지 않은 전쟁처럼 느껴질 때, 다시 1절로 돌아가라. 왕이 이미 앉아 계신다. 너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 일어나시기를 요구함으로써 자라는 것이 아니라, 승리가 이미 확정되었기 때문에 그가 이미 앉으셨음을 기억함으로써 자란다.
적용 2: 이번 주에 하나님께서 너를 세워놓으신 '시온'이 어디인지 확인하라. 홀은 특정한 장소에서, 곧 그의 주권적 배치에서 뻗어 나온다. 너는 그가 맡기지 않은 것에 대해 홀을 잡지 못한다. 그가 너를 심으신 곳에서 신실하게 섬기며, 그곳에서 그의 손길이 미치는 것을 신뢰하라.
적용 3: 너의 마음속에서 자원하는 자들이 나오기를 주님께 구하라. 시편은 명령하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위엄로운 거룩함 안에서' 앞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오늘 네 순종이 죄책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원에서 흘러나오기를 기도하라.
적용 4: 심판을 만날 때—개인적인 회개가 되든, 교회적 징계가 되든, 사회적 격변이 되든—그것을 업신여기지 말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의 심판과 구원의 행위에 대한 체험적 지식'이다. 그 힘든 순간들이 통치하시는 분의 성품을 너에게 가르치게 하라.
적용 5: 하늘의 대제사장이 너무 멀리 계신다고 생각하고 싶을 때, 4절을 기억하라. '너는 영원히 제사장이다.' 영원히라는 것은 네가 예약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너는 이미 맹세로 취소할 수 없는 보혜사를 가지고 있다.
적용 6: 의를 추구하다 지칠 때, 7절을 신뢰하라. 그가 시냇물에서 마셨으니 너도 마실 것이다. 주님은 그의 용사들을 길 위에서 붙들어 주시고, 잠시 쉬어 마셨기에 정확히 그의 머리를 높이 드신다. 네 안식이 그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일하시는 방식의 일부이다.
되새김
오늘 아침 저는 1절에 이끌립니다: "내 오른쪽에 앉으라." 왕이 이미 앉으셨다고 믿는 것은 믿음 안에서 반항적인 무엇이 있습니다. 세상은 나에게 모든 것이 아직 보류 중이며, 아직 일어나고 있으며,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신문 헤드라인은 원수가 아직 발등이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내 마음도 나 안의 전쟁이 아직 이겨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편은 완료형 동사로 시작합니다: 그가 앉으셨다. 그가 그의 칼을 거두시고, 그의 보좌를 차지하셨으며, 그 앉으신 자리에서, 그가 홀을 내밉니다. 믿음은 일어섬을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앉으신 분을 바라보며 쉬는 것입니다.
2절은 그가 그의 홀을 "시온에서" 내민다고 말합니다. 시온에서—내가 선택할 자리에서가 아니라. 그는 그의 관점에서 통치하시지, 내 관점에서가 아닙니다. 내 일은 왕좌를 재배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홀의 닿는 곳에 서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날은 제가 이렇게 합니다. 어떤 날은 왕좌를 저에게 더 가깝게 옮기는 데 바쁩니다.
3절은 저를 겸손하게 합니다: "주의 백성이 자원하여 나아간다." 자원하여. 끌려서도, 뇌물을 받아서도, 죄책감에 눌려서도 아니다. 전투의 날은 또한 자원한 예배의 날입니다. 칼이 요구하는 같은 날이 찬양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은혜에 의해 뜻이 사로잡혀 이제 자원봉사자로서 나아가는 자들과 함께 헤아림받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원합니다.
4절의 제사직은 저의 영혼이 쉬고자 하는 바닥입니다. "여호와께서 �세하셨다." 맹세된 제사직은 수습적 arrangements이 아닙니다. 저는 나의 자백을 계약 노동자가 아닌 맹세에 묶인 제사장에게 가져갑니다. 히브리서는 이것이 멜기세덱의, 오랜, 영원한 것이라고 나에게 말합니다. 내 죄는 취소할 수 없는 맹세로 대면됩니다.
그리고 7절: " 그가 길에서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높이 든다." 추격하는 왕이 한 모금 마십니다. 추격하는 왕은 (혹은 인간이 되셨기에) 충분히 쉬어 멈출 만합니다. 그는 지치지 않으시는 것은 그가 받쳐지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의 머리를 높이 드는 것은 갈증을 무시하면서 밀고 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마시고 계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멈추고 마시겠습니다. 목이 마른 채 의를 추격하지 않겠습니다. 시온의 홀 아래 잠시 앉겠습니다. 전쟁은 앉은 자리에서 이겨졌음을 기억하겠고, 거기 앉으신 분을 신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