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고난 중에 위로를 얻기 위해 지혜를 찾음

솔로몬은 그의 연약함 안에서 하늘로부터 지혜를 부르짖는다 - 몸이 무겁게 짓눌리고 마음이 피곤해질 때, 위안은 위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성령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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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집회서 9:1-18

솔로몬의 지혜를 위한 기도 "아버지들의 하나님이시며 긍휼의 주여,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시고 지혜로 사람을 형상하여 그분이 만든 피조물을 다스리며 세상을 거룩과 의로 다스르게 하시고 정직한 마음으로 판단을 베푸시는 이여, 주의 보좌 곁에 있는 지혜를 내게 주소서, 주의 종들 중에서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는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로서, 약하고 수명이 짧으며 판단과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아들 중에서 완전한 자라 할지라도 당신에게서 오는 지혜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택하사 주의 백성의 왕이 되게 하시고 주의 아들과 딸을 다스리는 재판관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거룩한 산 위에 성전을 세우게 하셨고, 주의 거하시는 성 안에 제단을 세우게 하셨으니, 이는 처음부터 준비하신 거룩한 장막의 모본입니다. 주의 일을 아시며 주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함께 하셨고, 주의 보시기에 즐겁고 주의 계명에 따라 옳은 것을 아시는 분이 지혜이시니, 그 분이 거룩한 하늘들에서부터 나오게 하시고 주의 영광의 보좌에서 보내소서, 그 분이 나와 함께 있어 수고하게 하며, 내가 주께 즐거운 것을 배울 수 있게 하소서. 그 분은 모든 것을 알고 깨닫고, 나의 행동을 슬기롭게 인도하시며 영광으로 나를 지키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나의 행사가 받으실 만하겠고, 내가 주의 백성을 의롭게 판단하며 내 아버지의 보좌에 합당하리라. 사람의 누가 하나님의 뜻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뜻하시는 것을 누가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죽을 자의 추론은 가치가 없고 우리의 계획은 실패하기 쉽습니다. 썩어질 몸이 영혼을 무겁게 누르고 이 흙의 장막이 사려 깊은 마음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땅 위의 일을 겨우 추측할 수 있으며, 손에 닿는 것이라야 수고로써 발견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을 누가 추적해 보았겠습니까? 주께서 지혜를 주시고 높은 곳에서 거룩한 영을 보내시지 아니하면 누가 주의 뜻을 배웠겠습니까? 이같이 땅 위에 있는 자들의 길이 바로잡혀졌고, 사람들이 주께 즐거운 것을 가르침 받았으며, 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공된 본문은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의 기도이며, 어떤 전통에서는 시라크 9장과 연관짓기도 합니다(대부분의 성경에서는 지혜서 7-9장 또는 열왕기상 3장에 나타납니다). 이 본문은 고난을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가 영혼에게 신적인 위안을 추구하게 만드는 느껴지는 무게로 제시합니다.

배경과 배경 설정

이 기도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첫 성전을 세울 준비를 하는 영국(United Kingdom) 시기에 설정되어 있다. 본문은 그를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이며 '판단과 법을 분별함이 적은, 연약하고 수명이 짧은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런 연약성의 고백은 매우 인상적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왕이신 그가, 신적인 지혜 없이는 온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것'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함축된 고난은 외적인 박해가 아니라 유한한 피조물로서의 내면적 짐, 곧 '썩을 몸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이 흙의 장막이 사려 깊은 마음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고난은 보편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거나 지혜롭게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아픔이다. 솔로몬의 반응은 절망이 아니라 간청이다. 그는 창조 때부터 함께 하였으며 '주의 보시기에 기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가 거룩한 하늘로부터 보내져 자기 곁에 함께 수고하며 그 영광으로 자기를 지키도록 요청한다. 이 본문에서 오는 위로(tender comfort)는 연약함의 제거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지혜로 연약함을 만나는 신적인 동행이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그 이름을 거하게 하시기로 택하신 예루살렘, 곧 '태초에 예비하신 거룩한 장막의 모사'로서 성전이 세워질 도시에서 일어난다.

시공간의 한 단면

예루살렘 통일 왕국时代 다윗 통치 아래에서, 첫 번째 성전 시기의 시라(Ecclesiasticus) 지혜 문학 전통을 통해 고난을 성찰하는 내용으로 설정되었다.

