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폐허 속에서 성스러운 도시를 재건하다

고통이 끝이 없어 보일 때에도,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과 파수꾼의 신실함은 인내 자체가 부활이 자라는 토양임을 보여줍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마카베오상 10:1-20

알렉산더 에피파네스의 반란 제백육십년에 안티오쿠스의 아들 알렉산더 에피파네스가 이르러 프톨레마이스를 점령하니 그들이 그를 맞아들여 그 곳에서 그가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왕 드메트리우스가 이 일을 듣고는 매우 큰 군대를 모아 그와 싸우러 나아갔다. 그리고 드메트리우스는 요나단을 향해 존경의 말을 담은 평온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으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저 사람이 우리와 대항하여 알렉산더와 평화 관계를 맺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와 화친하도록 하자. 그는 우리가 자기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그의 민족에게 행한 모든 잘못을 기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드메트리우스는 그에게 병력을 모집하고 무장을 갖추며 자기와 동맹이 될 권한을 주었고, 성곽에 있던 인질들을 그에게 넘겨줄 것을 명하였다. 그때 요나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모든 백성과 성곽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 편지를 읽었다. 그들은 왕이 그에게 병력을 모집할 권한을 주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불안해하였다. 그러나 성곽의 사람들은 인질들을 요나단에게 넘겨주었고, 요나단은 그들을 그들의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그리고 요나단은 예루살렘에 거하며 그 도시를 재건하고 복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벽을 쌓고 더 나은 방비를 위해 깎은 돌로 시온 산을 둘러싸도록 지시하였고, 그들이 그대로 행하였다. 그때 바퀴데스가 세운 요새에 있던 외국인들이 도망쳤으니 각자가 자기 처소를 떠나 자기 고국으로 갔다. 오직 벧술에 일부 사람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들은 율법과 명령을 버린 자들이었으니 이는 그곳이 피난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왕 알렉산더가 드메트리우스가 요나단에게 보낸 모든 약속과 요나단과 그의 형제들이 싸운 전투들, 그들이 행한 용맹스러운 업적들, 그리고 그들이 겪은 고난들에 대해 들었다. 그러므로 그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러한 또 다른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지금 와서 그를 우리의 벗이자고 동맹을 맺자" 하였다. 그리고 그가 편지를 써서 그에게 보냈으니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요나단이 대제사장이 됨 "왕 알렉산더가 그의 형제 요나단에게 문안하노라. 당신이 용맹스러운 전사이며 우리의 벗이 될 만하다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당신을 당신 민족의 대제사장으로 임명하노니 당신은 왕의 벗이라 불리울 것이며" (그리고 그가 그에게 자색 옷과 금관을 보내며) "당신은 우리의 편에 서서 우리와 우정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요나단이 제백육십년 칠월에 초막절에 성스러운 옷을 입었고, 병력을 모집하여 풍부하게 무장을 갖추었다. 드메트리우스가 이 일들을 듣고는 마음이 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알렉산더가 유대인과 우정을 맺어 자기 힘을 강화하는 데 우리보다 앞서갔다. 나도 또한 그들에게 격려의 말과 명예와 선물을 약속하는 편지를 써서 그들의 도움을 얻도록 하겠다"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보냈다. 드메트리우스가 요나단에게 보낸 편지 "왕 드메트리우스가 유대 민족에게 문안하노라. 너희가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고 우리와 계속 우정을 유지하며 우리의 적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듣고 기뻐하였다. 이제 계속하여 우리와 신의를 지키라, 그러면 우리가 너희가 우리를 위해 행하는 일에 선으로 보답하겠다. 우리가 너희에게 많은 특권들을 부여하고 너희에게 선물을 주겠다. "그리고 이제 내가 너희를 석방하며 모든 유대인들을 공물과 소금세와 왕관세 납부에서 면제하노니, 내가 받아야 할 곡식의 삼분의 일과 나무 열매의 반을 거두는 대신에 이 날부터 영원히 이것들을 면제하노라. 내가 유다 땅이나 사마리아와 갈릴리에서 그 땅에 추가된 세 구역에서부터 이 날부터 영원히 그것들을 거두지 않겠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 그것의 십일조와 수입은 거룩하며 세금이 면제되도록 하라. 내가 예루살렘 성곽에 대한 통제권도 면제하여 대제사장에게 주노니, 그가 자기 선택의 사람들을 그곳에 배치하여 지키게 하도록 하라. 그리고 내가 왕국 안 어느 곳이든 유다 땅에서 사로잡혀 온 모든 유대인을 값을 지불하지 않고 석방하노니, 모든 관리들이 또한 그들의 가축에 대한 세금을 면제하도록 하라. "그리고 모든 절기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들, 그리고 절기 전 사흘과 절기 후 사흘—이 모든 것이 내 딸 안에 있는 모든 유대인에게 면제와 석방의 날이 되도록 하라.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서 무엇이든 강제로 받거나 그들을 어떤 일로 괴롭힐 권한을 갖지 못한다. "유대인이 삼만 명까지 왕의 군대에 등록되도록 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왕의 모든 군대에게 마땅한 봉급이 주어지도록 하라. 그들 중 일부를 왕의 큰 요새에 배치하고, 그들 중 일부를 왕국에서 신뢰받는 직위에 두라. 그들의 관리들과 지도자들이 그들의 수 가운데에서 나오게 하고, 왕이 유다 땅에서 명령한 대로 그들의 자기 법에 따라 살게 하라. "사마리아 지역에서 유다에 추가된 세 구역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유다에 합쳐져 하나로 여겨지도록 하라."

