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놓아주지 않는 동행자를 신뢰함
헛됨과 고독의 부르짖음 속에서 신앙은 우리를 결코 혼자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바라보게 합니다.
나는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압제를 또한 보았다. 눈물을 흘리며 압박 받는 자들이 있으나 그들을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그들의 압제자에게 권력이 있으나 그들을 위로하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내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자들이 아직 살아 있는 자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여겼으며, 해 아래서 일어나는 비참함을 결코 보지 못한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들이 위의 어느 쪽보다 더 행복하다고 여겼다. 또한 내가 보기에 모든 노동과 모든 솜씨 있는 일은 서로 시妒함에서 나온다. 이것 또한 헛되며 바람을 쫓는 것이니라. 어리석은 자는 손을 거두어 자기 살을 먹게 되나니, 오히려 두 손 가득히 바람을 쫓는 수고보다 한 줌의 즐거움이 더 낫다. 해 아래서 내가 보기에 이러한 헛됨이 또 있으니, 곧 홀로 있으면서 짝이 없는 자, 아들도 형제도 없이 스스로 재물을 무한히 모으며 눈이 부요함에 만족하지 아니하는 자라. 그가 누구를 위하여 자신을 부리며 재물을 모으는고? 이것도 헛되며 괴로운 사업이라. 둘이 하나보다 나으니 이는 그들의 수고의 좋은 상이 있기 때문이라. 만일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어날 것이나, 홀로 있고 넘어지면 그를 붙들어 일어 살 자가 없으니 그 화 있도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서로 따뜻하게 할 수 있으나, 홀로서는 어떻게 따뜻하게 할 수 있겠는고? 사람을 치러 오면 둘이 그것을 막으니, 세 겹의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늙고 우매하여 경계를 받지 아니하는 왕보다, 가난하으나 지혜로운 청년이 더 낫다. 이는 그 청년이 옥에서 나와서 왕이 될 수 있으나, 그 왕은 비록 왕의 나라에서 태어났으나 가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 아래서 왕을 대신하여 일어나는 그 후임 청년과 함께 사는 모든 산 자를 내가 생각하니, 그를 앞선 자는 무수히 많아도 후세에 그를 칭찬하지 아니하리라. 이것도 헛되며 바람을 쫓는 것이니라. 너는 하나님의 전에 가기를 너무 급거히 하지 말라. 어리석은 자의 희생보다 순종함이 더 받으실 것이니, 그들은 악을 행하는 것밖에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서 4:9-12는 동행의 세 가지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 넘어진 자를 일으켜 줌, 온기를 나눔, 공격을 함께 견디는 것 — 그리고 마침내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말로 정점을 이룹니다. 코헬렛은 홀로 힘쓰는 헛됨을 관찰하지만, 그 외로움에 대한 성경의 구원적 해답은 두 번째 인간의 동반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그의 백성과 결합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