본문의 의미

이 본문은 고난과 위로에 대한 신학을 세 단계로 전개한다. 첫째, 고난은 솔직하게 명명된다. 솔로몬은 약점을 부인하지 않고 우주적인 언어로 이를 표현한다. 썩을 몸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장막이 마음을 부담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칠십인역 전통의 신학자들은 이후 이를 gravitas carnis, 곧 육신의 무거움이라고 부를 것이다. 여기서 고난은 원수들이 가하는痛苦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구조적 한계이다. 둘째, 위로는 고난의 제거가 아니라 지혜의 임재이다. “거룩한 하늘에서 그를 보내사… 나와 함께하여 수고하게 하소서.” ‘수고하게 하다’를 뜻하는 동사 συγκοπιάω(synkopiaō)는 함께 지치다, 나란히 수고하다는 의미이다. 성서적으로 이해할 때 위로는 피로가 없음이라기보다 God와 함께하는 피로이다. 셋째, 위로는 성령을 통해 전달된다. 본문은 wisdom을 보내시되 “높이 계신 데서 지혜를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아니하셨다면” 하고 간구한다. 이것은 지혜, 창조, 그리고 God의 영을 연결하는 가장 분명한 구약 진술 중 하나이다. 따라서 위로에는 삼위일체의 씨앗이 놓여 있다. 아버지는 주시며, 지혜는 내려오고, 성령은 부으신다. 질병이나 부당함이나 슬픔, 또는有限性이 주는 조용한 아픔을 겪는 독자에게 본문은 빠른 탈출을 약속하지 않지만, 진실한 약속을 건넨다. 창조 당시 물 위에 떠 있던 바로 그 성령이 이제 지친 마음 위에 머문다는 약속이다.

오늘의 적용

이 기도는 우리가 고난을 감당하는 방식을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다시 형성합니다. 첫째, 자신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솔로몬의 '나는 약하고 수명이 짧다'는 말은 거짓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정확한 자기 평가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부인하라고 가르침받지만, 이 본문은 우리가 그 고통을 명확히 표현할 것을 가르십니다. 짐을 이름 붙이는 것이 위로를 받는 문입니다. 둘째, 위고가 짐의 제거로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이 기도는 솔로몬에게 왕직이 거두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솔로몬과 함께 '수고하기'를 구합니다. 우리 삶에서 이것은 신적 위고가 종종 과제의 소멸이 아니라 그 수고 가운데 우리 옆에 함께하시는 분—배우자, 친구, 상담자, 성경에서 온 리마—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성령을 구체적으로 구하십시오. 이 본문은 지혜를 높은 곳에서 보내지는 성령과 연결시킵니다. 우아하게 기도할 수 없을 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의 영을 보내소서.' 솔로몬을 이끌며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동일한 성령이 오늘날 당신의 결정, 관계, 인내 속으로 당신을 이끌 것입니다. 실천 단계: 이번 주에 육체가 영혼을 짓누르는 무게를 느낄 때 멈추어 솔로몬의 기도를 자신의 말로 드리십시오. 문제가 사라지기를 구하지 마십시오. 지혜가 당신 곁에 앉아 함께 수고하며 이제부터 영원까지 당신의 나가심과 들어오심을 지키시기를 구하십시오.

되새김

어떤 고난은 약으로도 닿지 않고, 어떤 충고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곧, 우리 자신만으로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깨닫지 못하는 그 고난입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땅 위의 일을 겨우 헤아리는 것'이라 부릅니다. 정직한 성인은 인생을 다 풀어냈다고 가장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무릎 꿇습니다. 구합니다. 울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지혜를 먼 곳에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수고하러 보내신다는 기이한 위로를 받습니다. 성령은 힘이 아닙니다. 동역자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기꺼이 피곤해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이 썩은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야 온전히 볼 영광으로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 날까지, 우리는 무겁고 잠시 머무는 장막 사는 자입니다. 그러나 장막이 마지막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고', 성령은 위로부터 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위안은 고난을 지워버리는 감정이 아닙니다. 고난 한가운데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견디십시오. 구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엇이 기쁜 줄 아시는 이가 보내심을 받았고,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그대와 함께 계십니다.

자주 묻는 질문

솔로몬이 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함으로써 그의 기도를 시작하는가?

고통의 본성 중 하나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软弱는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통하는 문을 여는 바로 그 자세입니다.

이 구절에서 묘사된 위안은 고통의 제거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성경적 위안은 고통의 사라짐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에게 자신의 고난 가운데 "함께 수고"할 것을 구합니다—그의 짐이 내려가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내가 자신의 고난 속에서 솔로몬이 구한 그 성령을 받을 수 있는가?

새로운 약속은 신실하게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주신다고 선언합니다.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필요 없이, 그저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高处에서 당신의 영을 보내사 나와 함께 수고하게 하소서." 그는 신실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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