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지체, 한 그리스도: 몸 안의信仰
바울이 신사의 은사 가운데 신앙을 열거할 때, 그는 또한 교회의 몸을 동시에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신앙은 고립된 불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유된 신뢰이다.
형제들아, 영적인 것에 관하여는 너희가 무식하지 않기를 원노라. 너희는 너희가 이방인일 때에 헛된 우상에게로 끌려 간 줄을 알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하지 못할지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으며,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역사는 여러 가지나 하나님은 같으시니, 만물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행하시는 자니라. 그러나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은 유익하게 하시며 나눠 주시니, 곧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을 행하며,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며,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을 분별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방언의 종류를,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통역하는 것을 능력으로 하시나니,这一切은 같은 한 성령이 뜻대로 나누어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심이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은 줄지라도 하나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한 몸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음이라. 몸은 하나의 지체가 아니고 여러 지체니, 만일 발이 이르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들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말미암아 그 몸에 들지 못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들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말미암아 그 몸에 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만일 온 몸이 다 눈일진대 듣는 데가 어디며, 온 몸이 다 듣는 데일진대 냄새 맡는 데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뜻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일진대 몸이 어디뇨. 지금은 여러 지체가 있으나 한 몸이요, 눈이 손더러 나는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머리가 발더러 나는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니, 그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더 필요한 것이요,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을 더 귀히 여기는 것으로 옷을 더하며, 우리의 약한 것들을 더 존귀하게 하였으니, 이같이 우리 아름다운 것들은 쓸 데가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사 부족한 지체에 더 존귀한 것을 주사, 몸으로 분쟁이 없게 하시며, 그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봄을 품게 하시되,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만일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니라.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먼저 사도들을, 둘째로 선지자들을, 셋째로 교사들을,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들,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들, 돕는 자들, 다스리는 자들, 여러 가지 방언들을 세우셨으니, 다 사도냐? 다 선지자냐? 다 교사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냐? 다 병 고치는 은사가 있느냐? 다 방언을 말하느냐? 다 통역하느냐? 그러나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더욱 더 너희에게 뛰어난 길을 보이노라.
고린도전서 12장 1-20절은 '신뢰'(9절)를 은사의 분배와 여러 지체를 가진 한 몸의 비유 안에 두어 우리의 주제를 확립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신뢰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입니다. 각 믿는 자가 성령의 나타남을 받지만, 모든 사람이 한 몸으로 세례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