마카보기 1권 10:1–20은 셀레우코스 왕조 아래 이스라엘의 투쟁에서 결정적 변곡점을 포착한다: 알렉산더 에피파네스가 프톨레마이드를 점령하고, 데메트리오스가 요나단과의 동맹을 구하며, 요나단이 깎은 돌로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기 시작한다. 정치적 책략 이면에는 더 조용한 진실이 있다—마카비 세대는 오랜 고통의 세월을 견뎌왔으며, 이제 떨리는 손으로 회복의 돌들을 들어올린다.

Narration

맥카비 시대의 다층적 고난

백육십 년은 마카비 1권 10장을 기원전 2세기 초,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유대인의 반란을 짓밟은 지 약 이십 년 후로 설정한다. 유대 백성은 고난의 골짜기를 걸어왔다. 제단은 더럽혀졌고(마카비 1권 1:54), 신실한 어머니들과 그녀들의 일곱 아들은 순교했으며(마카비 2권 7장), 노년의 서기관 엘르아살르는 처형되었고(마카비 2권 6:18–31), 신실한 자들은 율법을 보존하기 위해 산악 지대로 도피했다. 이 상처받은 풍경 속으로 안티오쿠스의 아들 알렉산더가 들어와 데메트리오스 1세와 셀레우코스 왕좌를 놓고 다투고 있다. 두 왕 모두 유다 마카비의 아우인 요나단을 잠재적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이 본문은 단순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풀무질을 지나온 백성이 이제 다시 돌을 쌓기 시작할 수 있게 된, 서서히 떠오르는 모습이다. 깎은 돌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Solomon의 건축자들을 의도적으로 환기시키는 것이며(열왕기상 5:17), 후에 느헤미야의 복구를 미리 예고한다(느헤미야 3–4장). 세세한 디테일에 주목하라. 요나단은 작업자들에게 "산이온 산을 깎은 돌로 둘러싸아 더욱 견고하게 방비하라"고 지시했다. 이 작업은 힘들고 화려하지 않으며 이방 수비대의 그림자 아래서 진행된다. 벧술에만 어떤 무법자들이 남아 있었다. 이土地上의 모든 사람이 복구를 환영하지는 않았다는 엄중한 경고이다. 고난은 신실한 자와 신실하지 않은 자를 드러냈고, 이제 재건은 신실한 손에 의해서만 진행된다. 이것이 고난과 위안이라는 주제가 뿌리를 내리는 토양이다. 마카비 1권 10장의 위안은 아직 성령을 통한 완전한 신약의 계시(요한복음 14:16, 고린도후서 1:3–4)는 아니지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위로이다. 인질이 부모에게 돌아오고, 성벽이 돌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고, 이방인들이 요새에서 도망치고, 외국의 왕들에 의해 대제사장이 인정받는다. 하나님은 고난을 즉시 제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고난의 한가운데에 위안을 짜넣으신다.

시공간: 예루살렘의 성벽과 파수꾼

이스라엘 땅의 예루살렘, 베들레헴, 나사렛 일대에서 첫 성전 시대에 배경한 본 묵상은 고난과 신실하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의미: 고난 속에서 솟아오르는 재건

