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명철

반역 속의 지혜와 깨달음을 추구하며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되며, 만일 나라들이 그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심판은 이미 드러난 것입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지혜서 1:1-16

아르박삿이 엑바다나를 요새화하다 앗시리아의 큰 성 니느웨를 다스리던 느부갓네살 왕의 통치 제십이년에, 엑바다나에서 메대 사람을 다스리던 아르박삿의 시대에, 그가 왕이 되어 다듬은 돌로 둘레 세 규빗, 길이 여섯 규빗인 석재로 엑바다나에 성벽을 쌓고, 성벽의 높이는 칠십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으로 하였으며, 문에는 기초의 너비가 백 규빗인 망대를 높이 백 규빗으로 세우고, 문을 높이 칠십 규빗, 너비 사십 규빗으로 만들어 그의 군대가 힘있게 진격하고 보병이 대오를 정렬하게 하였으니, 바로 그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라가의 경계에 있는 큰 평지에서 아르박삿 왕과 전쟁을 벌였다. 산지 모든 백성과 유브라데스와 디그리스와 히다스페스 강변에 사는 자들, 아리오크가 엘람 사람을 다스리던 평지에 사는 자들이 그와 합세하였다. 갈대아의 군대에 합류한 백성이 많았다. 느부갓네살이 최후통첩을 내리다 그때 앗시리아 왕 느부갓네살이 페르시아에 사는 모든 자와 서쪽에 사는 모든 자, 곧 길리시아와 다메섹과 레바논과 안티레바논에 사는 모든 자, 해안변에 사는 모든 자, 갈멜과 길르앗의 족속 중에 있는 자, 윗갈릴리와 큰 평지 에스드렐론에 있는 자, 사마리아와 그 주변 마을에 있는 모든 자, 예루살렘과 베다니와 겔루스와 가데스와 애굽의 강변에 사는 자들, 곧 다브네스와 라암세스와 고센 온 땅, 나아가 다니스와 멤피스 이쪽에 사는 자들, 에디오피아의 경계까지 애굽에 사는 모든 자들에게 보내었으나, 온 지방에 사는 모든 자들이 앗시리아 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와 함께 전쟁에 나서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는 그들이 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를 한 사람에 불과하게 여겼기 때문이니, 그의 사신들을 빈손으로 수치스럽게 돌려보냈다. 아르박삿이 패전하다 이때에 느부갓네살이 온 지방에 크게 노하여, 그의 보좌와 왕국을 두고 맹세하기를 길리시아와 다메섹과 시리아 온 영토를 반드시 갚아주리라, 칼로 그들을 죽이리라, 또 모압 땅의 모든 거민과 암몬의 백성과 온 유다와 애굽의 모든 사람을 두 바다의 해안까지 죽이리라 하였다. 제십칠년에 그가 군대를 이끌고 아르박삿 왕을 치러 나가니, 그를 전장에서 이기고 아르박삿의 온 군대와 모든 기병과 모든 전차를 무찔렀다. 그리하여 그의 성들을 점령하고 엑바다나에 이르러 그 망대들을 빼앗고 그 시장을 약탈하며 그 아름다움을 수치로 바꾸었다. 그가 라가의 산에서 아르박삿을 사로잡아 사냥용 창으로 쳐서 죽이고, 오늘날까지 그를 온전히 멸하였다. 그러고서 그가 그들과 함께 니느웨로 돌아왔으니, 그는 그의 모든 연합군과 함께 막대한 군대를 이끌고, 거기서 일백이십 일을 그의 군대와 함께 쉬며 잔치를 베풀었다.

지혜 1장 1-16절로 제공된 본문이 정경에 실린 지혜서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본문은 유딧서 1:1-12절에서 온 것으로, 느부갓네살의 군사 원정과 여러 민족의 항복 거절에 관해 서술합니다. 경배는 제공된 본문을 주요 증거로 사용하여 진행됩니다.

역사적·지리적 배경

이 구절은 수사/예루살렘에서 선지자들과 유배 시대에 일어난다. 그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이해하면 세부 사항과 당시 적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시대와 장소

선지자들과 엑소더(유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묵상은 수사(유배자들이 하나님의 보편적 주권을 경험한 장소)에서 온 선지자적 지혜 전통과 예루살렘(선지자들이 심판과 소망을 동시에 향하게 한 도시)을 연결한다.

자주 묻는 질문

잠언 1:1-16이라고 되어 있지만 내용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어떻게 된 건가요?

제공된 본문은 실제로 정경 wisdom서의 1장이 아니라, 유딧서 1:1-12에서 느부갓네살의 군사 원정과 열방의 반응을 묘사한 내용이다. 이 묵상은 정경 wisdom 문학의 핵심 주제인 '지혜와 총명'이라는 주제를 정경 본문과 연결하면서, 제시된 본문을 존중한다.

경외와 지혜의 관계는 무엇인가?

성경은反复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경외하게 되면, 이 말씀에서 설명하는 어리석음, 곧 위대한 권력을 '한 사람에 불과한 것'으로 대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이해가 wisdom의 일부인 이유는 무엇인가?

히브리어에서 이해(בינה, 빈나)는 단순히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의 그 위치를 보는 것, 즉 사실과 의미를 통합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지혜 없는 이해는 단지 데이터에 불과하며, 지혜 없는 깨달음은 단지 교묘함에 불과합니다.

현대적 '나라들의 반역'은 어떤 모습인가?

사회가 기술, 경제, 정치 또는 이념을 궁극적인 권위로 떠받들어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필요 없다"는 태도를 제도화할 때, 그것이 바로 국가적 반역의 현대적 형태이다. 현명한 응답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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