마카보기 10장의 신학적 의미는 고난과 위로의 세 가지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 이 본문은 위로는 종종 평범한 사람들의 신실함을 통해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나단은 갑작스러운 하늘의 환상을 받지 않는다. 그는 편지를 받고, 그것을 큰 소리로 읽으며, 재건을 위한 작업에 곧바로 들어간다. 부모에게 돌아온 인질들은 장대한 기적이 아니라, 압박받는 민족의 외교적 인내와 꾸준한 소망의 조용한 산물이다. 이 본문에서 위로는 거의 화려하지 않다. 그것은 다시 볼 수 있을까 의심했던 어머니에게 아이가 건네지는 소리이다. 둘째, 이 본문은 고난이 더 깊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백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카보 세대는 수년간의 박해 속에서 단련되었고, 이제야 비로소 다듬은 돌들을 정성스럽게 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평화만을 알았던 자들은 부주의하게 건축했을 것이고, 성전과 성邑, 가족의 상실을 겪었던 자들은 이제 단단한 결의로 건축한다. 여기에는 신약이 고린도후서 1:3-7에서 되풀이하는 원리가 있다. 우리의 고난 중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다른 이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갖추게 한다. 마카보 사람들은 아직 그 말씀을 듣지 못했지만, 이미 그것을 살고 있었다. 셋째, 이 본문은 세상에서의 회복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연약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성벽은 쌓이지만, 무법자들로 가득 찬 것은 벳술만이 막을 뿐이고, 이방인들은 떠나지만, 나중 장들에서는 여전히 성채가 다루어져야 한다. 마카보기 10장의 위로는 진실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중간 단계에 있다. 그것은 모든 히브리어 성경이 그러하듯,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 그리고 요한복음 19장의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곧 손으로 짓지 않은 성읍의 건축자이시며 동시에 제사장이 되실 분을 통해 오게 될 궁극적인 위로로 나아간다.

적용: 오늘날 폐허 사이의 파수꾼이 됨

마카보기 1서 10:1–20은 정치의 청사진이 아니라 신실한 인내의 초상화입니다. 이 본문으로부터 세 가지 적용이 흐릅니다. 첫째,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다면, 위로가 먼저 작은 다듬은 돌들로 올 것임을 기대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삶을 한 번의 결정, 한 번의 회복된 은혜, 한 번의 순종한 예배를 통해 재건립하십니다. 요나상은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재건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더 큰 이야기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결혼과 교회, 그리고 우리 내면의 삶에서 다음 신실의 돌을 놓을 부름을 받았습니다. 둘째, 고난을 겪고 지나왔다면, 당신의 위로는 이제 사명적임을 인식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에게 위로를 소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행하라고 주셨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었던 사람들, 자녀의 죽음을 거쳐온 사람들, 우울증의 긴 밤을 견뎌낸 사람들 — 바로 그들이 같은 골짜기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갈 자격을 갖춘 자들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1:4에서 묘사하는 리듬입니다. 셋째, 세계의 상황을 보고 절망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 이방 왕 두 사람이 한 유대 제사장의 충성심을 놓고 경쟁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그의 백성의 사역周围로 민족들을 직조하셔서, 반대하는 권세들이 무의식적으로 시온의 성벽이 올라가는 그 발판이 되게 하십니다. 같은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무질서한 시대에 신실하십니다.

되새김

자비의 아버지여, 저는 너무 자주 시끄러운 곳에서 — 왕들의 책략에서, 군중의 환호에서, 고통의 즉각적 제거에서 — 위안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마카보기 1권 10장의 느리고 신실한 행들 안에서, 저에게 다른 문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돌들은 네모지게 다듬어집니다. 작업은 꾸준합니다. 손들은 흉터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성은 일어섭니다. 제 작은 영역에서 나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은혜를 주소서.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들리는 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읽으며, 쓴침의 인질들을 그들의 부모에게 돌려보내며, 인내와 기술로 돌 위에 돌을 쌓게 하소서. 저의 가정과 교회의 성벽 위의 파수꾼이 되게 하시되, 주께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는 신실하심을 확신하게 하소서. 그리고 다른 사람이 고통받을 때, 값싼 말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걸어온 자의 다듬어지고 느린 위안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모퉁잇돌이시며 동시에 우리 위안의 보증인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옵니다. 아멘.

자주 묻는 질문

예루살렘은 마카비오 시대에 왜 여전히 재건이 필요했는가?

안티오쿠스 4세의 침략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성전이 더럽혀졌으며 백성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마카비 가문은 몇 년 전에 성전을 되찾았으나 성벽의 본격적인 복원은 요나단 아래에서야 시작되었다(10:10–11).

구약에서 '고난과 위로'의 주제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출애굽의 애가에서 시편의 애가까지,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 예언에서 마카비오 시대의 갈등 속 재건까지, 구약은 고통을 정련의 불로 다루며 위로를 신실한 남은 자, 돌아오는 포로, 회복된 예배를 통해 오는 것으로 여깁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속에서 어떻게 유사한 '파수꾼'의 부르심을 경험할 수 있는가?

여호나단이 망보는 중에 건축하였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가정,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 파수꾼으로 부름받았습니다 — 한 손으로는 신실하게 건축하며 다른 손으로는 경계를 삼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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